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 가운데 사회와 제도, 심리, 인간행동 등 보다 근원적인 의문에 천착하는 것이 미시경제학이다. 게리 베커 같은 학자는 마약중독, 범죄 등 사회 문제뿐 아니라 유형ㆍ무형의 제도와 법률에까지 경제학적 통찰력을 제시하여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미시경제학이 특히 주목하는 주제 가운데 하나는 '시간의 경과'에 따른 '인간 행동의 동태적 변화'이다. 특정 제도나 인센티브가 주어졌을 때 사람의 행동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예측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과세 자료가 부족하던 시절, 영국 정부가 부족한 세수를 늘리기 위해 '창문세(window tax)'를 신설했다. 각 주택에 있는 창문의 수에 따라 재산세를 과세한 것이다. 1년 후 (1)세수가 크게 늘어났을까 (2)영국인의 집에서 창문이 사라졌을까. 짐작대로 답은 (2)번이다. 세금을 덜 내려고 영국인들이 대부분의 창을 없애버린 것이다.
비슷한 일이 한국에서도 벌어진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수없이 많은 '사교육을 줄이기 위한 교육개혁'이 이뤄졌는데도 수십년이 지난 지금 사교육 시장이 더 극성을 부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간단하다. 정부가 사교육을 줄일 수 있는 입시 제도나 법률을 아무리 많이 만들어내도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이 이를 우회하는 방법을 찾아내 버리기 때문이다. 교육정책을 입안하는 공무원들이 자녀를 둔 주부들의 집단적 정보습득 능력과 필사적인 돌파 노력을 저평가한 결과이다. 입시제도가 복잡해질수록 정보의 불균형이 커져서 그 정보에 도달할 수 있는 고소득층 자녀만 적정 입시 포트폴리오를 갖추게 된다. '교육을 통한 기회불평등의 해소'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
'국민경선'이라는 제도로 한때 참여정치의 흥행 돌풍을 일으켰던 모 야당이 비슷한 '모바일 투표제도'를 제도 보완 없이 운영하다가 불법선거 역풍으로 큰 홍역을 치르고 있다는 뉴스가 있었다. 이 역시 제도와 인센티브에 따라 변화하는 집단행동의 동태적 행태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이다. 모 방송국의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이 1차 경연 때 국민참여 모바일 투표로만 우승 순위를 결정했다가 비슷한 문제점에 부딪혔다. 이 때문에 2기 오디션 때는 모바일 투표 비중을 줄이고 전문가 평가단 제도를 도입해 보완했는데, 정치권은 최소한의 보완장치도 없이 똑같이 제도를 운영하다가 불거진 문제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몇몇 저축은행의 도산과 불법행위로 해당 저축은행의 후순위채를 매입한 금융소비자들이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되자 국회는 최근 피해자들에 대해 법이 명시한 5000만원까지의 보상 이외에 추가 보상을 해주기 위한 특별법을 추진했다. 예금보호공사 기금을 재원으로 우선 피해보전을 한 뒤 추후 예산 지원을 통해 이를 보전한다는 것이다. 만약 이 법안이 통과된다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 부실 저축은행일수록 후순위채 발행을 남발하게 될 것이고 후순위채를 산 사람들은 문제가 터지면 같은 보상을 해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 또 향후 다른 종류의 대형 금융사고가 발생하면 피해자들은 저축은행 피해자 보상 특별법의 예를 들어 또 다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할 것이다. 특별법이 특별법을 낳고, 예금자를 5000만원까지만 보호한다는 원래의 법은 실종될 것이다.
예전에 '사랑은 변하는 거야!'라는 광고 카피가 히트를 친 적이 있는데 미시경제학은 법률과 제도에 대해 같은 경고를 한다. '사랑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집단행동도 변하는 거야!'
국회와 정치권은 법 제정이나 제도를 남발하기 전에 그 이후 발생할 수 있는 동태적 변화와 후유증에 대해 어떤 복안을 가지고 있는지, 국민에게 먼저 그 답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홍은주 한양사이버대 시니어비즈니스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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