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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의 친구 ‘무섬病’에서 인간 狂氣의 뿌리를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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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의 친구 ‘무섬病’에서 인간 狂氣의 뿌리를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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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그림으로 인간을 읽다>
나카노 교코 지음, 이봄 펴냄

칠흑 같은 어둠속에 떠오른 쑥대머리의 거인. 두 눈을 부릅뜨고 입을 더 이상 벌릴 수 없을 만큼 크게 벌리고 구부정한 자세로 뭔가를 먹고 있다. 자세히 보니 팔과 머리가 뜯겨나가 피범벅이 된 사람이다. 크기가 작은 걸로 봐선 어린아이인 모양이다. 눈을 돌리고 싶게 만드는 그야말로 무서운 그림 중 하나다. 이 그림은 프란시스코 데 고야의 작품 ‘제 아이를 잡아먹는 사투르누스’(1820~1824년경)로 보는 이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걸작으로 꼽힌다.


그림 속의 쑥대머리 거인이 바로 사투르누스로 로마 신화에 나오는 농경신이다. 그리스 신화의 크로노스와 동일시되는데 ‘크로노스’는 그리스어로 ‘시간’을 의미하는 단어와 발음이 같아 시간을 관장하는 신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럼 왜 이 신은 회화 속에서 자기 아이를 먹는 노인으로 형상화 된 걸까. 그건 신화와 관련이 깊다. 사투르누스는 아버지인 하늘의 신 우라노스를 살해하고 모든 신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된다. 그러나 사투르누스는 그로 인해 저주를 받게 되는데, 최후의 순간 아버지 우라노스가 남긴 ‘너 역시 네 자식의 손에 죽을 거야’라는 말이었다.


결국 이 말에 신경이 쓰인 사투르누스는 여동생이자 아내인 레아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포세이돈과 하데스를 비롯한 다섯명의 자녀들을 차례로 집어삼켰던 것이다. 아이를 집어 삼킨다는 이미지는 시간의 속성을 의미하는데 ‘시간’이란 시작이 있는 것을 끝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사투르누스의 모습은 회화에서 좋은 소재가 될 수 있었다.


<무서운 그림으로 인간을 읽다>는 이처럼 한 장의 그림을 통해 다양한 삶의 이면과 인간의 속성을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매개체는 고야의 사투르누스 그림처럼 섬뜩하거나 무서운 그림들이다.


저자는 “회화를 역사로서 읽는데서, 혹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관점에서 보는 데서 새로운 매력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며 “이를 위해 택한 장치가 바로 ‘무서움’이다”라고 말했다.


이 책은 운명, 저주, 증오, 광기, 상실, 분노, 죽음, 구원 등 9가지 키워드로 대표되는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고야의 그림은 ‘광기’를 대변하는 그림에 해당된다. 물론 이 책 속에서 선보이고 있는 작품들은 언뜻 봐서는 무섭지 않은 그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책 속에 담긴 내용들을 읽어 나가다보면 단순히 그림 자체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그 그림에 얽힌 사연 속에 더욱 무서운 진실들이 도사리고 있었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마치 자식을 먹는 사투르누스의 그림 신화처럼 말이다. 주의할 점이 있다.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면 밤에 읽는 것은 피하는 게 좋다. 그림 속 무서운 진실이 상상의 날개를 달고 꿈속으로 불쑥 찾아올지도 모를테니 말이다.


이코노믹 리뷰 김은경 기자 keki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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