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빠르게 날아갈 줄은 몰랐습니다. 개봉 7일 만에 200만 관객의 가슴에 빠른 속도로 꽂혀버린 <최종병기 활>은 말 그대로 올 여름 극장가를 구원하는 ‘최종병기’로서의 역할을 든든히 해내고 있습니다. 인상적인 데뷔작 <극락도 살인사건>과 <핸드폰>을 거쳐 3번째 작품 <최종병기 활>을 내놓은 김한민 감독. 곱게 빗어 올려 묶은 머리, 인도 부처님 같은 얼굴, 하와이 사내 같은 다부진 체구를 가진 이 남자는 지금 당장 일어나 활을 잡고 사냥터로 나간다고 해도 전혀 어색할 것 같지 않습니다. 이렇게 시대초월, 국적초월의 외양을 가진 그의 관심은 아시안게임의 열기와 상관없이 전 주민이 차갑게 죽어나가던 외딴 섬 ‘극락도’에서, 최첨단의 ‘핸드폰’이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대한민국의 도심 한가운데로, 병자호란의 혼란에 빠진 조선과 압록강으로 장소와 시대를 초월해 달려왔습니다. 여기, 호탕한 태도와 날카로운 눈매로 만들어진 김한민이라는 화살을 ‘인터뷰 100’이 쏩니다. 꽤 짜릿한 놈이니, 피하지 마십시요.
100: 여러모로 영화에 대한 좋은 반응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실 <최종병기 활>이 <고지전>, <7광구> 등의 올 여름 블록버스터들과 비교해 볼 때 초반 기대치가 그리 높은 영화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뚜껑을 열고나서는 판도가 달라졌지만요.
김한민: 다행입니다. 영화를 너무 정신없이 몰아치듯 찍어 가지고 지금 반응에 대해서는 그저 감개무량 할 뿐이에요. 활액션이 이런 건지 몰랐다던가, 영화 내내 같이 호흡하는 느낌들이 들었다는 관객분들 이야기는 특히 고맙죠. 하지만 아직까지는 엊그제 크랭크업 한 느낌이에요. 후반 작업까지 너무 바쁘게 달려왔기 때문에 이제 겨우 휴 끝났네, 다행이다, 생각하고 있죠.
“역사적 리얼리티에 충실할수록 이 영화는 빛이 나요”
100: 관객들이 의도한 대로 봐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드시나요?
김한민: 그렇게 봐주시는지는 아직은 잘 모르겠고, 그저 만드는 감독 입장에서는 의도한 대로 그래도 찍은 것 같긴 하다는 생각은 들어요. 특별히 무너진 데는 없구나 하는 안도감? 이랄까. 워낙 바쁘게 제작되었던 영화다 보니 말씀하신 것처럼 초반 인지도가 크게 높지 않아서 쇼케이스도 열고, 되도록이면 시사회도 많이 가졌고, <7광구>하고 1주일 정도 간격을 두고 개봉한 것까지 흥행에 좋은 요소로 작용하지 않았나하는 생각도 들고요.
100: 제목이 ‘남이’도 ‘쥬신타’도 아니고 ‘병자호란’도 아니고 ‘활’입니다. 활을 전쟁도구 이상으로 캐릭터를 가진 무언가로 내세웠다는 느낌입니다.
