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고형광 기자] "대통령께서 여기 참석한 장관이나 차관을 믿지 못하신다면, 저를 믿고 자금을 지원해 주세요.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지난 16일 농림수산식품부의 내년도 업무보고에서 한 여성 사무관의 발언이다. 대통령은 물론이고 회의 참석자 모두 귀를 쫑긋했다. 듣기에 따라선 장차관을 무시하는 듯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30대 초반의 정아름 농업금융정책과 사무관은 "농업 특성상 자금 지원이 필요하다. 과거처럼 무조건 지원해 주는 보조금 방식 보다는 융자금 방식으로 가는 게 옳다"며 이같이 말했다. 5년차 사무관의 당찬 발언에 참석자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대통령 업무보고는 보통 장ㆍ차관과 국ㆍ과장들만이 참석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사무관 서기관 등 현장의 일선 실무자들까지 참여했다. 대통령이 정책을 만들어 내는 실무진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다고 해 이 같은 자리가 마련됐다고 한다.
또 다른 사무관은 소위 '자녀의 성공 요인 3가지'(할어버지의 경제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적당한 무관심)를 농업에 빗대 "할어버지의 경제력과 엄마의 정보력은 어느 정도 갖추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정부가 너무 과도하게 농어민에게 관심을 가져 오히려 농업의 자생력을 떨어뜨렸다"며 정부의 정책을 정면에서 꼬집기도 했다.
이에 이 대통령은 "정부가 너무 끼고 돌아서 경쟁력이 떨어진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나도 예전에 했었다"며 흐뭇해 했다는 후문이다.
하루 전인 15일 열린 지식경제부 업무보고에서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지경부의 한 사무관은 "대통령이 태블릿PC를 보면서 업무보고를 받는 것을 보니 신기하다"면서 "그런데 여전히 지경부 실ㆍ국장은 대면 보고를 받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연출된 것이란 논란도 있기는 하지만 이런 방식의 업무보고는 예전과 비교해 신선하다. 현 정부가 그간 젊은층과의 소통부재로 비판받아온 점을 감안하면 이같은 '2030세대'와의 격의없는 대화 자체는 새로운 변화를 시사하는 것임엔 분명하다. 문제는 진정성이다. 업무보고 뿐만 아니라 정책에서도 이같은 진정성이 발휘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렇다면 현 정치권이 안철수 신드롬을 걱정할 이유도 없을텐데.
고형광 기자 kohk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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