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혜원 기자] 한국전력이 전력 시장 운영 기관인 전력거래소와 전력 발전 비용을 심의ㆍ의결하는 9명의 비용평가위원을 상대로 4조4000억원의 소송전을 예고한 배경을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한전과 전력거래소 간 '4조원대 갈등'의 쟁점은 무엇일까.
"더 이상은 답이 없다고 판단했다." 한전 관계자는 공기업이 이례적으로 다른 공기업을 상대로 4조원이 넘는 대규모 소송을 결심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한전은 29일 전력거래소와 비용평가위원이 전력 거래 가격을 부당하게 산정해 4조4000억원의 손실이 발생했다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한전이 문제를 제기한 쟁점은 크게 두 가지다. 서로 사전에 약속한 전력 거래상 규칙이 있는데, 전력거래소가 규정 외 조항을 넣어 정산조정계수를 적용한 탓에 3조원의 피해를 입었다는 게 첫째다.
그 근거로 한전은 '투자보수율'을 들었다. 한전과 발전 자회사 간 투자보수율을 적정 수준(2009년 8월 기준 3.32%포인트)으로 유지하기로 합의했으나 전력거래소가 미래 투자비 기회비용, 원자력 안전 보강 등을 추가한 정산조정계수를 산정하는 바람에 투보율 격차를 5.94%포인트까지 확대했다는 것이다.
투보율 격차가 벌어질수록 한전은 적정 가격보다 비싼 값에 전력거래소로부터 전력을 사들이고, 다시 원가를 밑도는 저렴한 값에 전기를 시중에 팔게 된다. 지난 2008~2012년 상반기 한전의 누계 영업적자는 13조원에 달한다. 반면 같은 기간 발전 자회사는 누계 10조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추가적인 1조4000억원은 전력거래소가 분기별 보고 의무 누락한 데 따른 손실액 청구다. 비용 평가 규정에 의하면 정산조정계수는 연 1회 산정이 원칙이나 전망과 실적의 차이가 발생한 경우엔 분기 단위로 재산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한전 관계자는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전력거래소가 비용평가위원회에 총 15회 중 5회만 보고를 한 사실을 확인했다"면서 "보고 누락과 오차 발생분 조정 미시행으로 1조4000억원의 손실을 입었다"고 설명했다.
한전은 소송과 함께 앞으로 투보율 격차 1.72%에 근거해 전력 거래 대금을 지불하겠다고 했다. 이는 한전이 지난해 말부터 전력거래소와 비용평가위원회에 적정 투보율 격차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한 데 따른 용역 결과다. 중재안에는 전력거래소 측도 동의를 했다. 하지만 지난달 27일 마지막으로 열린 비용평가위원회에서 한전을 제외한 모든 위원이 반대표를 던져 중재안은 결국 부결됐다.
한전 관계자는 "전력 가격 산정 시스템에 문제를 인식하고 함께 실시한 용역 결과를 왜 따르지 않는 것이냐"고 말했다. 용역 중재안이 재의결돼 가결될 경우엔 소송전으로 비화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소송을 벼르는 한전에 대해 전력거래소는 "한전과 발전 자회사의 내부 문제를 확대시킨 공익성을 망각한 행위"라며 "정부의 물가 관리 정책에 반하고 400여개 민간 발전 사업자의 사업을 위축시키는 중요한 문제"라고 비판했다. 한전이 잦은 전기요금 인상 요구에 이어 이 같은 공기업 간 소송을 예고한 것은 소액주주 등을 염두에 둔 포석을 이어가는 것이라는 시각도 여전하다.
김혜원 기자 kimh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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