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꽃>. 딸아이의 몸에 피어오른 붉은 반점이 실은 나아지는 증상이라는 걸 들은 타블로가 선택한 이번 솔로 앨범의 제목은 그래서 ‘그’ 논란 이후의 것임에도 희망적이다. 가장 아프고 힘들어 보이는 순간이 실은 치유되고 있는 시간일 수 있다는 것. 뮤지션의 개인사를 음악에 대입하는 건 게으른 비평이지만 <열꽃>에 대해서만큼은, ‘여기만은 들어오지 마’라는 ‘집’에서의 절규와 ‘눈물 흘린 만큼만 웃어 봐도 될까?’라는 ‘고마운 숨’의 희망 어린 물음에 대해서만큼은 타블로의 지난 시간에 대해 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조심스럽게 시작한 인터뷰가 밝게 마무리될 수 있었다면, 뜨겁게 앓아냈던 시간을 통해 그의 마음에 강한 항체가 생겼다는 걸 확인한 때문일 것이다.
<#10LOGO#> 인터뷰 첫 질문으로는 이상한데, 이렇게 언론과 인터뷰를 하는 건 이제 괜찮나.
타블로: 1년 반 동안 공식적 인터뷰를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다 이렇게 다시 기자들과 앉아 음악 이야기도 하고 웃으면서 뭔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건 행복한 일이다. 좋은 이야기할 거리가 있다는 것도 좋고. 괜찮고 그런 문제가 아니라 그 이상으로 즐겁다.
“지난 시간이 꼭 끄집어내기 싫은 과거는 아니다”
<#10LOGO#> 힘든 1년 반이었다.
타블로: 학력 논란 초반에 내 가슴을 후벼 팠던 게, 어떤 팬이 내 CD를 다 부수고 사진을 찍어 보냈다. 정말 마음 아팠다. 들려주려고 열심히 만든 건데. 가끔은 내가 이렇게 어려운 일을 겪고 있는데 그토록 많던 팬들은 어디 갔지 싶었다. 위로의 편지 하나 받아본 적 없다. 그런데 이번에 돌아오며 느낀 게 내가 바깥으로 나가기 힘들었던 만큼 나를 응원하던 사람들도 그러지 않았을까 싶더라. 그래서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곳에서 기다려 준 거 안다고 감사의 편지를 팬카페에 스캔해서 올렸는데 그 때는 정말 외로웠다.
<#10LOGO#> 지금 인터뷰가 즐겁다는 건, 단순히 이번에 앨범이 나와서 하는 인터뷰가 아니라 그 1년 반을 어느 정도 극복했기에 할 수 있는 말일 텐데.
타블로: 어떤 한 시점에 극복 단계로 넘어간 건 아니고, 첫 순간부터 지금까지 모든 순간이 극복이었겠지. 그리고 다른 누구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싶지만 지난 시간이 꼭 끄집어내기 싫은 과거는 아니다. 잃은 것도 많지만 얻은 것도 엄청 많다. 만약 내가 뮤지션으로서 연예인으로서 계속 잘 되고 많은 사랑을 받았으면 지금처럼 내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까 싶다. 나는 아기가 태어나고 지금 뛰어다니고 춤추는 순간까지 매 순간을 함께 했다. 그런 건 누구에게도 쉽게 허락되지 않는, 돈이나 노력으로도 살 수 없는 시간이다.
<#10LOGO#> 그 와중에 음악을 만들기는 어땠나.
타블로: 아기를 갖게 되면 앉아서 뭘 할 수 없다. (웃음) 손이 열 개라도 부족하다. 애를 돌보며 생각만 계속 하다가 잠들면 적어놓고 잠들면 휴대전화로 멜로디 녹음하고 그랬다. 그러다 휴대전화도 공책도 가득 차니까 (강)혜정이가 음악을 다시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음악을 만들 때의 내 눈빛과 미소가 그리웠나보다. 그래서 4, 5시간씩 음악에 시간을 할애했다.
