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수퍼리치들이 조세피난처(tax havens)에 숨겨놓은 수조달러의 재산에 국제기구와 각국 정부들의 세금을 부과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부유층의 은닉 자금에 대한 세금 추징은 결코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세제정책센터(CTPA) 파스칼 세인트-아만 소장은 26일 불법으로 조세피난처에 은닉돼 있는 자산이 세계적 부호인 빌 게이츠의 재산(610억달러)의 450배에 이르는 27조4500억달러(3경1485조원)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주 세금정의네트워크(Tax Justice Network)가 조세피난처에 은닉된 자산규모를 21조~32조 달러로 추산한 것과 거의 비슷한 규모다.
주요 20개국(G20)이 지난 2009년 런던에서 정상회의를 열고 은닉된 재산에 대해 수입억달러의 세금을 물리는 한편, 국제 공조를 통해 자산 은닉을 막으려는 노력이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런던 정상회담에서 각국은 조세 회피 및 금융비밀 관행(은행이 금융 고객들의 금융 정보를 정부 당국에 제공하지 않는 것)을 엄격히 단속하고, 조세피난처 명단을 작성할 것을 OECD에 요구했다. 이후 89개국이 OECD의 국제적으로 합의된 세금 규정을 이행하겠다고 밝혔으며, 국가들 사이에 800여개의 정보공유 협정이 체결됐다.
세인트-아만 센터장은 로이터통신 전화 인터뷰에서 "G20 런던 정상회담 전에는 해외에 막대한 자금을 은닉한 부자들은 어떤 법적 처벌을 받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없었다"면서 "이제는 법적 처벌의 위험을 안게 됐다는 점이 달라졌고, 돈을 해외로 빼돌려도, 투명성을 높이는 제도 덕택에 조세당국이 이를 찾아내기가 쉽게 됐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세금 회피 방지 노력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우세하다.덴마크 정부는 조세회피를 막으려는 어떠한 노력도 제한된 성과만을 낼 것이라고 밝혔다. 금융산업은 국경간 거래를 할 경우 비밀리에 진행되기 때문에, 탈세 자체를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세금관련 싱크탱크인 텍스리서치의 리처드 머피 소장도 OECD 등이 추진중인 국가간 정보 교환 협정 등이 가져올 성과가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국가들이 정보 공유를 하는 것 자체가 너무 복잡해서 함께 일해 성과를 내기 쉽지않다는 것이다.
로이터통신은 OECD등의 탈세와 돈세탁 방지 노력이 주로 '자율규제'에 집중돼 있다고 꼬집었다. OECD와 함께 탈세방지를 위해 공조를 펼치는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의 고위 관계자도 "OECD나 FATF 등이 추진하는 것은 모든 금융 기관에 경찰관을 상주시키는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은 아니다"며 조세 회피 노력이 결국 은행들의 자율규제에 맡겨져 있음을 인정했다.
나주석 기자 gongg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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