[아시아경제 백종민 기자] 고(故)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남미 좌파 세력의 대부로 불린 반미주의자였다. 미국에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그의 죽음은 중남미 등 국제 사회에 상당한 후폭풍을 몰고올 것으로 전망된다.
차베스가 2006년 유엔 총회에서 당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을 '악마(the devil)'로 지칭한 것은 양국 간 갈등의 대표적인 사례다.
이를 잘 아는 백악관은 차베스 사망 발표 직후 성명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베네수엘라와 건설적인 관계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차베스는 1954년 7월 28일 베네수엘라 바리나스주(州) 사바네타에서 태어났다. 교사인 부모 밑에서 평범한 유년 시절을 보냈던 차베스는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해 군인의 길을 택한 후 정치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젊은 군 장교들로 이뤄진 정치그룹을 조직했고 이는 향후 차베스가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발판이 된다.
차베스는 1992년 2월 동료 장교들과 쿠데타를 일으켰다 실패했고 당시 자신이 책임지겠다며 2년 간 옥살이를 했다. 이때 대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베네수엘라의 막대한 석유 매장량은 그가 정권을 다지는 발판이 됐다. 차베스는 쿠바, 니카라과, 도미니카공화국 등 모두 17개 카리브해 국가들에 싼 값으로 원유를 매년 70억달러씩 공급해왔다.
이를 통해 차베스는 미국에 대항하는 지도자로서의 입지를 확고히했고 지원 받은 국가는 어려운 살림에 석유 걱정을 덜 수 있었다. 쿠바에 석유를 제공하는 대가로 의료진을 파견 받아 무상 의료를 확대한 것도 이런 이유다. 그의 사망 이후 안정적인 석유 공급 여부가 주목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차베스는 국민의 40%를 차지하는 극빈층으로부터 '위대한 지도자'라는 칭호를 받았다. 하지만 중산층 이상 국민과는 반목을 계속했다. 특히 외국 기업을 임의로 국유화하거나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민영 언론사 압박, 기업 규제, 외환통제 같은 정책으로 독재자라는 비판도 받았다.
차베스는 1998년 대선에서 56%의 지지율로 첫 대통령 당선에 성공했고 신헌법 하에서 치러진 2000년 대선에서 60%의 지지율로 재선에 성공했다.
2002년 4월 11일 대통령 자리에서 축출됐지만 국제사회의 비난 속에 이틀만에 다시 대통령직에 복귀하는 저력을 보여줬다.
차베스는 2009년 대통령 연임 제한 규정을 철폐한 국민투표에서 승리하며 종신 대통령을 향한 발판을 마련했지만 병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백종민 기자 cinqange@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