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재앙 후 日경제 어디로 가나 | 英 옥스퍼드 이코노믹스 분석
당시 1년 6개월 만에 98% 회복 전례… 내년 2.5% 경제성장 후한 예측
‘찻잔속의 태풍에 그칠까, 아니면 거대한 허리케인으로 바뀔까’ 일본 도후쿠(東北) 지방을 강타한 지진은 세계 경제를 혼란에 빠뜨린 판도라의 상자다. 줄곧 오르기만 하던 금값이 이번 사태를 전후해 하락한 반면, 미국 재무부 채권의 가격이 상승하는 등 파급 효과는 전방위적이다. 모든 혼란의 중심에는 일본이 있다. 영국의 시장조사기관인 옥스퍼드 이코노믹스의 일본 경제 전망을 싣는다. 2012년 일본 경제가 2.5%성장할 것이라는 게 이 기관의 분석이다.<편집자 주>
지난 3월 11일, 매뉴얼(manual) 국가 일본은 아비규환에 빠졌다. 시커먼 바닷물이 자동차와 가옥들을 차례로 삼키는 장면은 마치 한 폭의 지옥도를 떠올리게 했다. 일본을 강습한 이번 지진의 피해 규모 추정치는 2000억 달러. 일본 국내 총생산의 4% 수준에 달한다.
도요타를 비롯한 주요 기업들이 이 지역 생산 설비 가동을 중단했다. 후폭풍은 여전히 거세다. 쓰나미에 파괴된 항만이 더 이상 제구실을 하지 못하면서, 수출입 물동량이 급락했다. 악재는 꼬리를 문다. 일본 은행들의 대출 피해 규모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돈을 빌려간 이 지역 농가와 기업들이 쓰나미의 파고에 휩쓸려 떠내려간 여파다. 자금 회수의 길이 막막해진 은행 경영자들의 속은 타들어간다. 지진 관련 보험 상품을 판매한 보험사들도 속수무책이다. 이 보험사들을 고객사로 둔 재보험사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의 여파는 미국의 보험왕국 AIG를 파산 상태로 내몰았다.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 누출을 막기 위한 50인 결사대는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에 등장하는 사무라이들을 떠올리게 한다. 일본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형국이다.
이번 사태가 세계 경제에 몰고 온 후폭풍도 거세다. 하루 원유 수요가 430만 배럴에 달하는 국제 원자재시장의 큰손인 일본의 경기가 급랭하면서, 국제 원유 수요 또한 급락하고 있다. 이는 다시 국제 원유 가격의 하락을 부추길 수 있다는 것이 옥스퍼드 이코노믹스의 분석이다.
곳간이 텅빈 일본이 미국채를 비롯한 해외 자산을 처분할수 있다는 관측이 엔화 가치를 밀어 올리는 것도 또 다른 부담거리다. 모든 혼란의 중심에는 일본이 있다. 10년 불황의 길고 긴 터널을 빠져나온 일본 경제는 다시 쓰나미에 떠내려갈 것인가. 영국의 시장조사기관인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고베’를 보라고 주문한다.
지난 1995년 1월, 고베시의 도로는 엿가락처럼 휘어지고 교량은 무너져 내렸다. 지진에 익숙한 일본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일대 사건이었다. 지진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며 일본 국민들의 위기감도 깊어졌다. 고베 대지진이 일본을 강타한 1995년 1월, 일본의 산업 생산은 2.6%급락했다.
쓰나미를 동반한 일본의 이번 지진이 세계 경제에 몰고 온 후폭풍도 거세다. 하루 원유 수요 430만 배럴에 달하는 국제 원자재시장의 큰손인 일본의 경기가 이번 지진의 여파로 급랭하면서, 국제 원유 수요 또한 급락하고 있다. 이는 다시 국제 원유 가격 하락세를 부추길 수 있다는 것이 옥스포드 이코노믹스의 분석이다.
인프라 재건 정부 지출 선순환
일본의 소매(retail) 판매도 1.4%가 하락했다. 일본 경제를 떠받치는 양 날개인 가계와 기업은 죽음의 공포 앞에서 얼어 얼어붙었다. 하지만 일본 경제는 고베 대지진의 후폭풍을 빠른 속도로 추스르며, 불과 1년 6개월 만에 지진 이전 산업 생산 수준의 98%를 회복했다.
일본 경제의 회복세는 지표에서도 확인된다. 일본 니케이225지수(Nikkei225)가 고베 대지진 이후 하락폭의 3분의 2이상을 회복하는 데 소요된 시간은 일주일에 불과했다는 것이 이 연구기관의 분석이다. 케인즈주의의 개가였다.
일본 경제가 고베 대지진의 피해를 1년여 만에 극복한 것은 일본 정부가 도로나, 항만, 교량을 비롯한 사회 인프라 재건에 막대한 돈을 푼 결과다.
해외에서 운용하는 자산의 일부까지 팔아서 자금을 끌어들인 일본 정부가 투입한 재정 규모는 일본 국내총생산의 0.7%인 3.4조 엔.
정부 지출을 늘려 유효 수요를 창출하는 전형적인 케인즈주의적 처방이 꺼져가는 일본 경제의 불씨를 되살린 셈이다. 지난 1995~1996년 일본 국내총생산 증가분의 3분의 2 정도가 이러한 정부 지출과 소비의 결과였다는 것이 옥스퍼드 이코노믹스의 분석이다.
