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상미 기자] "내가 어렸을 때는 말이야..." 아버지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언제나 이렇게 시작됐다. 50년대 태어나 60년대 국민학교를 다닌 아버지는 모든 게 부족하고,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꺼내곤 하셨다.
주머니 안의 구슬 하나, 아침 밥상의 김 한 장으로도 행복했던 아버지의 어린 시절. 아버지의 이야기는 나에게 언제나 낯설게 느껴졌다. 불과 몇 십 년 전 일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아버지가 심심하면 자식들에게 어린 시절 얘기를 들려주신 까닭도 그러리라.
'소년은 철들지 않는다'라는 책은 아버지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글로 풀어놓은 듯하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던 당시의 풍경이 하나하나 펼쳐진다. 마치 아버지의 어린 시절 일기장을 훔쳐보는 기분이다. 1960년대 유년기를 보낸 베이비부머 세대인 저자는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 '소년'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리고 소년의 감수성으로 일상의 경험들을 담담하게 들려준다.
그 시절 소년들은 학교수업만 마치면 온종일 동네골목길에서 구슬치기하느라 바빴다. 여름에는 냇가에서 멱을 감고, 겨울에는 얼음 배를 타며 동네친구들과 어울렸다. 어머니를 졸라 새로 나온 잡지를 손에 넣는 날엔 한껏 생색내며 반 아이들에게 빌려주곤 했다. 그들은 때론 수업시간에 송충이를 잡고, 회충약을 먹고 채변봉투를 학교에 내는 고역을 치르기도 했다. 이처럼 상상하기 어려운 하루하루를 보내며 성장한 소년들이 어느덧 은퇴를 앞둔 중년의 아저씨가 됐다.
어느새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해진 아버지도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늘 장난끼 가득한 소년이 된다. 그의 유년시절은 비록 가난했지만 가족과 친구간의 정이 넘쳤던 따뜻한 추억들로 가득하다. 그래서 결핍을 모른 채 자랐으나 무한경쟁에 치여 힘들어하는 자식에게 자꾸 들려주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아버지를 좀 더 이해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는 건 어떨까? 읽고 나서 편지와 함께 아버지에게 선물하는 것도 좋을 듯 싶다.
-소년은 철들지 않는다/이성규 지음/아비요/1만3800원
이상미 기자 ysm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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