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대통령 정책실장 지낸 김병준 국민대 교수
"김용준 '책임총리' 의문"
"경제부총리·미래부 한계"
[아시아경제 김효진 기자] "대통령 비서실장 인선을 주의 깊게 봐야 한다. 능력 있는 정책통 비서실장이 필요하다. 박 당선인은 정무쪽으로만 밝은 사람이나 단순한 명망가, 일반적인 경험의 소유자를 비서실장으로 앉히면 안된다."
참여정부에서 대통령 정책실장과 교육부총리를 지낸 김병준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는 지난 25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박 당선인이 새 정부 첫 국무총리 후보자로 헌법재판소장 출신 김용준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을 지명한 지 하루 뒤였다.
김 교수가 비서실장 자리에 큰 의미를 둔 것은 대통령의 국정과제를 추진하는 업무와 관련해서다. 그는 "대선때 당선인이 내건 핵심 공약 같은 '대통령 프로젝트'라는 게 있다"며 "그런 과제는 정부의 여러 부처를 가로질러 추진해야 하고 대규모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전제했다.
대통령 프로젝트를 추진할 주체로 총리를 생각할 수 있지만, 김 후보자가 책임총리로서 정치적ㆍ정책적 역량을 발휘하리라고 보는 관측은 드물다.
김 교수는 "총리가 명확하게 대통령과 일치하는 국정 비전을 갖고 있다는 확신이나 총리의 역량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관료조직은 따라가지 않는다"며 "그런데 김 후보자가 과연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법조계에 평생 계셨던 분이 과연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훑어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있다"고 말했다.
인수위 안팎에서는 부활한 경제부총리와 신설된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이 '신(新) 컨트롤타워'로 대통령의 정책 추진 작업을 보좌하고 총리를 떠받칠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박 당선인이 사실상의 '직할통치'를 펼 수 있도록 총리는 실무형보다 의전형 또는 보좌형에 머무는 게 낫다는 주장도 있다. 이런 주장대로라면 박 당선인이 김 후보자를 지명한 건 나쁘지 않은 결정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현실을 잘 모르고 하는 얘기라고 김 교수는 반박했다. 그는 무엇보다 경제부총리나 미래부 장관에 큰 기대를 거는 게 문제라고 말한다.
김 교수는 "경제부총리와 미래부가 상당한 권한을 바탕으로 특정 사안과 관련해 다른 부처까지 끌고가려 할 경우 다른 부처들 눈에는 '선수'를 하면서 동시에 '심판'까지 하려는 모습으로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통령 국정과제는 '선수'로 뛰지 않고 '심판'만 하는 자리에서 추진해야 한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즉, 자신의 고유 업무가 없는 장관급 위의 자리에 앉은 책임자이어야 대통령 과제를 챙길 수 있다는 말이다.
김 교수는 이어 "옛날에는 대통령이 권위를 인정하면 그것이 그냥 받아들여졌다. 박정희ㆍ전두환ㆍ노태우 대통령 때"였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지금 우리사회의 권력구조는 그렇지 않다. 시민의 권리의식과 시장의 권력이 생각보다 강하다. 이런 상황에서 특정 부처가 선수와 심판을 동시에 하려고 하면, 이것을 받아들일 부처, 즉 고객집단이 거의 없을 것이다."
김 교수는 또 "부총리나 장관은, 고유의 업무를 해 내고 민원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부족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상황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게 청와대, 특히 비서실장 인선뿐이라고 그는 결론을 내렸다. 대통령의 정책은 청와대가 챙겨야 한다고 김 교수는 강조했다.
그는 "총리가 관료사회로부터 완벽한 신뢰를 확보하지 못하는 한 공직자들은 '이것이 내가 갈 길인가 아닌가'를 계산하고 종국에는 청와대를 쳐다보게 돼있다"고 설명했다.
박 당선인은 최근 청와대 조직개편을 통해 정책실을 없앴다. '청와대 슬림화'의 핵심이다. 따라서 청와대 정책기능의 상당부분이 정무수석 쪽으로 넘어갈 것이란 관측이 많이 나오고 있다.
