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금융업계는 '일본화(Japanifiaction)'에 대한 우려가 많다. 현재 우리나라의 금융산업이 일본 저성장 국면의 초기의 모습과 유사해, 일본처럼 경쟁력을 잃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2012년 회계연도의 증권회사, 자산운용사들은 수지는 계속 악화되는 모양이다. 걱정스러운 것은 주식시장이 상승세로 반전을 한다고 해서 바로 호전되기는 어려워 보인다는 것이다. 주요 수입원이던 수수료율은 거의 제로 수준까지 떨어진 상황이며, 저금리 기조에서 금리상품 투자로 수익을 올리기도 어렵다. 전 세계적인 불황과 이에 따른 안정성 추구, 금융감독의 강화 등 금융투자업을 둘러싼 주위 환경 역시 우호적이지 않다. 우리나라 상장 증권사 주가는 자산가치 대비 과도하게 하락해 경쟁력 강화를 위한 증자나 합병을 하는 데에 제약이 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증권회사와 자산운용사 숫자가 시장 규모에 비해 너무 많은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우리나라 증권회사는 60여개지만 실제 지점 형태의 외국계 회사와 일부 업무만 영위하는 소규모 증권사를 제외하면, 금융투자업 전반의 업무를 영위하는 종합증권사는 30개가 넘는 수준이다. 일본의 경우 2012년 현재 273개의 증권사가 영업을 하고 있다. 경제 규모를 감안한다 해도 우리나라 증권회사가 터무니없이 많은 숫자는 아닌 것이다. 증권회사의 숫자가 많다기보다는 증권사가 할 수 있는 업무의 영역이 너무 제한적이어서, 적절한 숫자의 증권사조차도 차별적으로 할 수 있는 영역이 없다는 것이 문제라고 본다.
얼마 전 골드만삭스 자산운용, HSBC 소매부문, ING생명 등 외국계 금융기관의 잇따른 철수 결정이 있었다. 글로벌 본사의 자본 확충 및 경영합리화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라고는 하나 한국시장의 과다 규제와 이에 따른 시장성 부족이 큰 영향을 줬다는 것이 외국업체들의 중론이다.
경쟁력을 갖춘 산업들은 공통점이 있다. 첫째, 리스크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둘째 정부, 행정기관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다. 이는 선진국 시장에서도 예외는 없다. 셋째 좁은 국내시장이 아니라 해외시장을 개척했다. 넷째, 아낌없는 창의력이 수반됐다. 그러나 비관적이게도 증권업을 비롯한 금융산업을 보면 이 네 가지 요인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답은 명료하다. 금융기관들의 안정성 확보도 좋지만 외국 금융기관들이 주춤하는 이때에 더 리스크를 취할 수 있는 환경이 돼야 한다. 또한 해외시장의 적극적인 진출을 통해 시장규모를 넓혀야 한다. 우리의 발전 과정을 따라올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과거와 다른 방식의 해외진출이 필요하다. 금융기관도 창의력이 발휘될 수 있도록, 제반 제도와 규정의 자율화가 강력히 요청된다.
네덜란드에 필립스와 같은 훌륭한 전자회사가 있다면, ING와 같은 경쟁력 있는 금융기관이 함께 있다. 제조업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 서양 선진국이나 일본의 사례에서 입증됐다. 일본의 금융기관의 막대한 자금을 사용하고자 하는 곳은 많지만, 일본 금융기관의 서비스를 받고 싶어 하는 곳은 많지 않다. 금융산업을 국제 경쟁력 있는 하나의 산업으로 발전시키지 못한 탓에 일본은 지금 그나마 한국의 맹추격을 받는 도요타와 경쟁력이 추락하는 소니만 바라보고 있다.
새 대통령이 선출돼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있다. 아무쪼록 금융투자업이 세계의 중심에 설수 있도록 독자적인 강력한 산업으로 육성되기를 기대해 본다. 물론 그에 앞서 금융투자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기존 관념의 틀을 깨고 금융소비자와 정책당국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자세를 다시 한 번 가다듬어야겠다는 생각이다.
주원 KTB투자증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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