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대주주·경영진이 잇단 실형을 선고받은 가운데 정치권 비리를 겨눈 검찰의 칼 끝은 무뎌졌다는 지적이 흘러나오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4부(염기창 부장판사)는 21일 9조원대 금융비리 혐의로 구속기소된 부산저축은행 그룹 박연호 회장(62)에 징역7년, 김양 부회장(59)에 징역 14년을 각각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김민영 행장(66) 징역5년, 강성우 감사(60) 징역 6년 등 경영진 8명에 대해 실형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488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판결문을 통해 “공적 성격의 금융기관을 사기업처럼 운영하고 단기순손실을 알면서 분식회계를 했으며, 잘못된 선택과 방만한 경영으로 피해를 키웠다"고 중형 사유를 밝혔다.
같은 날 서울서부지법 형사11부(김종호 부장판사)는 1400억원대 배임·횡령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50)에게 징역4년6월, 벌금 20억원을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이 전 회장의 모친인 84세 고령의 이선애 전 태광산업 상무에겐 징역4년 벌금 20억원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재판부는 “다수에 의한 조직적인 장부조작 등 범행수법이 불량해 중형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밝히며, 이 전 회장 측의 건강상의 이유에 따른 선처 호소엔 "건강상의 사유는 집행 단계에서 고려될 수 있을 뿐"이라고 못박았다.
비리 혐의 대주주·경영진이 줄줄이 감옥행을 선고받은 이날 검찰은 새누리당(옛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의혹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검찰은 사상 최초로 현직 국회의장을 사법처리해 재판에 넘기고도 정치권의 맹공을 받았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이상호 부장검사)는 이날 박희태 국회의장(74)과 김효재 전 청와대 정무수석(60), 조정만 국회의장 정책수석비서관(51·1급)을 정당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2008년 7·4 전대 당시 당대표 후보로 나선 박 의장은 캠프 상황실장을 맡은 김 전 수석, 캠프 재정·조직 업무를 담당한 조 비서관 등과 공모해 고승덕 의원에게 ‘박희태’라고 적힌 명함과 함께 300만원이 든 돈봉투를 건넨 혐의(정당법 50조 1항)를 받고 있다.
검찰이 수사결과를 발표하자 민주통합당은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면죄부 수사"라며 “유야무야할 것이란 예상이 단 1㎜도 빗나가지 않았다"고 검찰을 비난했다. 통합진보당 역시 "검찰이 밝혀낸 것이라고는 고승덕 의원에게 건넨 300만 원의 출처가 박희태 의장이라는 사실 뿐"이라며 "검찰은 불법 정치자금사건 은폐의 공범이 되려고 하느냐"고 공격했다.
이처럼 정·재계의 희비가 엇갈린 원인은 법원과 검찰의 온도 차나 검찰의 수사 태도가 아닌 사건 자체의 성격에 따른 것이라는 지적도 뒤따른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재계 비리도, 정계 비리도 모두 검찰이 수사해 재판에 넘긴 것”이라며 “계좌추적을 통해 자금흐름을 파악하고 실무자에 대한 추궁을 거쳐 윤곽을 파악할 수 있는 기업범죄와 달리 정치권의 검은 돈은 현금거래로 물증이 없고 관계자들 또한 처벌을 두려워해 모두 입을 닫는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계좌추적 등을 거쳐 전대 직전 박희태 캠프에서 1억9000만원의 현금이 조달된 사실을 확인하고 다각도로 용처 규명에 나섰지만, 실제 돈 봉투를 배달한 곽모씨마저 “고 의원에게 봉투를 전달한 사실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하는 등 관계자들의 굳게 닫힌 입으로 인해 결국 밝혀내지 못했다.
재계 비리 또한 그간 “피해가 회복됐고 깊이 반성하고 있다”며 법원의 상급심을 거치고 나면 집행유예로 풀려나거나 경제발전을 이유로 정치권의 사면이 주어지는 등 가볍게 처벌받는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9조원대 초대형 비리로 주요 경영진에게 10년 안팎의 중형이 선고되고도 부산저축은행 피해자들은 “형이 너무 가볍다”며 법정·법원 감사관실 등 법원 안팎에서 항의했다.
정준영 기자 foxf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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