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에 대처하는 자세 | 소비자 vs 유통업체
계속되는 경기 침체와 대형마트 가격 인하 행사 종료, 농산물 작황 악화 등으로 소비자 물가부담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 유통업체들은 그들대로 내수 침체, 이상기후로 인한 산지물가 폭등, 전기료 인상 예고 등 악조건 속에 강제 휴무제까지 겹쳐 사면초가에 빠진 상황이다. 소비자들은 갈수록 살림하기 어렵다며 한숨을 푹푹 내쉬고, 유통업체들은 저마다 불황을 뚫는 것은 물론 장바구니 물가도 잡는 대안에 골몰하며 소비자 공략에 나서고 있다. 이름 하여 한 푼이라도 아끼고 안 쓰려는 소비자 vs 어떻게든 지갑을 열어보려는 회사 사이에 ‘불황 배틀’이 벌어진 것이다.
장바구니 물가를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주부들에게 ‘먹고살 걱정’은 일상이 된 지 오래다.
“그동안 50만원 정도 들던 식비가 60만원대로 뛰어올랐어요. 아이들 먹을거리인 과잣값 부담도 늘었고요. 그나마 수박 참외 등 여름 제철과일 가격이 내려가 다행이에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수박(8~9㎏) 한 통을 1만9000원에 살 수 있었지만 요즘은 1만1900원 선이에요. 첫째 때는 유기농 매장에서만 식품을 샀는데 지금은 주말 아파트 단지 안에 서는 장에서 채소나 과일을 살 때가 잦아요. 식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회원제로 운영하는 도매매장에서 대량으로 물건을 사 친한 이웃과 나누기도 하고요. 되도록 안 먹고 안 쓰는 게 상책인 것 같아요.”
- 요즘 한 달 식비가 부쩍 늘어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네 살 된 아들·두 살 된 딸을 둔 맞벌이 주부 박혜진(35·가명)씨.
“마트 가서 먹을거리 몇 개 사지도 않았는데 10만원을 훌쩍 넘으니 무서워서 장을 못 보겠어요. 장 볼 때마다 손이 떨려요. 씀씀이가 헤픈 게 아니라 꼭 써야 할 데 돈을 쓰는데도 요새는 늘 쪼들리는 느낌이 든다니까요. 정말 밥그릇에 간장종지 하나 놓고 식사해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편하게 외식으로 끼니를 해결할 때도 잦은데 두 달 전부터 외식 횟수를 주 3~4회에서 1회 정도로 줄였어요. 종일 스마트폰을 달고 사니 통신비도 만만찮은데 월급은 빠듯하고…. 그래도 먹고는 살아야겠죠? 조금이라도 더 싼 데서 장보고 절약하는 수밖에 없죠, 뭐.”
- 혼자 버는 가계의 고충을 털어놓은 서울 자취 회사원 김은영(30·여·가명)씨.
이렇듯 소비가 얼어붙다 보니 대형마트를 비롯한 유통업계 전반이 극심한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고객님, 걱정 마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주요 백화점의 6월 한 달간 매출 신장률이 신규 점포를 제외하고는 지난해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는 얘기가 들린다. 대형마트는 올 초 소비자 물가 잡기에 나선 정부시책에 동참한다는 취지로 상반기까지 주요 생필품 가격을 낮췄으나 7월 들어서면서 원상 복귀하는 곳도 생겨났다.
업계에서는 올 하반기에도 소매유통업이 쉽진 않을 것 같다는 전망을 하고 있다. 그러나 홈쇼핑은 올림픽 특수 등으로 TV 시청률이 올라가면서 호조를 보일 것이란 예측이다. 유통업체들은 하반기에도 불황형 소비패턴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실속형 상품 위주로 알뜰 소비자들을 잡는 데 주력한다는 전략이다.
