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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철, 낭떠러지에서 시작을 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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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철, 낭떠러지에서 시작을 외치다 신현철(사진=넥센 히어로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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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진퇴양난. 전라남도 강진에 고립됐다. 그 뒤는 파도가 넘실거리는 낭떠러지. 일부 넥센 선수들은 이를 ‘야구인생의 끝’이라 부른다. 실제로 많은 선수들이 강진을 끝으로 그라운드를 떠났다. 지난 시즌 방출된 선수는 20여명(신고 포함). 이 가운데 3명은 1군에 합류하고도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프로 7년차 내야수 신현철은 그 뒤를 잇는 듯했다. 퓨처스리그 타율 2할7리. 9월 나선 12경기(29타수)에서 안타는 고작 한 개였다. 거듭된 부진에 몸은 점점 움츠러들었다. 얼굴에서 미소가 떠난 지도 오래. 그럴수록 머리는 화려했던 과거를 기억했다. 8년 전이다. 주장을 맡아 유신고를 창단 첫 봉황대기 우승으로 이끌었다. 당시 위치는 공수의 핵심. 강진에서의 기약 없는 인생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만년 유망주. 선수에게 이보다 더 참혹한 말도 없다. 주위까지 괴롭다. 강진에서 돌아올 줄 모르는 아들 걱정에 신현철의 부모는 밤잠을 설쳤다. 꿋꿋이 힘이 되어준 여자 친구도 아픔을 늘 함께 했다.

“후반기 타격감을 잃어버리며 절망에 빠졌다. 1군에 영영 오르지 못할 것 같았다. 힘들어하는 주위 모습에 유신고로 돌아가 코치로 일할 생각까지 했다.”


이제 26세지만 농담이 아니다. 미래는 그만큼 불안정했다. 넥센 내야진은 꽤 탄탄한 편에 속하다. 그가 담당하는 유격수와 2루수는 각각 강정호와 서건창이 꿰차고 있다. 그 뒤는 김민성, 김민우, 지석훈, 유재신 등이 받친다. 신현철은 그 다음 순번이다. 웬만한 부상병동이나 집단 타격 부진이 아니고선 기회를 얻을 수 없다.


신현철, 낭떠러지에서 시작을 외치다 신현철(사진=넥센 히어로즈 제공)


입단 뒤 지난 시즌까지 1군 타석에 나선 건 총 11차례. 안타는 없었다. 주눅이 들어 제대로 배트 한 번 휘두르지 못했다. 신현철은 “겁을 먹고 타석에 섰으니 잘 될 리가 없었다”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또 다시 2군. 기약 없는 훈련을 치르며 자신감은 곤두박질쳤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입단 동기들의 활약은 더 이상 자극제가 되지 못했다. 모르고 지낸 선수들처럼 느껴졌다. 강정호, 김영민, 황재균 등이다.


낙담해있던 그에게도 기회는 있었다. 김성갑 감독대행의 부름을 받고 지난 21일 1군에 합류했다. 처음 소식을 접했을 때 신현철은 농담으로 여겼다.


“퓨처스리그 타율 2할7리의 선수를 1군에 올릴 리가 없지 않나. 2군 매니저의 통보도 이상했다. 전날 경기를 치른 대전에 장비를 두고 온 것 같다며 다시 가서 찾아오라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1군 선수단이 대전에서 한화와의 경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김성감 감독대행이 부진에 허덕이던 신현철을 1군으로 불러들인 까닭은 무엇일까.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2군에서 수비코치를 맡았을 때부터 유심히 지켜봐왔다. 전반적인 기량이 우수한 선수다. 그간 빛을 보지 못했지만 팀에 소금과 같은 역할을 해줄 것이라 확신했다. 매일 올라오는 2군 경기 기록지를 통해 타격 부진을 체크했지만 주저하지 않았다. 능숙한 수비력을 갖춰 백업 역할 이상을 충분히 해낼 것으로 내다봤다.”


신현철, 낭떠러지에서 시작을 외치다 김성갑 감독대행과 하이파이브를 나누는 신현철(사진=넥센 히어로즈 제공)


활약은 주전급 이상이었다. 21일 대전 한화전 팀이 3-4로 뒤진 7회 1사 1루에서 동점 적시 2루타를 터뜨렸고 다음날 목동 KIA전 3-4로 끌려가던 6회 2타점 2루타를 때려 팀의 5-4 역전승을 견인했다. 신현철은 이후 연속 안타 행진을 4경기로 늘렸다.


안타의 내용은 모두 남달랐다. 신현철에게 프로 데뷔 첫 안타를 내준 상대는 친구인 김혁민. 이날 2회 이성열, 조중근, 문우람을 모두 3구 삼진으로 잡아냈을 만큼 위력적인 공을 던졌다. 5회까지 허용한 안타는 겨우 2개. 타선까지 4점을 뽑아내 승리를 챙기는 듯했으나 평소 위로를 주고받는 친구에게 동점 2루타를 얻어맞아 시즌 9승 달성에 실패했다. 신현철은 “경기 뒤 혁민이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너 때문에 망했다’라고 원망해서 ‘내 상황 알잖아. 나 살기도 바쁘다’라고 해줬다”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KIA전을 역전승을 이끈 2루타 역시 회심의 한 방이었다. 상대 선발 앤서니 르루는 5회까지 1실점만을 내주며 넥센 타선을 제압했다. KIA 타선이 4회와 6회 각각 2점씩을 뽑아 무난하게 시즌 12승째를 챙기는 듯했다. 그러나 6회 3연속 안타를 맞으며 흔들렸고 신현철에게 역전 적시타를 얻어맞아 마운드를 내려왔다. 5.2이닝 5실점. 고대하던 승리 대신 그는 시즌 12패째를 떠안았다.


신현철의 배트는 다음 경기에서도 빛났다. 넥센은 KIA에 0-7로 완패했다. 상대 선발 서재응의 구위에 밀려 한 점도 얻지 못했다. 서재응은 프로 데뷔 14년 만에 완봉승을 기록하는 동시에 36이닝 연속 무실점 행진을 이어나갔다. 이런 그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5회 1사에서 지재옥과 신현철에게 연속 안타를 허용, 1사 1, 3루의 위기를 맞았다. 후속 타선을 막지 못했다면 완봉승과 무실점 행진은 모두 물거품이 될 수 있었다.


신현철, 낭떠러지에서 시작을 외치다 동료들과 승리를 자축하는 신현철(사진=넥센 히어로즈 제공)


어느덧 투수들에게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되기 시작한 신현철. 맹타의 비결로 그는 마음을 비우고 타격에 임한다는 무심타법(無心打法)을 손꼽는다. 신현철은 “욕심 없이 배트를 휘두르다보니 잘 맞는다. 김성갑 감독대행의‘부담을 가지지 말라’라는 당부가 큰 도움이 됐다”라고 밝혔다. 이어 “지난 시즌에는 자신감이 없어 고전했다. 이제는 다르다. 타격을 조금 더 보완해 경쟁력을 높이겠다”라고 말했다.


강진에 고립되며 시달렸던 위기의식. 천근만근 옷을 던져버린 신현철에게 낭떠러지는 배수진이었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각오로 야구인생의 끝에서 새로운 시작을 창조했다. 이는 넥센 특유의 저력이기도 하다. 20여명의 방출선수를 등록하면서도 매년 걸출한 기량의 선수들을 키워낸다. 그 화수분에 또 다른 롤 모델로 일어선 신현철. 희망을 담은 배트는 곧 넥센의 미래다.




이종길 기자 leem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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