<#10LOGO#> 음악이 당시의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는 면도 있었나.
타블로: 되게 감사하는 것 중 하나가 음악이란 도구로 나를 표현할 수 있다는 거다. 나도 그 순간에는 절망했지만 나보다 훨씬 슬프고 아프고 억울한 일을 겪는 사람들이 엄청 많을 거다. 나는 적어도 음악이란 걸로 표현할 수 있지 않나. 모든 걸 잃었다고 느꼈을 때도 나는 고마운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닌가, 굉장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나아가 음악을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도 고맙고. 하고 싶은 말이 많아도 들어줄 귀 하나 없는 사람도 많은데 나는 그런 이들이 많다는 게. 나는 이 앨범을 듣고 사람들이 행복해지고 싶다는 생각, 아니면 행복이 소중한 것이니 잘 지켜야겠구나, 라는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다.
<#10LOGO#> ‘Airbag’의 ‘나만 섬인가봐’ 같은 가사를 볼 때 그런 아픔을 환기하게 된다. 하지만 감정을 토해내는 것과 그걸 가사로 남에게 들려주는 건 다른데.
타블로: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구별이 없었다. 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다. 진짜 나오는 대로 엄청나게 긴 가사들을 끝없이 중얼거렸다. 그걸 음악으로 만들려고 다듬고 바꾸고 줄이면서 지금처럼 된 거라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지 하는 생각을 할 필요가 처음으로 없었다. 녹음도 한 번에 끝난 게 많다.
<#10LOGO#> 사운드도 서정적인 면을 강조했다. 어쿠스틱 기타와 어쿠스틱 피아노를 전면에 내세우고, 드럼 프로그래밍까지도 어쿠스틱한 소리를 내려 했다.
타블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소리가 그렇다. 30대가 되어 그런지, 내가 시시해져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자극적인 소리들을 듣기 힘들다. 악기의 리얼 사운드가 따뜻하지 않나. 그게 듣기 편해서 많이 듣다 보니 자연스레 앨범을 만들며 사용하게 됐다. 전자음을 거의 안 썼다. 훌륭한 악기들이 이미 많은데 굳이 피아노 같은 악기를 안 쓰고 그럴 필요가 없지 않나.
“이번 앨범에서 나는 조연이다”
<#10LOGO#> 음악을 만들며 위로 받는 것과 그것을 앨범으로 공개하는 건 또 다른 일 아닌가. 시비 걸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떡밥을 던지는 게 될 수 있단 두려움도 있었을 텐데.
타블로: 혜정이와 양(현석)사장님 두 분이 용기의 100퍼센트를 채워줬다. 내가 용기를 낼 필요가 없을 정도로. 나는 이런저런 작은 질문들이 많았다. 이러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그런데 사장님이 네 음악이 좋다고, 이런 건 사람들에게 들려줘야 한다고, 음악을 만드는 애가 음악을 하는데 뭐 더 얘기할 게 있냐고 깔끔하게 말해줬다. 내게 없는 용기를 다른 분들이 내주니 너무 고맙지. 심지어 피쳐링 해준 분들도 다 그랬다. (이)소라 누나도 앨범 내야 한다고 그러고.
<#10LOGO#> 피쳐링 얘기를 했는데 <열꽃>은 첫 솔로 앨범인 동시에 정말 많은 피쳐링 참여가 있다.
타블로: 이번 게 솔로 앨범인 이유는 그 때 내가 혼자였기 때문이다. 뭔가 많은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교류도 했을 텐데 이번엔 작사 작곡을 할 때 혼자 있었다. 그래서 솔로 앨범으로서의 뿌듯함 같은 건 없다. 혼자 있어서 혼자 한 거니까. 피쳐링을 많이 쓴 건 그래서인지 모르겠다. 혼자 너무 다 하고서 외로워서. 피쳐링 도움을 받으면서부터는 안 외로웠다. 소라 누나와 ‘집’을 녹음할 땐 조규찬 선배님이 보컬 디렉팅을 해주셨다. 선배님을 예전부터 정말 좋아했는데 녹음하러 갔더니 계시는 거다. 얼마나 큰 영광이었겠나. 그래서 되게 웃기지만 이번에 녹음을 하며 ‘와... 이소라 선배님... 가수 이소라가 내가 만든 노래를 부르고 있다. 와, 즐겁다.’ 이러고 있었다. 신기해, 말도 안 돼, 이런 마음이었다.
