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현준 골프전문기자] 이쯤되면 다 망하자는 거다.
난파 직전의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이야기다. 출발점은 당연히 이명하 신임회장(55ㆍ사진)이다. 지난해 12월 회장 선거에서 "외부 인사를 회장으로 영입하겠다"는 공약(公約)을 앞세워 박빙의 승리를 일궈냈다. 하지만 곧바로 암초를 만났다. 이 회장이 거명했던 류진 풍산그룹 회장은 선거 직전 아예 "회장직을 맡을 의사가 없다"고 분명하게 입장을 표명했다.
공약(空約)이 처음부터 공약(公約)이었다는 이야기다. 해가 바뀌고 3개월이 넘도록 조직을 추스리지 못하고 표류를 거듭하고 있는 까닭이다. 이 회장은 이기간 동안 자신이 가르치는 선수들을 이끌고 베트남으로 외유를 떠나 더욱 비난이 쏟아졌다. 물론 전지훈련 도중 잠시 귀국해 자회사인 한국프로골프투어(KGT) 김덕주 대표(69)를 해임하고, 그 자리에 자신의 이름을 올려 챙길 것은 다 챙겼다.
지난 9일에는 회장 명의로 "안상수 전 인천시장을 영입하겠다"는 보도자료까지 배포해 기정사실화 했다. 최근 이사회에서 이 회장의 '안상수 카드'에 반대해 임진한 이사 측이 전윤철 전 감사원장(73)을 영입하겠다는 움직임이 일자 선제공격을 시작한 셈이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을 모셔 오기(?) 위해 더 정치인다운 모습을 보이는 교묘한 전략이다.
협회 정관상 외부 인사를 회장으로 추대하기 위해서는 일단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야 하고, 또 총회에서 정관을 개정해야 하는 복잡한 절차도 남아있다. 정관 개정은 특히 3분의2 이상 출석에 3분의2 이상 찬성표를 얻어야 하는 가시밭길이다. 이 회장이 이를 모를 리 없다. 전형적인 '몽니 부리기'의 모양새다.
일부에서는 정치인의 회장 영입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이다. 불특정다수가 생각하는 정치인의 이미지는 불과 1분 전에 한 말도 뒤집는 사람들이다. 이 회장에게 표를 몰아준 결정적인 동기가 된 '외부 회장'이 투어를 활성화시켜 줄 기업인이었음을 그 누구도 모르지 않다. KPGA가 아무 실리도 얻지 못하고 그저 도구로 전락할 확률이 높다는 우려다.
이 회장을 비롯한 지도부가 '밥그릇 싸움'을 벌이는 동안 피해는 물론 회원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다. 벌써 3월 중순이지만 투어 일정조차 잡지 못하는 현실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지금 추세라면 개막전은 5월이나 돼야 시작한다. 다음달 26일부터 발렌타인챔피언십이 열리지만 국내 선수들은 40명도 출전하기 어려운 유러피언(EPGA)투어다.
5월로 가도 마찬가지다. 첫 주 매경오픈(5월10~13일)이나 둘째 주 SK텔레콤오픈(17~20일) 모두 원아시아투어 공동 개최다. 역시 국내 선수들의 출전이 제한된다. 미국과 호주, 동남아 등지에서 지옥훈련을 마친 선수들이 속속 귀국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개막전이 언제인지 요원하다. 그야말로 누란지세(累卵之勢)의 위기다. KPGA는 그래도 주인들마저 구경만 하고 있다. 공멸의 길이 다가오고 있다.
김현준 골프전문기자 golf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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