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3일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6관 14:00
브리핑 죽은 사람들, 남겨진 사람들, 죽고 싶은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위로해주는 사람들. 영화 <알프스>에는 네 종류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칼로 무 자르듯 한 사람이 하나의 유형에만 속하는 건 아니다. 남겨진 사람 중에서도 죽고 싶은 사람이 있고, 누군가를 위로해주면서도 정작 본인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 중 네 사람이 ‘알프스’라는 모임을 만든다. 그들이 하는 일은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낸 유족들을 위해 한동안 망자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것이다. 테니스 선수였던 딸을 대신해 부모 앞에서 테니스화를 신고, 생전 좋아했던 향수를 뿌리고, 그녀가 그랬던 것처럼 수시로 물도 마신다. 물론 부모도 안다. ‘알프스’ 멤버가 자신의 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하지만 당장 딸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기에 그렇게라도 믿고 버티는 것이다.
관람포인트 괜히 영화 제목을 <알프스>로 지은 게 아니다. 따라서 ‘알프스’라는 모임명을 허투루 넘겨서는 안 된다. 그들이 모임명을 그렇게 지은 것은 자신들이 어떤 활동을 하는지 절대 눈치챌 수 없는 이름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알프스 산맥이 다른 산으로 대체할 수 없는 상징적인 존재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알프스 산맥이 그러하듯, 유족들에게 망자는 그 누구로도 대체할 수 없는 존재다. 아무리 똑같은 옷차림에 똑같은 말투를 사용해도 소용없다. 그럼에도 ‘알프스’ 멤버들은 그 사람이 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점차 집착이 강해지더니 이성을 잃기 시작한다. 위로하는 자와 위로받는 자의 뚜렷했던 경계가 점차 사라져가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나도 모르게 가슴이 답답해지는 호흡곤란 지수 ★★★
“신발 예쁘네.”, “어, 고마워.” 등장인물들은 그저 입만 뻐끔거릴 뿐, 다른 근육은 일체 사용하지 않는다. 무미건조한 대화의 연속이다. 웃음기도, 감정의 교류도 전혀 없는 이 영화를 관람하다보면 어느 순간 목을 축일 수 있는 무언가를 절실하게 찾게 될 것이다. 팝콘은 몰라도 콜라는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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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시아 글. 이가온 thirt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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