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대선거의 해 ‘자유’와 ‘공정’ 사이 위태로운 줄타기
1948년 이래 크고 작은 선거가 이어지면서 선거운동 방식 또한 꾸준히 진화했다. 특히 20년 만에 총·대선이 함께 열리는 2012년은 선거전의 격변기라고 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일종의 ‘아노미현상’이 초래될 것이라는 우려가 일기도 한다.
선거에 출마했다고 가정해보자. 정해진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표심(票心)을 얻어야 한다. 일단 가까운 사람에서부터 시작해 ‘널리 알리기’가 관건이다. 선거운동은 이 같은 원칙에 기초해 이뤄질 수 밖에 없다. 거리유세와 연설회는 후보자들이 가장 먼저 사용한 도구다. 제4대 총선에서는 처음으로 합동연설회가 등장했다. 제3대 총선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벽보는 선거전의 감초로 자리매김했다.
미국에서는 1924년 캘빈 쿨리지가 선거 유세에 처음으로 라디오를 활용했다. 1960년 케네디와 닉슨은 TV를 선거판에 들여놨다. 후보자들이 전파를 이용해 벌인 첫 토론으로 기록됐다. 한국의 경우 1995년 서울시장선거에 TV토론이 처음 도입됐다. 이후부터 TV토론은 선거의 필수코스가 됐다. TV광고시장 또한 선거홍보의 장이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상록수’ 편과 이명박 대통령의 ‘욕쟁이 할머니’ 편이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최근 선거전 수단의 주역은 단연 SNS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지난해 10·26 재보선때 폭발적 위력 과시
97%와 95.5%. 제3대 대선(1960년)과 제2대 국회의원선거(1948년) 투표율이다.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던 투표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제17대 대선 63%, 제18대 총선에서는 46.1%로 역대 최저 수준이 되고 말았다. 전문가들은 젊은층의 ‘정치적 무관심’에서 그 원인을 찾았다. 그러던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지각변동이 감지됐다. 젊은층의 투표율이 15년 만에 최고치인 54.5%를 기록한 것이다. 무엇이 이들을 선거참여로 이끌었을까.
지난 10·26 보선은 SNS 선거운동의 새 지평으로 평가된다. 20~30대 유권자들이 트위터를 통해 선거 이슈를 공론화하면서 박원순 시민후보를 당선으로 이끌었다. 이에 따라 SNS 규제를 외치는 정당이란 인식이 짙었던 한나라당도 행보를 틀기 시작했다. 올 1월 9일, 공천 기준에 ‘SNS역량지수’를 추가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그 동안은 청렴성, 도덕성, 전문성, 당 기여도 및 당선 가능성 등 5개만을 판단했다.
또한 80%를 오픈프라이머리(Open Primary: 완전국민경선제)방식의 당내 경선으로, 20%를 전략공천으로 뽑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기존에는 그 비율을 반반으로 뒀다. 이재술 정치컨설팅그룹 인뱅크코리아 대표는 “비록 같은 비율이었지만 당원 중심의 경선일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하면서 “국민경선 비율이 80%로 높아짐에 따라 SNS가 유효한 수단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한나라당은 SNS에 능한 20대 비대위원과 기업가 출신을 홍보전략본부장으로 영입했는데 이 또한 변화에 따른 조치로 해석된다.
헌재-대법원 이견 속 총선전 법개정 불투명
유용한 선거운동 수단은 마련됐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관련법’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무기를 쥐어들었는데 사용법을 몰라 휘두르지 못하는 격이다. 공직선거법 93조 1항에 따르면 선거일 180일 전부터 정당이나 후보자를 지지 혹은 반대하는 내용 등을 포함한 광고, 인사장, 벽보, 사진, 문서 등은 물론 그밖에 이와 유사한 것이 금지된다. 선거관리위원회는 그동안 SNS를 ‘그밖에 이와 유사한 것’으로 분류해 규제해 왔다.
그러던 지난 12월 29일, 헌법재판소가 “인터넷에서의 정치적 표현과 선거운동은 상시 허용돼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면서 “사전 선거 운동 규제 대상에 SNS 등 인터넷 기반 콘텐츠를 포함시켜서는 안 된다”고 ‘한정 위헌’을 선언했다. 류제성 민변(민주화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처장은 “정치적 표현과 선거운동의 자유를 획기적으로 신장하는 의미 있는 결정”이라고 말했다.
류 사무처장은 “하지만 주목해야 할 것은 ‘한정 위헌’이라는 점이다. ‘단순 위헌’이 아니기 때문에 복잡한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한정 위헌’의 기속력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선관위는 꾸준한 단속이 가능하고, 검찰은 기소가 가능하다. 최종적으로 대법원은 기존의 법 조항에 따라 유죄판결을 내릴 수 있다. 다시 말해 표면적으로는 사실상 변화가 없는 상태다.
송봉섭 중앙선관위 의정지원과장은 “선관위에서도 인터넷 선거운동 상시적 허용을 내용으로 개정 의견을 다섯 차례 국회에 제출했지만 법 개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서 “집행기관으로서, 국회가 입법한 법에 근거해서 규제할 수밖에 없음을 양해 바란다”고 언급했다. 이재술 대표는 “다수의 법률가들이 공직선거법을 명확성의 원칙과 법률유보의 원칙에 반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면서 “4·11 총선 전까지 법이 개정되지 않는다면 검찰 측은 온라인상 선거사범 단속 방향을 설정할 것”이라고 전했다.