정부 지출은 선순환을 일으키며 민간 투자도 불러 일으켰다. 북일 수교 가능성이 높아질 때마다, 일본 건설업체들이 북한 진출의 단꿈을 꾸는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풀이할 수 있다.
영국의 옥스퍼드 이코노믹스가 이번 도호쿠 지진이 촉발한 경제 위기에서 여전히 희망을 엿보는 배경이다.
재정적자·原電 후폭풍 최대 변수
“흙먼지를 일으키며 아프리카 초원을 달리는 거대한 코끼리 떼의 위용은 대단하다. 먼지와 초원, 굉음으로 눈앞에 있을 때는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지만, 저만치 사라진 이후에야 실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경제 위기와 주가의 상관관계를 연구해온 영국 <가디언>지 톰 폴라니 기자의 설명이다.
일본 도호쿠 지진은 달리는 코끼리 떼를 방불케 한다. 코끼리의 난폭함, 굉음에 사로잡힌 시장 참가자들은 혼란스럽다. 영국의 시장조사기관인 옥스퍼드 이코노믹스가 예측한 올해 1분기 일본 국내 총생산(GDP) 하락폭은 0.2~0.5%.
쓰나미가 덮친 일본의 3월 산업생산은 5% 정도 급락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조사기관의 분석이다. 일본 경제는 작년 4분기에 이어 2분기 연속 성장률이 하락할 것으로 관측된다. 외양만 놓고 보면, 2분기 연속 경기가 뒷걸음질 치는 경기 침체(recession)의 재림이다.
하지만 비관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이 시장조사기관의 분석이다. 비극의 온상이자, 휴먼드라마의 무대인 지진은 대부분 경제적 관점에서만 보면 해피엔딩이다. 미국, 유럽 재건의 기회가 된 2차 세계대전이 그랬다. 일본 경제가 앞으로 3~4분기 동안 평균 0.6~0.8%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이 시장조사기관의 관측이다.
이 연구 기관이 제시한 올해 일본의 국내총생산 성장률은 1%. 오는 2012년 성장률은 2.5%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물론 고베 대지진과, 이번 도호쿠 지역의 지진은 그 파괴력만큼이나 몇 가지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 유출 공포는 일본을 비롯한 세계 경제를 짓누르고 있다. 이번 지진의 후폭풍을 섣불리 내다보기 어렵게 만드는 변수다.
일본 정부의 지갑이 6년 전에 비해 대폭 얇아진 것도 또 다른 악재다. 돈 쓸 곳은 많은데, 곳간이 텅 비어 있는 형국이다. 지난 1995년 고베 대지진 당시, 일본의 재정 적자는 국내 총생산(GDP)의 20%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일본의 재정 적자 규모는 지난 6년간 눈덩이처럼 불어나며 국내 총생산의 120% 수준으로 급증했다. 일본 경제가 지난 1990년대 이후 장기 불황에 빠져들면서 세수는 급감한 데 반해, 자금 사용처는 늘고 있는 탓이다.
아동 수당 증대를 약속하면서도 소비세 동결을 약속한 민주당 정부 복지 정책에 뭇매를 가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 배경이다.
살림살이가 궁한 일본 민주당 정부가 해외 자산 일부를 매각해 마련한 엔화를 들여와 재건작업에 투입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 니케이225지수(Nikkei225)는 지난 1995년 1월 고베 대지진 이후 빠른 속도로 회복한다. 하락폭의 3분의 2 이상을 회복하는 데 소요된 시간은 일주일에 불과했다. 일본 경제가 고베 대지진의 피해를 1년여 만에 극복한 것은 도로나, 항만 등 인프라 재건에 막대한 돈을 푼 결과다.
日 정부 美국채 팔아도 영향 제한적
영국은 컨설팅 부티크들의 천국이다. 해가지지 않는 제국은 유럽의 동향에 늘 민감했다. 나폴레옹을 견제하기 위해 스페인의 반군을 지원하고, 2차대전때 프랑스로 건너가 독일에 대항한 것도 정보의 힘이다. 보다폰을 비롯해 영국의 통신사들은 좁은 자국 영토에서 벗어나 일찌감치 아프리카, 유럽으로 달려갔다.
미지의 땅으로 가는 기업들에게 시장 침투 전략과 현지시장 정보는 생존의 양날개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도 이러한 세계 경영의 도우미이다.
이 시장조사기관은 이번 지진 사태가 단기적으로 일본과 교역국들의 교역 규모에 악영향을 줄 수 있지만, 일본 경제가 서서히 회복세를 보이면서 교역 규모 또한 회복세로 돌아설 것으로 내다봤다.
세계 경제 성장에 이번 사태가 미칠 파급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얘기다. 일본 정부가 세계 채권 시장에 미칠 영향은 어떨까. 일본이 경기 부양에 투입할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 재무부 채권(T-Bond)을 비롯한 해외 채권을 대거 팔 경우 미국채 이자율이 상승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물론 그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 옥스퍼드 이코노믹스의 분석. 일본 지진 사태의 여파로 글로벌 시장에서 안전 자산인 미국 채권 수요가 높아지면서 일본의 채권 매각 물량을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이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코노믹 리뷰 박영환 기자 yung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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