GS샵 홍보팀 황규란 차장 “구매 고객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줄 수 있는 대규모 사은행사 실시를 통해 재구매를 유도한다는 전략입니다. 흔히 활용하지 않는 차별화된 프리미엄급 경품도 증정하고 있고요. 또 렌탈에 대한 개념이 유지보수가 필요한 생활가전 위주에서 불황으로 인해 초기 구매 부담이 큰 상품을 조금씩 나눠 내는 ‘소유’의 개념으로 확장되고 있다고 보고 LED TV, 렌터카, 디지털 피아노 등 관련 상품을 대폭 확대하고 있어요.
지난 5월에는 자사 인터넷 쇼핑몰에 80여 종의 렌탈 전문 상품을 망라한 렌탈전문관 'GS렌탈샵'도 오픈했습니다. 특히 올해는 올림픽 특수를 겨냥한 편성을 구상 중입니다. 런던 올림픽 기간에는 새벽 2시까지 진행하던 생방송을 1시간 연장해 새벽 3시까지 운영할 계획입니다. 이번에는 런던 올림픽으로 인해 심야시청률이 더 늘 것으로 예상해 고객들의 시청시간 증가에 맞춰 저희가 더 많은 기회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옥션 마트팀 김은신 팀장 “지난 10일 싱글족들의 온라인 마트 상품 소비를 활성화하기 위해 전 상품을 단돈 800원에 판매하는 ‘800스토어’를 오픈했어요. 이미 오프라인 시장에서는 활성화된 ‘1000원 매장’보다 더 저렴한 800원에 세제, 생필품, 주방용품 등을 구매할 수 있어 불황 속 싱글족들의 파격적인 쇼핑 공간으로도 자리 잡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묶음 배송 가능, 1만원 이상 무료 배송, 3만원 이상 100% 사은품 증정 등 알뜰 혜택도 풍성하게 제공할 예정이고요. 1인 가구 증가와 더불어 장기 불황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800스토어의 다양한 알뜰 장보기 서비스가 온라인상에서 생필품 구매를 활성화 시키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G마켓 상품개발팀 서희선 팀장 “최근 생필품 전용 PB 브랜드 ‘하우스마일’을 론칭했습니다. 하우스마일은 제품의 우수한 품질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유통 단계와 마케팅 비용을 최소화해 합리적인 가격대로 출시하는 온라인 전용 브랜드예요.
상품 소싱 및 기획에서부터 브랜드 이미지까지 저희가 약 1년여간의 개발 기간을 거쳐 만들었죠. 한 마디로 기업과의 제휴로 유통 단계를 축소해 좋은 품질의 제품을 고객에게 저렴한 가격에 제공할 수 있는 G마켓 전용 브랜드를 출시하게 된 겁니다. 앞으로 이 브랜드를 통해 세제, 일회용품 등 생필품 중심으로 다양한 상품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홈플러스 마케팅부문 안희만 부사장 “서민 생활에 도움이 되고자 대대적인 물가 안정 캠페인을 준비했습니다. 총 400억 규모의 자체 가격 투자를 통해 내년 2월까지 약 8개월간 200여 개 주요 생필품에 대해 ‘대한민국 최저가’에 도전한다는 방침이에요. 고객이 가장 많이 찾는 상품에 대한 가격 투자를 통해 장바구니 물가 부담을 줄여주고자 6개월 전부터 기획한 물가 안정 프로그램이죠. 통상 대형마트 영업이익률이 5% 수준임을 감안하면, 지난해 11조5000억원 매출을 올린 홈플러스로서는 영업이익의 1/10가량을 물가 안정을 위해 쏟아 붓는 셈입니다.
100여 개 주요 채소와 수산물 가격을 매주 가격 조사를 통해 전국 주요 소매시장 최저 가격보다 싸거나 같은 수준으로 유지할 겁니다. 전단 대표 상품 할인행사를 기존 1주에서 4주로 늘리고 할인율도 10% 확대합니다. 또 400여 개 인기 생필품 가격을 8주 단위로 연중 5~50%(평균 13%) 인하해온 행사를 이상 없이 지속할 거고요. 고객들에게도 반가운 소식이 되는 것은 물론 역발상의 투자를 통해 강제휴무 등으로 어려움에 처한 업계 위기 극복의 시발점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코노믹 리뷰 전희진 기자 hsm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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