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영식 기자]미국 자본주의 ‘황금기’였던 19세기 말의 대표적 경영자인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는 말년에 재산의 대부분을 자선사업에 썼다. 그는 “상속된 부는 재능과 에너지를 고갈시킨다”는 말을 남겼다. 실제로 서구의 기업 흥망사를 돌아보면 경영자가 자신의 핏줄에게 기업 경영권을 넘기는 ‘족벌경영’은 실패로 끝난 사례가 많았고 대신 ‘전문 경영인’ 제도가 일반화됐다. 다만 일본에서만큼은 예외다.
일본은 세계적으로 오랜 역사의 가족경영 기업들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는 나라다. 스즈키(1909년 창립), 마쓰이증권(1931년 창립), 선토리(1899년 창립) 등이 대표적이다. 산업 역사가 오래된 서유럽에도 오래된 기업들이 많지만 경영권이 넘어가거나 인수·합병 등으로 인해 창업자의 가문이 그대로 경영을 이어오는 경우는 드물며, 오늘날까지 시장에서 영향력을 미치는 경우는 더욱 찾기 힘들다.
영국 경제전문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12월 1일자호에서 일본 가족경영 기업이 경쟁력을 유지하는 원인에 대해 조명했다. 일본에서는 가문 대대로 이어가는 가족경영 기업들이 여전히 많고 이들 기업은 놀랍게도 전문경영인이 이끄는 기업보다 더 뛰어난 경쟁력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 비결은 한국의 재벌그룹들처럼 2세나 3세에게 충실한 경영수업을 받게 해서가 아니다. 연구에 따르면 바로 ‘입양’이다. 캐나다 앨버타 경영대학원의 비카스 메로트라 교수 등 연구자들은 세계 3대 재무전문 학술지로 꼽히는 ‘저널오브파이낸셜이코노믹스(Journal of Financial Economics)’에 게재된 논문을 통해 “가문이 주도하는 기업 경영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나을 수 있다는 반례”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일본에서는 8만1000명이 입양됐다. 세계적으로도 높은 비율이지만 이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어린이 입양이 아니다. 놀랍게도 이중 90% 이상이 주로 20~30대의 ‘성인 입양’이다. 가업을 이을 후손을 찾지 못한 경우 후계자를 들여 경영을 잇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풍습은 ‘무코요시(壻養子)’로 불리며, 한국의 ‘데릴사위’ 풍습과도 비슷하다. 비카스 교수는 “이같은 풍습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유사한 예를 찾기 힘들다”면서 “이것이 일본 가족경영 기업의 경쟁력이 유지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배경에는 자녀를 하나만 낳아 키우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일본 사회의 출산율이 점차 낮아진 것이 작용했다. 기업 가문 간 혼례를 전문으로 담당해 온 웨딩컨설턴트 다테 치에코는 “딸의 경우도 가업 경영을 도울 수 있지만 일본인들은 여전히 경영의 전면에는 남자가 나서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서 “딸밖에 없는 집안은 똑똑하고 유능한 사위를 들인 뒤 아예 성을 바꿔 호적상 아들로 입적시킨다”고 설명했다. 단 이는 기업 이익을 위한 ‘정략결혼’과는 다르다. 두 남녀가 서로에게 호감을 갖지 못한다면 처음부터 성립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연구는 설령 직계자손이 있다고 해도 경영능력이 부족하다고 판단될 경우 이를 무시하고 양자를 들이는 경우도 있다면서 이같은 독특한 입양제도와 경쟁 부여가 기업을 더욱 경쟁력있게 경영할 만한 인재를 골라내도록 한다고 분석했다. 다만 이 연구는 2000년까지 집계된 자료를 토대로 하고 있어 2000년 이후 최근의 일본 기업경영의 실태를 분석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이코노미스트지는 지적했다.
김영식 기자 gr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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