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 고요한 부두 위/밧줄 드리운 높다란 돛대 끝에/달이 걸렸다. 그렇게 멀어보이던 것은/놀다가 잊어버린 어린아이의 풍선 뿐이다
■ 이미지즘은 1910년대 영국과 미국에서 펼쳐진 반낭만주의 시운동으로, 흄이 제창한 것이다. 일상어의 사용, 새로운 리듬, 제재 선택의 자유로움, 뚜렷한 이미지, 표현의 집중이 특징인 자유시, 구어시(口語詩) 운동이다. 그러나 이미지즘은, 짧고 정교하게 조탁하는 서정시에는 통했지만 길고 복잡한 시를 창작하는데는 활용이 거의 불가능한 테크닉이었던 한계점을 지니고 있었다. '부두 위'는 짧지만 강렬하다. 부두 위 돛대에 걸린 달은 어린아이가 잃어버린 풍선과 병치되면서 생생한 이미지를 얻는다. 이쯤에서 마경덕의 시, '날아라, 풍선'이 떠오른다. "배봉초등학교 운동회, 현수막이 걸린 교문 앞, 깡마른 노인이 헬륨가스를 넣고 있다. 날개 접힌 납작한 풍선들. 들썩들썩, 순식간에 자루만큼 부풀어 오른다. 둥근 자루에 새의 영혼이 들어간다. 풍선 주둥이를 묶는 노인……" 풍선과 노인과 새의 영혼이 병치되면서 이미지들이 살아난다. 마경덕의 풍선은 이미 그리 단순해지기는 어려운 시대를 날아오르고 있는 게 아닐까.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