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침묵 현상…당신 회사는 어떻습니까
-말하면 찍힌다…회의 때 벙어리
-직장인 55% "존경하는 상사 없어"
-'리더는 친절해야'…환상일 수도
-꽉막힌 상사, 자신 돌아보게 해야
[아시아경제 박혜정 기자]#지난해 말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정모(26)씨는 아직도 잘 이해되지 않는 직장 문화가 있다. 이름만 붙이는 즉석에서 만들어지는 각종 회의다. 매주 월요일 아침에 열리는 주간회의는 물론이고 상사의 기분에 따라 소집되는 회의까지. 어떤 때는 오전 내내 회의만 하다가 끝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정씨는 "회의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부원들을 모아놓고 주구장창 일방적으로 훈계 하다 끝난다는 점"이라며 "도대체 회의를 왜 이렇게 자주 하는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직장인들은 왜 '회의' 소리만 들어도 스트레스가 쌓인다고 말할까. 회의가 쌍방향 의사소통을 위한 자리지만 실상은 '어차피 결론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라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회의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은 이유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최근 직장인 5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도 이와 같았다. 절반이 넘는 53.9%가 '회의가 상사 의견만 전달되고 일방적으로 진행된다'고 답한 것. 반면 '모두의 의견이 자유롭게 오가며 창의적으로 진행된다'는 비율은 33.9%에 그쳤으며,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 침묵의 회의'라는 답변도 12.2%나 됐다. 따라서 회의 결론도 '결국 상사의 의견대로' 나고 있었다.(65.7%) 이는 '누구의 의견이든 가장 합당한 의견으로 결론 난다'(34.3%)는 비율의 두 배 가까운 수치다.
◆왜 쌍방향 의사소통이 안 이뤄지는 걸까= 이처럼 쌍방향 의사소통이 잘 일어나지 않는 현상을 가리켜 '조직 침묵 현상'(Organizational Silence)이라고 말한다. 조직 침묵 현상이 나타나는 주된 원인으로는 리더십 문제가 꼽힌다. '불친절한' 리더 때문에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한다는 것.
위의 설문에서 회의에 소극적으로 임한다는 39.7%에게 그 이유를 물어봤더니 '논쟁으로 인한 갈등을 피하고 싶어서'(33.2%)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의견이 잘 반영되지 않아서'(22.1%)라거나 '말하면 그 일을 맡게 될까봐'(21.1%) 회의 시간에 입을 다물고 있다는 답변도 나왔다. 조직 침묵 현상이 만연한 조직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번뜩이기 쉽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직장생활 3년차인 이모(32)씨는 "공식 회의석상에서는 주로 상사의 이야기를 듣기만 하고 속마음은 동료 또는 지인들과 털어놓는다"며 "비판적인 의견을 이야기 했다가는 본전도 못 찾고 소위 '찍힐까'하는 우려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구성원들이 원하는 상사의 모습은 어떨까. 취업포털 커리어가 직장인 39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55.1%는 사내에 존경하는 상사가 없다고 답했다.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업무 지시'(47.2%·복수응답), '기분파적인 행동'(44.5%), '책임 전가'(40.8%), '업무능력 부재'(35.8%), '인격 모독'(22.5%), '차별하는 태도'(22%) 등이 이유였다. 이에 반해 '직원을 배려하는 인품·가치관'(70.2%), '업무능력 및 성과'(51.7%), '소통능력'(47.2%), '리더십'(33.1%), '칭찬과 격려'(27.5%) 등을 하는 상사는 존경의 대상이었다.
커리어 관계자는 "상사를 존경하는 이유로 인성적인 면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상사가 부하직원과 대화하고 소통하려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리더는 구성원들이 조직과 함께 발전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꼭 리더만의 문제일까= 그렇다면 조직 침묵 현상의 원인을 리더에게만 돌려야 할까. LG경제연구소가 최근 펴낸 '조직 침묵 현상과 리더십' 보고서에서 황인경 책임연구원은 "그렇지 않다"고 봤다. 구성원들의 창의성을 살리려다가 자칫 리더의 창의성을 희생시키거나 그릇된 '인기 영합주의'로 흐를 수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불친절한 리더'의 대명사 스티브 잡스는 생전에 '가장 좋은 아이디어가 채택되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논쟁을 즐겼다. 이를 가리켜 황 연구원은 "리더의 불친절함이 그다지 칭찬할 만한 것은 아니지만 절대로 존재해서는 안 될 해악(害惡)이라고도 볼 수 없다"며 "구성원들의 배짱이 더 필요하거나 리더는 친절해야 한다는 환상을 가진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구성원 입장에서 리더의 불친절함을 탓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불친절한 리더에게 '적당한' 친절을 기대하지 말고 그의 코를 납작하게 해줄 수 있을 만큼 능력을 키우라는 것. 리더가 어떤 것을 묻거나 공격해도 자신만의 논리로 대답할 수 있을 정도로 준비할 필요가 있다. 철저히 준비를 했다면 배짱 있게 밀어붙이는 용기가 뒷받침 돼야 한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리더의 시각을 이해하고 이에 기반한 대응책을 마련하면 이야기를 좀 더 쉽게 풀어갈 수도 있다.
이 같은 노력에도 리더가 꽉 막혔다면 본인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게 만들자. "어디서 감히 상사에게 대들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자기 주장을 펼치는 부하를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경우다. 감정적으로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거나 업무 평가에까지 반영하기도 한다. 이런 유형의 리더는 "난 열심히 하는데 부하들이 이해도 못하고 따라와 주지도 않는다"며 억울해한다. '자기 인식 능력'이 부족한 것이다. 이럴 때 다른 사람들이 보는 자신의 모습을 직시하게끔 도와줘야 한다.
황 연구원은 "부하들이 리더십 평가만을 보여주는 건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는 만큼 전문가의 진단과 평가를 받도록 해주는 것이 심리적 장벽을 허무는데 더 효과적"이라며 "리더들의 강점을 살려주기 위해 노력할 필요도 있다"고 조언했다.
박혜정 기자 par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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