<#10LOGO#> 디렉팅할 엄두도 못낸 건가. (웃음)
타블로: 디렉팅이라는 걸 할 수 없지. 이소라 선배님, 나얼 선배님 같은 분들을 내가 어떻게 디렉팅하나. 원하시는 대로 하는 게 고마운 거지. 이번 앨범을 보면 예전 앨범들과 달리 나는 조연 역할을 한다. 영화로 치면 시나리오를 쓰고 감독을 하지만 주연배우는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거지.
<#10LOGO#> 피쳐링을 통해 완성도가 높아졌는데, 그 완성도가 중요했나, 본인이 뒤로 빠지는 게 더 중요했나.
타블로: 사실 나는 퍼포머로서의 나보다, 곡을 쓰고 가사를 쓰는 걸 더 좋아한다. 가창하는 사람으로서는 한계가 너무 많다. 그래서 랩을 해야 하는데 목소리가 미쓰라처럼 멋있고 남자다운 것도 아니고. 작사 작곡 편곡만 하고 다른 분들로만 앨범을 만들고 싶을 때도 있다. 이번에도 몇 곡은 아예 안 부를 생각도 했다. 가령 ‘유통기한’은 내 목소리로 녹음되어 있는데, 다른 사람이 불러주길 바라고 가이드 녹음을 한 걸 낸 거다.
<#10LOGO#> 이소라, 나얼 등 피쳐링 멤버가 정말 화려한데 사실 가장 이름의 임팩트가 가장 강한 건 ‘고마운 숨’에 참여한 배우 봉태규다. 그렇게 잘 부를지 몰랐다.
타블로: 아무도 몰랐다. 나만 알았다. (봉)태규가 예전에 시트콤 할 때 (윤)종신이 형이 써준 노래를 부른 적이 있는데 듣고 깜짝 놀랐다. 이름이 안 써져 있으면 아무도 태규가 부른지 모른다. 그래서 항상 좋다고 생각했었는데 태규가 뮤지컬을 하고 트레이닝을 받으며 더 잘 부르게 됐다. 나랑 내 아내, 태규랑 태규 여자친구, 넷이서 노래방에 가서 우리끼리 ‘나는 가수다’를 한 적이 있다. 트로트면 트로트, 이렇게 장르별로 한 명씩 부르고 마지막에 점수 더하고, 그렇게 놀았는데 그 때도 너무 잘 부르는 거다. 그래서 피쳐링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번 엔지니어가 내 데뷔 때부터 함께 한 형인데 봉태규가 피쳐링한다고 하니 내레이션 할 거냐고 묻더라. 그래서 노래 부를 거라고 했더니 ‘이 노래를 봉태규가 부를 수 있을 거 같아?’라고 했다가 녹음 시작하자마자 ‘얘 잘 부른다’고 하더라. 내가 너무 아끼는 친구라 사람들이 이 친구의 다른 재능을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기쁘다.
“YG 사무실에 오면 음악 외에 다른 걸 생각할 틈이 없다”
<#10LOGO#> 이런 화려한 피쳐링은 뮤지션 타블로로서의 인맥인 건가, 새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의 도움도 있는 건가.