93조 1항이 개정된다고 해도 인터넷상 선거운동이 전면 완화되는 것은 아니다. 처벌조항이 제동을 걸기 때문이다. 254조2항에 따라 선거운동기간이 아닌 때에 행하는 인터넷상 선거운동은 여전히 처벌을 받게 된다. 이러한 상황 하에 다수의 유권자들은 혼란을 호소하고 있다. 무엇이 허용되며, 허용되지 않는지 기준이 모호하고 함께 수정돼야 할 법조항이 따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유권자 자유네트워크는 이에 대해 “인터넷 및 SNS 등 정보통신망 선거운동 상시허용을 촉구한다”는 내용으로 1월 12일 유권자 로비단을 발족했다. 로비단은 오는 2월 임시국회 전 선거법 개정을 목표로 활동할 예정이다. 한편, 이번 헌재 발표에 따라 과거 SNS 선거운동으로 유죄 판결된 사건에 대한 재심도 청구된 상태다. 법원은 과거 선거법 피해자들의 재심 청구에 대해 명확한 입장은 보이지 않고 있다.
흑색선전·루머 통로가 되면 또다른 재앙
해외의 경우는 어떨까. 미국과 독일은 선거운동기간과 방법에 대한 특별한 제한이 없다. 대신 비용에 제한을 둬 선거운동 전체를 규제하고 있다. 영국은 일부 규제가 있지만 기간과 방법이 자유로운 편이다. 허나 일본의 선거제도는 자유주의 선거법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규제가 심하다. 류제성 변호사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규제일색의 일본식 선거법을 채택하고 있다.
송봉섭 과장은 “과거 부정선거, 금권선거 등 선례에 따라 선거에 있어 ‘자유’보다 ‘공정’에 중점을 둔 것이 사실”이라면서 “하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자유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개정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렇다면, SNS 선거운동은 장려돼야 마땅한 것일까? SNS는 전파 및 파급력으로 허위사실 유포, 또는 비방에 더 없이 좋은 수단이다. 현재 선거운동을 공정에 치우치게 만들었던 선례들을 되레 발전시키며 무한 반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도 그럴 것이 규제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다.
예컨대, 해외에서 SNS나 포털에 접속한다면 추적이 어렵고 막을 수 있는 방도도 없다. 이른바 ‘사이버 망명’이라는 방법으로 국내에서 해외 서버로 접속할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이재술 대표는 “자유로운 선거가 가능케 됐다는 점에서 환영하지만 SNS 선거운동 도입은 이른 감이 있다”면서 “새로운 선거운동으로 빚어질 부작용 등을 여·야가 충분히 논의하고 적절한 가이드라인에 대한 신중한 토의가 있은 후에 도입해도 늦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4.11 총선 전에는 해당 사안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발표되겠지만 즉각적인 적용에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면서 “따라서 올 총·대선은 과도기로 빚어질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감수할 수 밖에 없을것”이라고 내다봤다.
유권자 올곧은 정치의식이 성공 전제조건
중구난방(衆口難防). 주나라 때 소공이 “백성의 입을 막는 것은 개천을 막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한 것에서 유래된 사자성어다. 새로운 선거운동 방식 도입에 따라 빚어질 혼란을 총체적으로 표현해 주는 말이 아닌가 싶다. 선거운동 방식의 변화는 결국 대중의 정치 참여를 독려키 위한 것이다. 각종 미디어 채널의 등장, 그 속에서 변해가는 커뮤니케이션 트렌드를 시민 정치와 결합시키려는 시도인 것이다.
이 같은 시도는 향후 어떤 채널이 대세로 떠오르는 지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절대 변할 수 없는 선거의 원칙이 있다. 먼저 후보자 진영 입장에서는 선거홍보의 질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유권자의 반응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한 채 ‘튀는 전략’과 ‘잦은 접촉’이라는 황금률만을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자칫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유권자의 올곧은 의식도 선거의 불변 요소다. 특히 선호하는 ‘당’에 대해 분별없는 표를 행사하는 고질적인 병폐는 선거문화를 정체시키는 이유가 되기에 충분하다. 민주주의 꽃은 선거이고, 그 주체는 유권자다. 기본적인 의식이 정립되지 않으면, 그 어떤 최첨단 선거방식이 도입된다고 해도 선거의 근본적 ‘진화’는 요원할 것이다.
모바일시대 선거테마株는…
12월 29일 헌재발표이후, ‘가비아’, ‘인포뱅크’, ‘이루온’ 등 관련주들이 순식간에 선거 테마주로 돌변하며 주가를 올리고 있다. 실제로 ‘가비아’의 경우, 12월 29일 3950원이었던 주가가, 1월 10일 6950원을 기록하는 등 급등세를 타고 있다. 또한 인터넷을 통한 선거운동 소식에 ‘에스에프에이’, ‘테라세미콘’, ‘서울반도체’ 등 IT 부품주도 덩달아 수혜주 대열에 오르고 있다. 종이를 위시한 제조업종이 전통적인 선거 관련주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선거운동의 변화가 선거테마주 성격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또 다른 수혜주의 탄생도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바일 기기와 태블릿 PC 등 각종 디바이스의 각축전이 될 미국 대선의 양상은 우리 대선과 관련해서도 ‘삼성SDI’나 ‘인터플렉스’와 같은 태블릿PC 관련주에 눈길을 주기에 충분하다.
“향후 인공위성을 통해 공간정보를 활용한 선거운동에 주목할 것”이라는 인뱅크코리아(주) 이재술 대표의 언급은 자연스레 ‘현대모비스’ 같은 텔레메틱스주와 ‘텔레칩스’, ‘자티전자’ 등의 GPS관련주에 관심을 쏠리게 한다.
이코노믹 리뷰 박지현 jh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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