김 교수는 "정무수석이 정책적 가교 역할을 할 수는 있지만 정책 실무와 관련해 유관 수석실을 통합적으로 이끌고 관가나 의회를 정책적으로 설득하는 건 정책실장의 몫이었다. 때로는 정책실장이 장관을 만나 근본적인 가치체계에 관한 부분에서부터 설득을 해야 하는 일이 많았다"며 "그런데 정책실장이 폐지됐으니 이제는 비서실장이 그 역할을 해야 한다. 이것이 정책통 비서실장이 필요한 이유"라고 주장했다.
정부와 청와대 조직개편의 특성을 살펴볼 때, 정책통 비서실장을 통해 청와대의 정책기능을 현실화하지 않으면 박 당선인이 정책구상을 실현하기가 어려울 것이란 게 김 교수의 결론이다.
김 교수는 아울러 우리 사회가 이제는 글로벌 혁신을 주도하는 사회가 됐다는 걸 잊지 말아달라고 박 당선인에 당부했다.
그는 "심지어 김영삼 대통령 때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는 모델이 있었고 앞서 나아가는 특정 국가나 사회를 '패스트 팔로잉'하기만 해도 됐다"며 현 상황을 다음과 같이 진단했다.
"우리 사회는 이제 먼저 움직이지 않으면 바로 뒤처지는 사회가 됐다. 우리가 앞서가는 영역이 한 두 개가 아니다. 이것을 관리하고 리드하는 것이 바로 국정이다."
김 교수는 특히 "과거에는 새마을운동이다, 수출주도형 경제다라고 하고 '따라오지 않으면 가만히 안 둔다'고 하면 다 따라갔지만 지금은 그런 메시지를 줄 수 없다"며 "본인이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어디로 가자'고 하지 못하면 모호한 메시지밖에 주지 못한다"고 충고했다.
김 교수는 그러면서 "오늘날 우리 사회는 지도자가 말을 안하고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하지 않으면 망해버린다"며 "무슨 뜻인지 몰라 혼란이 더 크게 일어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권력을 틀어쥐고 소통하지 않는 건 낡은 패러다임"이라며 "전통적으로 대통령에게 집중되는 권력을 내려놓고 말을 많이 하면서 자신의 비전을 설파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김 교수는 지난 대선을 관통한 '안철수 현상'을 예로 들며 진정한 '선수'의 면모를 박 당선인 측에 주문했다.
그는 "정치쇄신 열망이 안철수라는 사람을 만나 '안철수 현상'이 됐고 안철수 전 후보는 챔피언이 됐는데 그가 하는 말을 들어보면, 현실적인 대안이 별로 없었다"고 꼬집었다. 국회의원 정수 축소 같은, 대중이 당장 듣기에 좋은 말 뿐이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선수로 등장한 사람은 관중의 수준에서 일하면 안 된다"며 "프로페셔널리즘에 입각해서, 선수 수준에서 뛰어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이번 인수위의 역할이나 역량에 관해 다소 아쉬운 평가를 내렸다. 박 당선인이 인수위를 무척 소극적으로 정의한 것 같다는 말이다.
김 교수는 "인수위 구성을 보면 자기고집이 있다기보다는 굉장히 유순한 사람들이 대체적인 것 같다. 대통령이 누가 됐든 자신의 생각이 맞다고 믿으면 관철시킬 수 있는 사람들은 아닌 것 같다"며 "박 당선인의 공약 중 실천가능한 공약을 정리하는 정도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김병준 교수 프로필]
1954년 경북 고령 출생
1976년 영남대 정치학과졸
1979년 한국외국어대 대학원 정치학과졸
1984년 정치학박사(미국 델라웨어대)
1984년 강원대 행정학과 조교수
1986년 국민대 사회과학대학 행정정책학부 교수(현)
2002년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대통령후보 정책자문단장
2002년 제16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무분과위원회 간사
2003∼2004년 대통령직속 정부혁신 및 지방분권위원회 위원장
2003년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
2004∼2006년 대통령 정책실장
2006년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대담 = 백우진 정치경제부 부국장 cobalt100@
정리 = 김효진 기자 hjn2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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