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가 울었다. MBC <놀러와>의 ‘수지 vs 수지’ 특집에 또래 아이돌들과 함께 출연한 수지는 ‘90년대 수지파’ 강수지, 조갑경, 원미경, 신효범의 이야기를 듣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20년 동안 이어진 선배들의 우정이 “너무 부러워서” 흘린 눈물이 “영화를 보고 우는 걸 좋아해서 슬픈 영화를 찍어보고 싶은” 감수성 풍부한 배우의 것이었다면 서둘러 눈가를 닦아내는 손은 “사람들 앞에서 약해보이고 싶지 않”아 하는 씩씩한 소녀의 것이었다. “눈물이 많은 것 같긴 해요. 나이 들어갈수록 더 많아지는 거 같고요. 그런데 또 남 앞에선 잘 안 울게 되더라구요. 사람들 앞에서 약해보이고 싶지는 않거든요, 절대. (웃음) 강해보이고 싶다기보다는 강한 척 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요. 은근히 티는 안 내려고 하는데 사람들이 그걸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되게 많은 걸 바라죠? (웃음)”
힘든 내색을 쉽게 하지 않지만 결국 주변의 누군가는 속내를 알아봐주길 기대하는 수지는 <건축학개론>의 서연과 닮았다. 승민(이제훈)을 만나기 전까지는 같이 다니는 친구도 없이 혼자였던 서연은 외롭다고 말하는 대신 승민에게 숙제를 같이 하자고 제안한다. 너와 같이 있는 시간이 편하다고 말하는 대신 이어폰 한쪽을 내밀며 ‘기억의 습작’을 함께 듣는다. 낯선 동네가 어느덧 정든 곳으로 가까워질 만큼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서연은 그렇게 승민에게 다가갔다. 유난스럽게 표내진 않지만 승민을 좋아하는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며. 대부분의 첫사랑이 그렇듯 서툰 두 사람의 감정은 꺼내어 놓기도 전에 부서져버리고, 15년이 지난 뒤에야 서로의 조각을 맞붙여서 맺음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은 안타깝게 어긋나버린 서연과 승민에게 “공감이 잘 되지 않거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았던 열아홉 소녀에게 첫사랑은 “어서 나타나 주”었으면 하는 미지의 것이다. 첫사랑을 기다리고 있는 수지가 꿈꾸는 사랑은 어떤 모습일까? 아마 그녀가 골라온 다음의 사랑영화들 속 연인들과 닮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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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번지 점프를 하다> (Bungee Jumping Of Their Own)
2001년 | 김대승
“예전에는 영화를 많이 보지 못해서 <건축학개론>을 준비하면서 촬영 전에 영화들을 찾아봤어요. 주로 사랑영화들로요. <번지 점프를 하다>도 그 중에 한 편인데요, <건축학개론>처럼 첫사랑에 대한 영화예요. 이병헌 선배님이 나오신 다른 영화 <그해 여름>도 봤는데 이 영화 역시 좋았어요.”
사랑은 때로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 누군가를 위해 목숨을 걸게 하기도 하고,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을 일으키기도 한다. <번지 점프를 하다>는 그런 사랑의 힘을 믿는 영화다. 태희(이은주)를 본 순간부터 그녀에게 각인된 인우(이병헌)는 17년이 지난 후에도 그녀를 알아본다. 비록 그녀의 모습이 바뀌고 서로가 사랑할 수 없는 처지에 있다 해도 결국 사랑은 이 모든 장애물을 뛰어넘게 한다.
2. <8월의 크리스마스> (Christmas In August)
1998년 | 허진호
“<8월의 크리스마스> 역시 이번 영화를 준비하면서 보게 되었는데요, 제일 유심히 봤어요. 너무 좋았어요. 한 번이 아니라 계속해서 몇 번이고 봤어요. 처음에는 영화의 전체적인 걸 보다가 그 다음부터는 제가 캐치할 수 있는 게 있을까 해서 여주인공의 표정을 따라해 보기도 했어요. (웃음) 슬픈 영화를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영화예요.”
