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현준 기자] 최근 일부 대기업들이 담합 자진신고자 감면제도(리니언시)를 통해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을 감면받으면서 리니언시 제도가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공정위는 31일 한국과 대만의 기업 10곳이 LCD 패널 가격과 공급량을 담합했다며 과징금 1940억원을 부과했다. 그러나 업계 1ㆍ2위인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는 리니언시로 각각 과징금 100%, 50%를 감면받았다. 보름 전 생명보험회사 12곳에 대한 과징금 3653억원 부과조치 과정에서도 업계 1~3위인 교보생명과 삼성생명, 대한생명은 리니언시를 통해 과징금을 감면받았다.
그러나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리니언시는 반드시 필요하다. 리니언시를 통해 담합을 적발해낼 수만 있다면 일부사에 과징금을 면제해주더라도 최종적으로 소비자 후생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리니언시는 담합을 밝혀내기 위한 '필요악'인 셈이다.
리니언시가 불가피한 이유는 담합이 갈수록 교묘해지기 때문이다. 수사권을 갖고 있는 공정위 입장에서도 기업들의 내부 과정을 속속들이 알기는 어렵다. 사실상 내부고발이나 제보를 제외하면 담합을 밝혀내기 힘든 게 현실이다.
LCD담합을 조사하면서 공정위는 리니언시를 통해 가격견적계획, 고객별 선적량, 수율, 생산설비 가동율 등 각종 영업비밀 문건들을 확보했다. 업계는 담합모의를 '크리스탈 미팅'이란 이름으로 위장하고 "동료에게도 회의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말라"며 은폐했지만 리니언시로 들통났다.
리니언시를 통해 업계간 담합이 차후에 어려워지는 효과도 있다. 올 초 공정위의 치즈 업계 담합 적발 이후 해당 기업들은 서로 "못 믿겠다"며 관련 모임을 중단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한 번 담합에 걸려들면 상대방이 먼저 나쁜 짓을 고자질할까봐 걱정하는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 빠진다"면서 "담합을 억제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담합의 주도권을 대형사들이 쥐고 있다는 점이다. 대형사들은 담합을 하지 않으면 각종 내부 제재를 가하겠다며 담합을 끌어냈다. LCD 패널 담합에서도 대형사들이 대만의 중견 제조사 한스타를 위협해 가격을 인상했고, 생보사 담합에서도 대형사들이 간사모임을 결성해 담합을 결정하고는 중소형사에 통보하는 형식을 취했다. 통계상으로도 2008~2011년 8월 동안 대기업들은 담함사건에 부과된 6727억원의 과징금 가운데 절반을 넘는 3891억원을 리니언시를 이용해 감면받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대기업들이 담합을 강요하고 나서는 자기들만 쏙 빠져나갔다"는 중소형 생보사 관계자의 말도 전혀 틀린 것은 아니다.
리니언시 제도가 정착하는 과정에서 잡음을 내고는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소비자 후생을 증진하는 효과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현재 일부에서 제기되는 지적을 감안해 리니언시 제도를 보완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박현준 기자 hjun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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