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원의 여의도프리즘]#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선 민주당의 처지가 옹색하다.
민주-평화 세력의 60년 종가이자 개혁-진보 진영의 중앙군, 주력군을 자임하던 입장에서 하루아침에 무소속 박원순 변호사를 범야권 단일후보로 만드는데 기여한 ‘불쏘시개’가 됐으니 말이다.
오동잎 하나 떨어지는 것도 이유가 있다. 제1야당이 이처럼 낮은 자리로 임한 데에 왜 그만한 연유가 없겠는가.
민주당의 깃발은 오랫동안 민주화운동의 선봉에서 펄럭였다. 리더와 당원, 지지자들의 ‘콘크리트’ 연대는 그 여정에서 끝내 기적을 일궈냈다.
그 시기, 조 순과 고 건 같은 외부인사는 당원과 지지자들이 부르면 주저 없이 민주당 행을 택했다. 민주당이라는 이름 석 자가 그만큼 묵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1987년 6월항쟁 이후 사반세기. 우리 사회의 핵심 이슈는 민주 대 반민주 구도에서 양극화 등 사회 경제적 민주화로 옮아간 지 오래다.
전선과 패러다임이 바뀌면 그에 대응하는 인물과 조직논리도 변해야 한다.
# 언제부턴가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무장한 정치 신인들은 민주당의 높은 진입장벽에 번번이 좌절했다. ‘그들만의 리그’라는 불만이 누적됐다.
젊고 비판적 유권자들 사이에선 민주당 조차 ‘구체제’로 인식한다. 그래서 유일한 대안으로 여기지도 않는다.
민주당의 쇠락은 이명박 정권 초기, 광화문을 덮었던 촛불시위 당시 예견된 바 있다. 그때 이미 사회적 어젠다를 먼저 창출하지도, 앞장 서 이끌지도 못하는 세력으로 자리매김 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의 현 주소는 이번 ‘10·3 장충체육관 경선’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동원과 참여, 버스와 지하철, 조직과 일반 시민?
1971년 4월 18일 박정희와 김대중이 격돌했던 장충단공원 유세 이래, 민주당이 이번처럼 낯설고 초라한 구도로 몰린 적이 있었나. 그 넓은 보라매공원과 여의도, 조선대 운동장을 제 발로 걸어 와 메워버린 수백만 지지자는 다 어디로 갔는가.
물론 박원순 측도 시민운동 조직을 총동원했다. 그러나 물어물어 장충체육관을 향해 모여든 ‘자발적’ 참여자의 다수는 민주당 후보를 찍지 않은 것으로 분석됐다. 그 대열에는 심지어 유모차를 끌고 온 여성 유권자도 있었다.
게다가 버스를 타고 모여든 당원 중 일부도 박원순 후보 지지에 가세한 것으로 선거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본선을 의식한 ‘전략적 투표’다.
민주당으로선 경악할, 범야권 전체적으론 균형추가 움직이는 중대 변화가 아닐 수 없다.
# 야권은 현재 대개편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 있다. 민주당 바깥에선 박원순 등의 시민운동 그룹과 안철수·조 국 등 이른바 ‘강남좌파’, 유시민의 국민참여당,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그리고 반한나라당 세력을 모두 묶어내겠다는 이해찬·문재인·문성근 등의 ‘혁신과 통합’이 반 한나라당 라인 안에 모여 웅성거리는 형국이다.
DJ는 13대 대통령선거에서 3위로 패배한 절체절명의 정치적 위기에서 7, 80년대 민주화운동을 함께 이끌던 재야세력 ‘평민련’에 지분 50%를 보장하고 입당시켜 당 전체를 완전히 새롭게 바꾼 바 있다.
민주당 지도부와 국회의원 당직자 그리고 각급 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의 위기의식이 자신들의 위치와 자리를 걱정하는 수준에서, 선배 당원들의 피와 땀 눈물이 배어있는 민주당 깃발에 대한 우려와 자성으로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
과연 수십 년 기득권의 달콤하고도 끈질긴 유혹을 떨쳐버릴 용기와 헌신, 정치적 상상력, 지도력이 민주당 내부에 아직 존재하는가.
장충체육관 경선 당시 당론에서 이탈한 것으로 보이는 ‘주름살 깊은’ 일부 고참당원들의 ‘해당행위’도 안철수·박원순의 50% 안팎, 민주당 지지율 20%대 격차에 대한 ‘읍참마속’의 해법 아니었을까.
민주당은 이제 전례 없는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켜 ‘더 큰 민주당’으로 도약하느냐, 아니면 지리멸렬한 만년 야당으로 연명하느냐의 기로에 섰다. 수권정당이냐 호남 골목대장이냐의 갈림길이기도 하다.
자칫 당 밖의 강력한 원심력에 의해 흡수당해 버릴 수도 있다. 선택은 민주당의 몫이며 주어진 시간은 길어야 1년이다.
광남일보 국장 dw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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