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태 현직 국회의장 첫 기소 불명예...캠프 조달 1억9000만원 용처 규명 끝내 실패
고승덕 의원의 폭로로 불거진 새누리당(옛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의혹은 결국 검찰 수사 끝에 현직 국회의장이 재판에 넘겨지는 초유의 결과로 매듭지어졌다. 불법자금 수사의 특성 상 조성된 선거자금의 용처가 전부 규명되지 못한 한계를 드러낸 점은 아쉬운 부분으로 지목받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이상호 부장검사)는 21일 한달 반여 동안의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박희태 국회의장(74)과 김효재 전 청와대 정무수석(60), 조정만 국회의장 정책수석비서관(51·1급)을 정당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현직 국회의장이 사법처리로 재판에 넘겨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검찰에 따르면, 2008년 7·4 전대 당시 당대표 후보로 나선 박 의장은 캠프 상황실장을 맡은 김 전 수석, 캠프 재정·조직 업무를 담당한 조 비서관 등과 공모해 고승덕 의원에게 ‘박희태’라고 적힌 명함과 함께 300만원이 든 돈봉투를 건넨 혐의(정당법 50조 1항)를 받고 있다.
검찰은 앞서 구의원 5명에게 2000만원을 건네며 당협 사무국장들에게 50만원씩 전달하도록 지시한 혐의(정당법 50조 2항)로 안병용 은평갑 당협위원장(54)을 지난 3일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겼다.
검찰 수사 결과 박희태 캠프는 전대 직전인 2008년 7월 1일 1억원, 2일 5000만원 등 모두 1억5000만원의 자금을 박 의장 명의 마이너스 통장 계좌에서 인출하고, 박 의장이 라미드그룹 측으로부터 수임료 명목으로 받은 1000만원권 수표 중 4장을 그 전달 25일 현금화하는 등 총 1억9000만원의 자금을 조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문제의 300만원 돈봉투 제작 과정을 확인하는 등 다수의 물증을 확보해 이른바 ‘윗선’으로 이어지는 핵심 관계자들의 입을 일부 여는데 성공했다. 검찰은 고승덕 의원에게 돈 봉투를 되돌려 받고 이를 김 전 수석 등에게 보고한 혐의를 받던 고명진(40) 전 박 의장 비서는 가담도가 경미해 기소유예처분했다.
검찰은 고승덕 의원 외에도 추가로 금품을 전달받은 의원이 있을 것으로 의심해 계좌추적 등을 통해 다각도로 해당 자금의 용처를 밝혀내려 했으나 결국 의혹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를 찾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검찰은 실제 돈 봉투를 배달한 곽모씨를 상대로 추가 배포 정황에 대해 집중 추궁했으나 곽씨는 “고 의원에게 봉투를 전달한 사실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현금으로 이뤄지는 범죄는 계좌추적으로도 밝힐 수 없고, 금품을 주고받은 사람은 모두 처벌받게 되는 만큼 자발적인 진술을 기대하기 힘들다”며 “현금화된 자금과 살포된 자금의 연결고리를 찾지 못해 아쉽다”고 그간 수사의 고충을 전했다.
검찰은 고승덕 의원의 폭로로 돈 봉투 살포 의혹이 불거지자 한나라당 비상대책위가 수사의뢰한 지난달 5일 수사에 착수했다.
사건 수사를 지휘한 검찰 관계자는 “60년간 관행처럼 행해지던 정당의 돈봉투 제공 행위를 처벌해 금품수수 행위 근절의 계기를 마련했다”며 “향후 깨끗한 선거 문화가 정착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수사 의의를 설명했다.
관계자는 이어 “돈선거 근절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철저히 수사했다”며 “통상 자금집행책 등 하부 가담자만 사법처리되던 종전 한계를 뛰어 넘고, 현직 국회의장과 청와대 정무수석까지 기소하는 등 역할과 죄질에 상응하는 처벌을 한 사례”라고 덧붙였다.
한편, 검찰은 민주통합당 돈 봉투 살포 의혹에 대해선 이날 결과 발표에서 제외하고 계속 수사한다고 밝혔다.
정준영 기자 foxf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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