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 폭탄 그리고 햄버거>
피터 노왁 지음, 문학동네 펴냄
남성이 여성에게 사탕을 정표로 주는 화이트데이가 1주일여 앞으로 다가왔다. 화이트데이가 제과업체의 상술로 만들어진 판촉기념일이라는 것은 이미 누구나 안다. 그러나 여성 입장에서는 1년에 하루정도 연인이나 적어도 관심이 가는 남성으로부터 ‘선물’을 받는다는 것은 짜릿한 로맨스를 연상케 하는 유쾌한 이벤트가 아닐 수 없다. ‘선물’은 늘 그렇듯 사람을 설레게 하고 기쁘게 하고 기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물의 기원을 거슬러올라가면 그리 로맨틱하지만은 아닌 듯 싶다. 오히려 선물이란 인간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점들을 해결하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에 가깝다는 것이 훨씬 정확해 보인다.
저자 피터 노왁이 <섹스, 폭탄 그리고 햄버거>에서 시사하는 바에 따르면 ‘선물’은 힘이 약한 남성이 여성들을 취하기 위해 개발한 ‘꼼수’로 풀이할 수 있다. 원시시대 유인원들은 마음에 드는 짝을 얻기 위해 경쟁상대와 힘을 겨뤄야 했는데 그렇다고 힘이 없는 수컷들이라고 짝을 아예 찾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약한 수컷은 여성에게 음식 등 선물을 가져다주면서 환심을 샀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선물을 건네기 위해선 일단 손이 자유로워야 하기 때문에 결국 ‘선물’은 인간의 직립보행까지 가능하게 만드는 요인이 됐다는 것이다. 확 깨는 이야기가 아닌가. 포슬포슬 알록달록한 한 포장지에 예쁘게 쌓인 로맨틱 한 화이트데이 사탕이 무슨 원시인의 직립보행과 연결이 된다는 것이라며 어이없어 할 수도 있다. 사탕 하나에 '거 참 되게 이유가 많네' 라며 혀를 끌끌 찰 수도 있다. 그렇지만 서양의 어느 나라에서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달콤한 사탕을 선물하는 풍습이 전해져 내려와 오늘날 화이트데이의 기원이 됐다는 식의 전래동화 같은 얘기 보다는 더욱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피터 노왁은 이처럼 현재 우리 일상의 여러 현상을 기원부터 파고들어가 설명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다. 다만, 키워드는 저자가 ‘부끄러운 삼위일체’라고 표현한 ‘섹스(포르노)’ ‘폭탄(전쟁)’ ‘햄버거(패스트푸드)’다. 이는 생존을 위해 이웃과 싸우고 섹스하고 먹어야 하는 인간의 가장 본능적인 부분을 건드리고 있다는 점에서 일리가 있다. 저자의 주장은 간단명료하다. 현재를 구성하고 있는 인류 문명의 자산이 사실은 포르노, 전쟁, 패스트푸드 라는 ‘나쁜 것들’을 통해 발전했다는 것이다.
예컨대 오늘날 모든 가정이 구비하고 있는 전자레인지는 제2차 세계대전을 끝내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레이더 기술이 종전 후 가정용으로 개발된 데서 유래했다는 식이다. 세계에서 가장 잘 팔리는 테팔 프라이팬은 원자폭탄을 만들었던 맨해튼 프로젝트의 부산물 테프론을 알루미늄 프라이팬에 결합시킨 것이라는 설명이다.
기름기 많고 아무 영양가가 없을 것 같은 인스턴트식품으로 인식되는 스팸은 본래 전쟁 중 병사에게 필요한 높은 열량을 공급하고 오랜 기간 보존할 수 있도록 개발된 전투식량으로서 2차 세계대전 당시 수많은 병사의 생명을 살린 일등공신이었다.
전쟁과 섹스, 음식이라는 세 가지 욕구를 둘러싸고 거대 산업이 발달했다” -저자 피터 노왁-
이코노믹 리뷰 김은경 기자 keki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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