김한민: ‘활’은 예전부터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었던 아이템이었어요. 역사적으로 전통이 단절되지 않은 드문, 거의 유일무이한 아이콘 중 하나인데요. 우리 활 문화는 145미터라는 먼 거리의 과녁을 놓고 쏘는 방식이고 전 세계적으로 활이 가장 짧고 가벼운데 반해 장력은 좋거든요. 그러면서 곡선을 만들어내죠. 그것이 남이라는 캐릭터로 대변되는 것이겠죠. 반면에 청나라는 대궁이라고 해서 활이 커요. 우리 활의 1.5배 1.7배 정도 되니까. 그리고 50미터 이내의 직선적 타격을 주로 하죠. 그런 면에서 활이 주는 콘트라스트가 딱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그 활을 닮은 캐릭터, 그 둘의 관계에서 대립과 대결, 쫓고 쫓김을 만들면 재미있는 그림이 나오겠다는 생각이 든 거죠. 그렇게 활이라는 것이 캐릭터를 만들어 내면서도 역사성과 민족성을 동시에 같이 담아갈 수 있겠다는 확신도 들었고요. 동시에 병자호란이라는 배경 속에 누이를 살리겠다고 달려가는 원초적인 생명력, 휘어질 듯 휘어지지 않고 부러질 듯 부러지지 않는 그런 활의 생명력이 사람을 살리고, 살게 하는 활(活)로서 중의적으로 해석되는 부분도 있고요. 관객들에게 울림과 재미를 동시에 가져갈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선택하게 된 것이죠.
100: 분단 이후 대륙으로 차단된 상태에서 50년 이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보니 오히려 <최종병기 활>이 보여주는 풍광이 판타지 같은 면이 있어요. 아예 중국 땅에서 싸우는 설정이라면 모를까, 그런 광활한 싸움이 우리 땅과 압록강 근처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 신선하게 다가오기도 했구요.
김한민: 고구려 민족의 구성원이 만주족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여진, 말갈이고, 발해의 역사를 봐도 그렇고 사실 우리와 가까운 땅이거든요. 태조 이성계도 활을 잘 쐈는데 그 주변에는 만주족 친구들이 많았다고 해요. 이후 이지란으로 개명한 퉁드란과 이성계도 활로서 서로 매력을 느끼고 형님 동생한 사이가 되었으니까. 이렇게 활로서 엮여있는 민족 간의 인연 같은 것들이 사실의 역사 속에 많았고 그래서 오히려 역사 고증들을 더 철저히 하면 할 수록 이 영화가 더 새롭게 보이겠다는 생각이 든 거죠. 액션 역시 퓨전이나 판타지로 가져가는 게 아니라 좀 더 땅에 닿아있는 사실적인 액션을 계속 주문을 했고요. 무술, 의상, CG 팀까지 이 영화는 고증에 철저한 역사적 리얼리티에 충실할수록 더 빛을 발할 거라는 이야기를 강조했죠.
100: 결국 역사에 대한 관심 속에서 활을 추출해 내신 건가요? 활이나 무기들에 대한 관심에 역사를 확장시킨 건가요?
김한민: 동시다발 같아요. 역사에 대한 관심은 어릴 때부터 많았던 것 같아요. <조선왕조 오백년>도 열심히 봤고, 중, 고등학교 때도 국사, 세계사에 이유 없이 끌렸고. 이후 성인이 되어서 감독으로서 기능하게 된 이후 늘 마음속에 품었던 ‘역사 3부작’ 프로젝트가 있었거든요. 사실 영화 속에서 역사를 가져오는 걸 보면 억울한 역사가 대부분이잖아요. 하지만 저는 우리 민족이 겪은 수난의 지점을 다루더라도 그 속에서 불굴의 정신, 고귀한 정신들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렇다면 그 역사를 통해 이 시대에 사는 사람들이 자긍심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큰 울림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리고 그 큰 울림들이 대중과 만난다면 상업적인 면에서도 같은 등식이 성립될 거라는 믿음. 그렇게 역사 3부작 즉 병자호란, 임진왜란, 일제 강점기라는 세 지점들을 생각했고 그 중에 1부가 <최종병기 활>이 된 거죠.
100: 무기들이 가지는 각각의 철학은 다를 것 같아요. 칼은 휘두르고 찌르는 마지막 순간까지 무사의 손을 벗어나지 않고, 총알이 날아간 이후에는 박혀버리는데, 활은 쏘는 이의 손을 떠난 이후 다시 회수되는 과정이 있잖아요. 특히 <최종병기 활>에서는 유독 쏜 화살을 다시 줍는 모습을 항상 보여주는 식이었어요. 이 과정에 특히 의미를 담으셨던 부분이 있으셨나요?
