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희준 기자]한국 외환당국은 억울하게 느낄지도 모를 일이지만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호에서 한국 원화를 '빅스 커런시(Vix Currency)'라고 규정했다. 이코노미스트 주최 포럼에서 한 뱅커가 이런 말을 했다고 전했는데 빅스지수를 빗대어 한 말이었다.
빅스지수란 시카고옵션거래소에 상장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 옵션으로 앞으로 30일 동안 어떻게 변동할 것인가에 대한 시장의 기대를 지수로 만든 것이다. 이른바 변동성 지수로 공포지수로 통한다. 이 지수가 높으면 시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높다는 뜻이다.
달러에 대한 원화가치는 9월 한 달간 근 10%나 급락(환율급등)했다는 점에서 빅스 커런시라는 말이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에 문제가 있어 변동성이 큰 게 아니라는 점에서 '억울하다'고 느끼는 것은 정당하다고 하겠다.
원화의 변동성은 호황기에는 우리 금융시장에 투기자본이 몰려들어 원화가치를 올려놓고 불황기에는 투기자본들이 다른 곳에서 본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투자금을 회수하기 때문에 생긴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실제로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8월 5조3533억원어치, 9월 1조2801억원어치를 팔았다. 이 기간 코스피 지수는 17.04%나 하락했다. 특히 9월 말 3거래일 동안 코스피 지수는 10.9%나 폭락했다. 금융시장이 휘둘리니 신용부도스와프(CDS) 금리도 급등했다. CDS는 한국 기업이나 정부가 발행한 채권이 부도가 났을 때 보상해주는 금융상품으로 이 금리가 올랐다는 것은 그만큼 부도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뜻이 된다. 수출이 잘되고 있고,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기업이 즐비하며, 9월 말 외환보유액이 3033억달러로 결코 적지 않은데도 외환시장이 요동치고 CDS가 치솟으니 국민들은 기가 차서 땅을 친다.
그렇지만 이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외국인들은 한국에서 주식에서 차익을 남기고 빠져나가더라도 세금을 물지 않는다. 자본이득세를 물리지 않는 데 따른 것이다. 투기자본이 단기간에 주식을 팔고 나가기 쉬운 구멍이 뚫려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외국인 주식보유비중은 30%가 넘는다. 주가가 오를 때나 내릴 때나 외국인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게 오늘날 한국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의 현주소다.
'빅스 커런시'라는 오명을 떨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외환보유고를 확충해야 한다. 3000억달러가 넘었다고 하나 우리 외환당국은 9월23일 하루 동안 40억달러를 썼을 만큼 손이 크다. 우리나라는 단기외채가 적지 않은 만큼 이보다 훨씬 더 쌓는 게 현명하다. 또 은행들의 달러 조달 창구를 늘려야 한다. 기업으로부터 달러를 사는 것 외에 별다른 달러 조달 창구가 없는 은행들은 해외 도매시장에서 비싼 대가를 치르고 달러를 빌리고 있다. 은행이 해외로 가서 달러를 벌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수출로 번 달러를 해외에 보류시켜 둔 기업들이 달러를 국내에 들여올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세제혜택을 줘서라도 달러자금이 국내로 유입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 투기자본의 유ㆍ출입을 억제하는 장치를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 유가증권과 주식 등을 매매할 때 매기는 자본거래세인 토빈세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 투자자 반발은 보유기간이 길수록 세율을 낮춰주면 된다. 금융거래로 먹고사는 영국의 금융회사들이 강하게 반대하는 것은 그만큼 실효성이 크다는 반증이다. 유럽집행위원회조차 토빈세 도입을 제안했으니 생뚱맞은 방안도 아니다.
우리 외환당국자들이 이를 모를 리 없다. 알면서도 안 했다면 직무유기요, 몰랐다면 무책임하다. 언제까지 외국인들이 한국시장을 휘젓도록 내버려두고 한국은 소규모 개방경제라는 말만 되풀이할 텐가? 지겹지 않은가?
박희준 기자 jack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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