타블로: 태양을 제외한 나머지 분들은 YG와 전혀 관계없이 진행됐다. 나얼 선배님 같은 경우에는 내가 브라운아이드소울 앨범에서 랩을 했던 인연도 있고 친분도 있어 부탁했고, 다른 분들에게도 음악적으로만 부탁을 드렸다. 가이드 녹음과 가사를 보고 판단을 해달라고. 보고 아니면 안 해도 되니 부담 갖지 마시라고. 태양도 내가 YG와 뭘 하기 한참 전에 같이 작업하고 싶어서 혜정이 통해 부탁했었던 적이 있고. 그 땐 다른 곡이었는데 이번에 태양과 함께 하기로 하면서 태양이 좀 더 즐겁게 부를 수 있는 노래를 작업해야겠다는 생각으로 ‘Tomorrow’를 만든 거다.
<#10LOGO#> 사실 타블로의 전 이미지와 YG 같은 대형 기획사는 어울리지 않는다.
타블로: YG라는 곳이 안에서 보는 것과 밖에서 보는 게 다르다. 대형 기획사라고 하면 컨트롤이 많은 거 같은데 더 없다. 오히려 규모 작은 회사에 있을 경우에는 항상 대박이 나야 한다. 모두가 그걸 바라보고 있고 그래서 오히려 더 곡이 잘 안 나왔다. 부수적인 고민도 많이 하고 음악 외적인, 예능 같은 것도 많이 해야 하고. 여기선 애초부터 양사장님이 너는 아무 것도 신경 쓰지 말고 하고 싶은 음악만 열심히 만들라고 했다. 정말 고마운 말이고 실제로 환경이 그렇다. 사옥 3층에 가면 스튜디오가 있는데 빅뱅 친구들도 그렇고 모든 프로듀서들이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음악 이야기만 한다. 놀랍다. 여기 오면 음악 외에 다른 걸 생각할 틈이 없다.
<#10LOGO#> 배우는 것도 많겠다.
타블로: 예전에는 이기적이었는지 오만했는지 모르겠는데 혼자 다 잘할 거라는 착각을 많이 했다. 그럴수록 내 주변에 얼마나 뛰어난 사람이 있는지 잘 모른다. 다 자기가 해야 하니까. 여기 오며 느낀 건, 와, 뛰어난 사람이 엄청 많구나, 이 사람들이랑 같이 하면 할수록 배울 게 엄청 많겠구나, 하는 거다. 지금은 일 없어도 사무실에 온다. 테디 형 작업실에 들어가서 구경할 때도 많고. 그 사람들이 일하는 것만 봐도 배울 게 많다. 재밌다.
<#10LOGO#> 새 소속사에 둥지를 틀며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건 역시 에픽하이로서의 행보다.
타블로: 다들 잘 있다. (웃음) 이런 일들이 있기 전에도 에픽하이는 솔로를 하고 싶은 욕망이 컸다. 5집 앨범부터 ‘솔로 앨범 Coming Soon’이라고 써 놨다. 데뷔한지는 8년 밖에 안 됐지만 함께 음악한 건 오래됐는데 음악 욕심 있는 사람들이 그 시간 동안 한 명도 솔로를 안 낸 건 좀 그렇다. 지금 투컷도 혼자 준비하는 게 있다. 그렇게 각자의 음악 세계를 더 찾아가고 만들어야 뭉쳐도 의미가 있지 않나. 에픽하이가 향수나 추억에 기대는 그룹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 음악적으로 인간적으로 더 성숙하고 의미 있는 걸 해야지, 에픽하이를 좋아하던 사람들이 있으니 뭉치자는 건 의미가 없는 것 같다.
<#10LOGO#> 실제로 그 시간을 견뎌내며 성숙해진 것 같다. 공격적인 느낌도 없고.
타블로: 전에는 까칠했지. 적대적이었던 거 같다. 뭔가 부정적이고 건들면 팍 폭발하는 성격이었다. 심지어 그 때는 몰랐다. 그런데 뒤돌아보면 그 때 왜 그랬지, 싶고. 이젠 그런 게 없어졌는데, 지쳐서 그런 건지 성숙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
사진제공. YG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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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시아 글. 위근우 기자 eight@
10 아시아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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