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주역 이정철 동서식품 기술연구소 전무
국내 인스턴트 커피 시장이 심상치 않다. 최근 스타벅스가 인스턴트 커피 ‘비아’를 출시한 데 이어 지난 19일 동서식품이 새 인스턴트 커피 브랜드 ‘카누’를 출시한 것. 두 회사 모두 자체 기술력을 집약해 고급 인스턴트 커피를 내놓았다는 점에서 화제다.
특히 형태를 ‘미세 분말화’ 했다는 점에서도 서로 유사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맞대결 여부가 흥미를 끌고 있다. 그렇다면 ‘합리적인 가격으로 소비자를 사로 잡겠다’고 비아와 차별화를 강조한 카누의 이야기에 좀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
서늘한 바람이 부는 날씨였다. 따끈한 커피가 생각나는 이 무렵, 커피 마시는 모습이 딱 중후한 신사다. 우수에 젖은 눈빛은 모델로 나서도 될 법하다. 커피가 잘 어울리는 주인공은 동서식품 이정철(54) 기술연구소 전무. 그는 국내에 커피를 처음 선보인 회사 동서식품의 기술연구소 총괄 책임자 및 전무다. 커피 연구개발(R&D)을 책임지는 자리다. 신제품 출시 행사에 참석한 그를 만났다. 30여년 커피 연구개발에 매진해 온 달인에게서 카누 커피 뒤에 숨어 있는 과학의 세계에 대해 들어봤다.
카페 가지 않아도 즐기는 프리미엄 대중 커피
인천시 부평구에 위치한 동서식품 기술연구소. 연구원들은 조사를 통해 최근 소비자들이 고급 원두커피를 원하고 커피전문점에 대한 경험도 많아지고 있다는 점을 주목했다. 아메리카노가 대표적이다. 프리미엄 원두커피를 집이나 사무실에서 즐기기에는 번거롭고 커피전문점을 자주 이용하자니 경제적으로 부담되는 점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찾았다.
여기에 국내 소비자들의 입맛에 부합하면서 간편하게 마실 수 있는 제품을 개발키로 한 것. ‘인스턴트 원두커피’를 표방한 카누는 이렇게 탄생했다. 브랜드 이름도 ‘카페(Cafe)’와 새로움을 의미하는 ‘뉴(New)’라는 두 단어를 조합해 만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체 커피 시장은 연간 2% 정도 밖에 성장하지 못하는 반면 원두커피 시장은 인스턴트 커피 시장을 잠식하며 급성장하고 있다. 현재 커피믹스, 원두커피, 커피 음료가 다양하게 공존하는 가운데 신규 시장 개척에 대한 필요성이 커진 것이다.
인스턴트 커피 시장에서 압도적 1위를 차지하는 동서식품이 원두커피를 겨냥해 내놓은 고급 인스턴트 커피, 카누의 등장이 시선을 끄는 이유다. 이 전무는 “최근 소비자들이 요구하는 고급 원두커피의 수준을 맞추기 위해 카누는 기존 제품과는 전혀 다른 기술을 적용했다”고 말했다.
원료의 경우 고급 아라비카 원두 중 품질과 향미가 뛰어난 콜롬비아 원두를 중심으로 한 중남미 지역 마일드 100%를 사용했다. 고급 원두의 맛과 향을 최대한 잘 발현시키는 독보적 배전 기술도 적용했다. 또 배전된 커피 맛과 향을 그대로 유지시키기 위해 저온에서 최단 시간 고유의 향미를 뽑아내는 첨단기술 LTMS(Low Temperature Multi Stage) 추출 공법을 활용한 것.
“추출된 커피 액은 냉동건조로 커피 파우더를 제조하고 여기에 콜롬비아산 원두를 볶아 극저온에서 초미분쇄한 원두커피를 코팅, 카누 커피를 만들었어요. 물에 타기만 하면 바로 커피전문점 커피를 간편하고 쉽게 즐길 수 있는, 그야말로 ‘신개념 인스턴트 원두커피’죠.”
생산 공정 전체에 걸쳐 분쇄된 원두커피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질소를 주입, 엄격한 산소 함량도 관리한다. ‘직접 갈아 넣은 커피를 만들어 탄생한 고품질 커피’ 카누가 비아와 비교됐던 이유다. 하지만 카누는 가격 경쟁력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비아가 개당 1067원이라면 카누는 325원.
“비아는 글로벌 기준에 부응한 맛을 가진 훌륭한 제품이라고 봅니다. 반면 카누는 국내 소비자들 입맛에 맞춘 제품이라고 보면 됩니다. 비아가 슈퍼 프리미엄 제품이라면 카누는 대중적인 프리미엄 제품이죠.”
서로 다른 고객층을 지향하기 때문에 새롭게 창출되는 프리미엄급 인스턴트 원두커피 시장에서 상호 보완 관계를 유지하며 전체 시장을 키워 나갈 수 있을 것이란 설명이다.
평균 3000~4000원인 커피전문점 커피 가격과 비교해서도 큰 차이가 난다. 결국 굳이 카페를 가지 않아도 언제든 신선한 아메리카노 커피를 합리적인 가격에 편리하게 마실 수 있다는 게 최대 강점이란다. 제품 기술력이 우수한 만큼 제품 콘셉트를 정의하고 기초 연구를 시작한 것을 포함하면 카누의 연구개발 기간만도 3년이 걸렸다. 직접 비용도 수십억원이 들어갔다고.
카누를 연구 개발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뭘까. “무엇보다 현재 소비자들이 어떤 커피를 원하는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 고급 아메리카노 커피 수준의 고품질 커피를 요구하는 소비자들의 기대를 어떻게 충족시키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연구 부서와 마케팅 부서가 심도 깊은 토론을 통해 제품의 콘셉트를 만들고, 이를 구현하기 위해 원두 선정부터 제품 포장까지 모든 단계를 제로 베이스에서 연구 개발을 진행했어요. 기존 식품산업에 적용된 기술을 최대한 탐색한 것은 물론 연관 산업의 기술도 샅샅이 탐색했습니다.”
강력한 팀워크가 1위 수성의 비결
카누라는 혁신적 제품을 만들어낸 ‘본거지’인 동서식품 연구소 안이 궁금했다. ‘맥심 모카골드’ ‘맥심 오리지날’ ‘맥심 아라비카100’ 등 주력 제품인 맥심 커피의 출생부터 성장까지 함께 해온 이 전무에게 연구소 경영 원칙이 있다.
“구성원 간에 끈끈한 유대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혼연일체가 된 강력한 팀워크야말로 치열한 경쟁을 물리칠 수 있는 강력한 무기예요. 그 결과, 동종 업계 제품 카테고리에서 선전하고 있습니다. 특히 커피 부문에서는 시장의 독보적 위치를 점하게 됐죠.”
리더십도 비슷한 측면이 있을 것 같다. “회사 전체 분위기가 인화 단결을 강조합니다. 연구소도 구성원들 간에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통한 창의적 연구 풍토를 바탕으로 해요. 이에 기반해 공동 목표를 가지고 헌신하고 협력해 나가죠. 그러기 위해선 내 ‘재료’를 잘 알아야 합니다. 제 리더십 철학은 언제나 새롭게, 어제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코노믹 리뷰 전희진 기자 hsmile@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