김한민: 실제로 당시 그들이 그랬을 테니까요. 화살을 회수하고, 화살의 개수를 항상 체크하고. 그래서 촬영할 때도 우리 스크립터가 늘 화살 개수를 챙겼죠. 아까 화살 몇 개 없어졌습니다, 마지막 NG에 화살 하나씩 남습니다! (웃음) 이렇게. 그런 리얼리티가 최종적으로 남이와 쥬신타가 남은 한 발의 화살로 겨루는 장면이나, 자신의 몸에 박힌 화살을 회수해서 마지막 화살을 쏘는 것 같은 극적인 고조를 만들어주었고 페이소스까지 뒷받침 해줄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류승룡 씨는 진짜 주신타다, 하는 느낌이 있었어요”
100: 총이나 칼은 현대에서도 여전히 무기로 쓰여지고 있지만 활은 스포츠 혹은 전통 이외의 무기로서의 기능이 상실되어 있고, 영화에서 선택한 만주어도 언어적인 활용도가 거의 없다고 보면 되는데 굳이 이렇게 없어진 것들을 불러 온 것에 대한 의미가 있나요?
김한민: 그 역시 역사적 리얼리티에서 이어진 선택이었어요. 만주어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이자면 당시 만주 사람들이 만주어를 썼을 텐데 중국어나 한국어로 하면 리얼리티가 떨어지잖아요. 적극적으로 재현하려 했던 것이죠. 처음엔 차선으로 몽골어를 쓰려고 했는데 다행히 고려대학교 민족 문화 연구회에서 만주어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었죠. 만주어는 언어학적으로 우리나라 고어를 연구하는데도 도움이 되고, 언어학적 계통연구에도 도움이 된다고 해요. 만주어가 한국어의 방언 같은 느낌이 있거든요. 예를 들어 북한에 ‘아오지 탄광’에서 ‘아오지’란 말이 만주어예요. ‘외지’라는 뜻이죠. 외지, 아오지, 느낌이 비슷하죠? ‘갑타카이’는 ‘쏘란 말이다’라는 뜻인데 ‘쏴라카이’ 라는 경상도 방언느낌도 나죠? 이렇듯 생소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한국어와 ‘사촌언어’인 셈이에요. 배우들에게도 한번 써봐라 쓰다보면 모국어처럼 편해질 거다, 했는데. 결국 배우들이 정서적인 전달력에 전혀 문제가 없이 쓰더라고요.
100: 특히 류승룡 씨 같은 경우 만주어 대사가 적지 않은데, 그 속에 위엄도 보여야 하고 감정도 넣어야 하는데 아마도 가장 큰 부담감을 느꼈을 것 같아요. 게다가 만주어라는 게 잘하는 사람을 본 적도, 심지어 하는 사람을 본 적도 없는 없을듯한데 말이죠. (웃음)
김한민: 대사가 적지 않은 게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만주어죠 뭐. 그런데 굉장히 잘하지 않았어요? 위엄도 넘치고. 류승룡 씨는 쓸수록 이 언어가 참 남성적인 언어 같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사실 이번 영화 찍으면서 류승룡 씨는 정말 프로구나 하는 느낌을 제대로 받았어요. 만주어를 저렇게 모국어로 제대로 하면서 연기에 하나의 빈틈도 없더라고요. 섬뜩했어요. 저 사람이 진짜 주신타... 다, 하는 느낌.