주차요금 징수원 다림(심은하)과 동네 사진사 정원(한석규)이 죽음으로 인해 이별하지 않고 계속 만났다면 어떻게 됐을까? 고만고만한 연애를 하다 서로가 지겨워지거나 결혼이라는 뻔한 종착역에 다다랐을 것이다. 전자든 후자든 지루한 결말을 맞을 그들의 긴 연애보다는 8월의 장마처럼 금세 끝나버린 사랑의 안타까움이 더 아름답다. 2007년, 일본에서 동명의 영화로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3. <엽기적인 그녀> (My Sassy Girl)
2001년 | 곽재용
“1년 전쯤 본 영화인데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이 서로를 찾아 헤매면서 지하철역을 막 뛰어다니던 장면이 기억나요. 전지현 선배님이 연기하신 여주인공이 참 예뻤어요. 사람들 앞에서 약해보이는 것을 싫어하고 강한 척하는 모습이 공감이 갔어요. (웃음)”
곽재용-전지현표 로맨틱 코미디의 신호탄이자 최고 흥행작. 첫사랑의 아픔을 간직한 청순한 그녀(전지현)는 알고 보면 폭력적이고 막무가내인 게 <막돼먹은 영애씨> 뺨친다. 그런 그녀가 좋다고 끌려 다니는 견우(차태현)는 늘 몸이 괴롭다. 구타와 구토, 만취로 이어지는 술자리가 난무하는 견우와 엽기녀의 러브스토리는 인터넷 소설처럼 발랄하다.
4. <내 사랑 내 곁에> (Closer To Heaven)
2009년 | 박진표
“최근에 본 영화중에서 가장 많이 울었던 것 같아요. 슬픈 영화를 즐겨보는 편은 아닌데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리는 걸 좋아해요. 그렇게 눈물이 나는 영화를 찍어보고 싶어요. 평소에도 별 것 아닌 것에도 눈물을 잘 흘려요. 물론 사람들은 저를 눈물이 없다고 생각하죠. 왜냐하면 전 혼자 울거든요. 절대 남 앞에서 울지 않아요. 사람들 앞에서 절대 약해보이고 싶지 않아요. (웃음)”
불치병에 걸린 남자와 그를 돌보는 지고지순한 여자. 지극히 진부한 이 문장에 박진표 감독과 김명민, 하지원이라는 이름이 더해지면서 최루성이 강해진다. 내 사랑이 내 곁에 있을 수 없는 순간이 와도 여전히 식지 않는 이들의 사랑은 무려 25kg을 감량하며 실제 루게릭병에 걸린 환자처럼 몸을 혹사시킨 김명민의 열연에 힘입어 쉴 새 없이 눈물이 흐르게 한다.
5. <오싹한 연애>
2011년 | 황인호
“얼마 전에 영화관에서 본 영화예요. <오싹한 연애>라는 제목처럼 무섭기도 하고 깜짝깜짝 놀라게 되는 순간도 많았어요. 소재도 독특하고 되게 신선했어요. 보는 내내 너무 재미있었고, 저도 언젠가는 이렇게 독특한 영화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귀신과 함께 살아온 여자와 그녀와 연애를 시작하는 남자. 호러와 코미디, 멜로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로맨스물은 때론 귀엽게, 때론 오싹하게 관객에게 연애를 건다. 로맨틱 코미디와 멜로, 사랑과 연애를 그리는 영화에서 장르를 불문하고 돋보이는 손예진의 매력은 영화의 빈 곳을 채워주었고, 로맨틱 코미디로는 드물게 300만이 넘는 관객이 그 연애에 기꺼이 빠져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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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는 그날 찍어야할 방송 분량이 있고, 시간적 여유가 없다보니까 빨리 빨리 찍어야 해요. 그러다보니까 어쩔 수 없이 다음 컷으로 넘어가야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에 비해서 영화는 여유가 있어서 한 번 찍고 모니터 해보고, 다른 버전으로도 해보고, 정말 좋은 연기가 나올 수 있을 때까지 할 수 있는데 그건 영화에서만 가능한 일이잖아요. 이용주 감독님께서도 저는 테이크가 뒤로 갈수록 더 좋아진다고 하시더라구요. (웃음)” 이제 막 한 편의 영화를 끝냈을 뿐이지만 그 안에서 자신의 재능을 증명해보인 어린 배우는 영화에 대한 열정과 기대를 숨기지 않는다. 긴 다리와 베이비페이스 등 외모가 가진 장점을 극대화시키는 화려한 무대와 달리 질끈 묶은 머리, 촌스러운 옷차림에 단화를 신고도 빛났던 수지라면 그 열정과 기대를 재료로 다양한 얼굴을 만들어 낼 것이다. <건축학개론>에서 아이돌 수지가 아닌 ‘우리 모두의 첫사랑 그녀’의 얼굴이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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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시아 글. 이지혜 seven@
10 아시아 사진. 이진혁 el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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