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지연진 기자]여의도 정가에 날씨 만큼이나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정치인들에 대한 후원금 얘기다. 매년 연말은 소득공제를 앞둔 직장인들의 소액후원금이 몰리는 '후원금 모금 성수기'이지만, 지난해 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청목회)의 '입법 로비' 사건의 여파로 올해도 후원금 실적이 저조하다. 총선을 넉 달 앞둔 각 의원실마다 '돈 줄'이 막혀 비상이 걸렸다.
최근 국회 의원회관은 우편 및 이메일을 통한 정치후원금 안내문을 발송하는 업무로 분주하다. 기존 고액후원금 기부자에 대해선 따로 명단을 작성해 직접 전화를 돌리며 후원금을 '독촉'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초선의원의 보좌진은 "생판 모르는 사람들에게 전화해 후원금 이야기를 하는 것이 정말 곤혹스럽다"면서 "후원금 모금이 제대로 안되면 의원이 난리를 치니 이래저래 고달프다"고 토로했다.
국회 정무위 소속 한 보좌관은 "보통 소액후원금은 연말에 많이 들어 오는데 올해는 (모금이)너무 안된다"며 "내년 총선 때 한번 더 독촉해야 하는 만큼 올해는 그냥 포기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정무위는 기획재정위와 국토해양위와 함께 힘 있는 피감기관을 둔 상임위로 꼽힌다.
이처럼 소액후원금이 줄어든데에는 지난해 청목회 사건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청목회가 회원들 명의로 1인당 10만원의 소액후원금을 행정안전위 소속 의원들에게 몰아주는 이른바 '쪼개기 후원금' 수법으로 입법 로비를 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소액후원금이 대폭 줄어들었다는 평가다. 실제 선관위가 집계한 지난해 건당 후원금은 15만7000원(기부건수 30만3457건)으로 2009년의 12만8000원(기부건수 32만1586건)에 비해 22.7%나 급증, 소액후원이 상대적으로 위축됐다.
청목회 사건은 소문으로만 무성하던 상임위 산하단체 등의 쪼개기 후원금에 대한 검찰 수사로 번지면서 소액후원금 모금을 더욱 위축시켰다. 청목회 사건은 후원금을 보낸 청목회 간부에 대해선 항소심까지 유죄가 선고됐고, 후원금을 받은 여야 정치인 6명도 1심에서 모두 유죄판결이 내려졌다. 또 지난 9월에는 김문수 경기도지사 후원회에 2억9980만원을 쪼개기 후원금으로 낸 혐의로 KD운송그룹 노조위원장 등 8명이 기소됐고, 최근에는 여야 의원들에게 10만원씩 총 4000만원의 후원금을 낸 KT노조 명단이 공개돼 논란을 빚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예전에는 은행본점에서 지점에 공문을 보내 소액후원금을 내도록 했는데 요즘에는 그런 것이 없다"며 "후원금을 내면 조사를 받을 수 있는데 누가 내겠느냐"고 말했다.
정치후원금이 대가성은 아니라도 보험성 성격이 짙은 만큼 현역 의원의 여의도 재입성 여부가 불투명해 후원금을 보류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지난해 후원금 실적을 살펴봐도 의원 1인당 평균 모금액은 한나라당이 1억 7160만 원으로 가장 많았고, 여야 대선 잠룡 중 박근혜 전 대표가 3억2032만원으로 최고액이었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공천도 장담 못하는 상황인데 누가 보험을 들려고 하겠느냐"며 "기업들이 말로는 청목회 사건을 핑계로 당선 가능성이 없어보여 안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예년에 비해 올해 국회의원들의 출판기념회가 봇물을 이루는 것도 후원금 부족분을 출판기념회를 통해 만회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다. 정치자금법에 따라 출판기념회를 통해 조성된 정치자금의 수입이나 사용내역은 공개할 필요가 없다. 보통 출판기념회를 열면 1~3억원 정도의 수익이 난다는 후문이다.
지연진 기자 gy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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