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현 국민대 경영학 교수]가족사를 먼저 공개해야겠습니다. 제게는 손위로 누나가 일곱 명이나 있습니다. 3대 독자 아들을 원하셨던 부모님 마음을 전혀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린 시절에는 누나가 일곱이라는 사실을 당당히 이야기하기 어려웠고 꽤 많이 부끄러워하곤 했습니다. 군대 가면 누나 많은 사람은 편하게 지내니 좋은 점일 수도 있다고 위로해 준 친척 어른의 말이 그나마 제 희망이 되었지요.
하지만 웬걸요. 막상 자대 배치 후 의기양양하게 누나가 일곱이라고 외치자마자 다짜고짜 얼차려가 이어졌습니다. 바로 한 달 전, 예쁜 누나가 다섯 명이라고 거짓말했던 선임병이 있었다나요. 아무튼 수많은 여자들과 함께 사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사춘기엔 더더욱 그랬지요. 집안 가득한 여성지와 빨랫줄에 널린…. 그래서 집에서는 늘 땅만 보고 걸어 다녔습니다.
이런 불우한(?) 성장과정을 지닌 제게 공중화장실은 참으로 두려운 공간입니다. 제가 근무하는 직장은 물론이고 백화점이나 호텔의 화장실도 무섭기는 다 마찬가지입니다. 화장실에 들어섰다가 흠칫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고, 화장실에 갇혀 30분 동안 소리도 못 내고 갇혀 있었던 적도 있었으니까요. 제 공포의 대상은 바로 청소하시는 분들입니다. 예외 없이 거의 모든 우리나라의 남자화장실을 청소해주시는 분들은 여자입니다.
화장실에서 바지를 내리고 여자분들과 만나는 경험은 제게 너무 이상하고도 불편합니다. 변기에 앉아 있는데 청소하는 소리가 들리는 경우엔 공포영화가 따로 없습니다. 나가면 마주칠 것 같고, 안 나가자니 밖에서 계속 기다릴 것 같고…. 누군가의 행동 때문에 성적 수치심을 느끼면 성희롱에 해당한다는데, 그렇다면 저는 화장실에서 늘 성희롱당하고 있는 셈입니다. 가끔은 생각해 봅니다. 남자가 여자화장실에 들락거린다면 사람들이 그걸 그대로 놓아둘까 하고요.
외국 경험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제가 살았던 나라들로부터의 경험에 의하면 남자화장실 청소는 대개 남자가 하는 예가 많았고, 가끔 여자들이 남자화장실을 청소하는 경우엔 화장실 출입이 통제되어 있을 때뿐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여자의 남자화장실 청소가 일상화되어 있는 이유를 알아보려고 몇몇 알 만한 분들께 여쭈어 보았더니 청소에 있어 여자들이 더 꼼꼼하다거나 화장실 청소를 업으로 하고자 하는 남자를 찾기 어렵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훨씬 더 많이 이유로 꼽힌 것은 남자화장실 청소를 위해 별도로 남자를 고용하면 상당히 비효율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왕 고용된 여자청소원이 약간의 추가 작업만 하면 될 일이지 남자를 따로 고용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지요. 문제는 비용입니다.
저는 이런 상황이 늘 불편합니다. 그러나 사실 바지 내린 남자들이 가득한 화장실에 들어가야 하는 여자청소원 분들이야말로 그 불편과 어색함의 가장 큰 희생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그분들의 여성성을 애써 무시해야만 하고 또 그렇게 합니다. '나이 든 여자는 여자가 아니잖아.' 혹은 '이 분은 사람이 아니라 투명인간이다.' 화장실에서 어색한 자세로 청소원분들을 만날 때 우리는 그렇게 되뇌어야 견딜 수 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사회적 합의입니다.
우리는 최대의 효율성을 지고의 가치로 믿고 살아갑니다. 공공 부문의 방만한 운영을 지적할 때, 기업은 비효율성을 탄식할 때 우리는 거리낌없이 목소리를 높입니다. 효율성은 자본주의의 숭고하고 아름다운 가치라고 믿으니까요. 그러나 혹시 우리가 효율을 외치면서 중요한 것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저는 생각해 봅니다. 오늘도 화장실에서 두려움에 떨면서 말이지요.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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