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이 하이닉스반도체 이사로 선임되는 과정에서 최대 주주인 국민연금의 의사 결정에 참여한 자문위원 2명이 어제 사퇴했다. 최 회장에 대한 자격 논란에도 이날 임시주주총회에서 '중립' 의견을 냄으로써 이사 선임을 방조한 데 대한 반발이 사퇴 배경이다. 앞서 국민연금은 지난 10일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를 열었는데 3대3 동수라서 중립 의견을 냈다. '중립'이란 의결정족수에는 포함되지만 출석주주들의 결정에 영향을 주지 않는 의결권 행사를 말한다.
국민연금의 하이닉스 지분은 9.15%로 SK텔레콤(7.47%)보다 많다. 이런 최대 주주가 찬성이든 반대든 분명한 의사 표현 없이 중립 의견을 낸 것은 무책임한 행위다. 과거 의결권 행사와 비교할 때 일관성도 없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SKㆍSK이노베이션 주총에서는 최 회장이 SK글로벌 분식회계 혐의로 2008년 유죄 판결을 받은 점을 들어 이사 선임에 반대했다. 최 회장은 현재 파생상품 투자와 관련해 계열사 자금을 횡령ㆍ배임한 혐의로 기소돼 형사재판이 진행 중이다. 국민연금의 어정쩡한 태도는 무책임할 뿐 아니라 '재벌 봐주기'라는 지적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이런 판에 하나금융지주가 국민연금에 사외이사 파견을 요청해 왔다. 국내 상장기업이 국민연금에 이사 추천을 자청하기는 처음이다. 어떤 절차로 어떤 인물이 추천되느냐는 중요한 선례로 기록될 것이다. 대형 상장사 여러 곳의 대주주인 국민연금은 관련 가이드라인조차 없다고 한다. 서둘러 공정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자격요건과 후보를 공개해 검증을 받아야 한다.
지난해 정부가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 활성화 방침을 밝힐 때 원칙적으로 찬성하면서도 실제 주주권 행사 과정에서 독립성 훼손을 우려하는 시각이 많았다. 국내 주식시장에 62조원을 투자한 최대 기관투자가인 국민연금이 지분율을 5% 넘게 보유한 상장사만 170여개에 이른다. 이런 국민연금이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 가치를 높여 운용 수익을 극대화하려면 합리적이고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는 필수다. 민감한 사안에 어물쩍 넘어가지 말고 명확하고 책임 있는 자세로 건전한 자본시장 질서 확립에 기여해야 한다. 곧 본격적인 주총 시즌이다. 수많은 소액주주들이 국민연금의 행보를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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