100: 어릴 적 활 쏘는 소리가 들리는 환경에서 자랐다고 하시던데요. 그런 고전적인 배경이 어울리는 연령대는 아니신 것 같은데도 말이죠. (웃음)
김한민: 하하하. 그런데 의외로 전국에 활터가 많아요. 근린공원 법에 보면 반드시 활터가 존재해야한다고 할 정도로. 주변에 많이 있는데 우리가 인지를 못할 뿐이죠. 가까운 사직공원에 가면 황학정도 있고요. 제가 자랐던 순천의 경우에도 집 앞에 공원 있었는데 항상 그곳을 왔다 갔다 하다보면 쉬이익- 탁! 쉬이익 - 탁! 하는 활소리가 들렸던 기억이 있어요. <최종병기 활>로 인해 국궁에 대한 관심이 많이 생기면 좋겠어요. 활쏘기란 게 집중력도 높아지고 동시에 쾌감이 있어요. 탁- 쐈을 때 조금 후에 과녁에 딱! 맞는 쾌감이란 게... 꽤 좋아요. 양궁선수들을 비롯해서 한국 사람들이 유독 활을 잘 쏘는 이유가 체질적으로도 있어요. ‘편두’라고 아이들을 눕혀서 키우는 습성이 있다 보니 입체적인 시각을 구성하는 눈에 있어서는 훨씬 더 유리하다고 하더라고요. 또한 하체에 무게가 집중되어 있는 한국인의 신체적인 특성도 활쏘기에 유리한 부분이기도 하구요. 여러모로 우리 민족 하고는 잘 맞는 셈이죠.
100: 사실 <극락도 살인사건>에서 <핸드폰>으로 그러다 <최종병기 활>로 가는 행보는 조금 의외일 수 있거든요. 저 역시 김한민 감독을 스릴러 같은 장르적인 즐거움을 더 추구하는 감독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고요.
김한민: 그건 조금 오해인데, 저는 오히려 장르보다는 주제에 관심이 많아요. 어떤 주제를 펼쳐놓고 싶은데 그 주제에는 과연 어떤 장르가 어울릴까를 찾는 것이지, 스릴러나 액션을 좋아해서 영화를 만들고 싶다, 이런 순서는 아니었죠.
100: 장르 영화광이었다가 그걸 만드는 사람이 된 건 아니란 말씀이죠. 그렇다면 영화적 성장 과정이 어떠셨는지가 궁금합니다.
김한민: 영화적 성장 과정... 이란 게 별로 없던 사람이에요. (웃음) 대학가기 까지는 그냥 착실히 공부하던 학생이었고. 물론 고등학교 1학년 때 배창호 감독님의 <깊고 푸른 밤>을 몰래 보면서 영화감독이 되어보면 어떨까 하는 막연한 꿈을 품긴 했고, 남들만큼 홍콩 액션 판타지 영화를 좋아해서 “아 나는 왜 홍콩에 태어나지 않은 걸까?” 하는 생각을 하는 정도였죠. 그러다가 대학 들어와서 영화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많은 영화를 접하고, 영화사 적인 공부도 하고 그러면서 영화에 대한 구체적인 꿈을 키웠던 것 같아요. 하지만 당시는 영화를 정치적으로 접근하던 시대라 괴리감은 조금 있었죠. 순수하게 영화를 영화로만 보고 싶은 갈구도 강했구요. 하지만 지금은 당시 같은 프로파간다는 아니지만 영화가 주는 메시지나 주제에 대한 중요성을 많이 생각해요. 그리고 그 주제를 전달하고 대중에게 접근하는데 있어서 장르라는 것은 꼭 필요한 것 같고요. 결국 어떤 장르를 선택하는가는 대중영화감독에게는 필연적인 거죠. 그리고 그 과정을 철저하게 거칠 때 더 큰 울림과 더 큰 재미가 나온다고 생각해요. <최종병기 활> 역시 그 과정에서 나왔구요. 그 반대급부적인 영화가 묘하게 일주일차로 개봉을 한 상황에서 이 영화가 흥미로운 잣대가 될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만약 <최종병기 활>이 없는 상태라면 올 여름 영화가 <고지전>이냐 <고지전> 아닌 영화냐로 구분되었을 텐데, 그런 지점에서 스펙트럼의 적절한 위치를 잡아주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언젠가 한국영화의 다양성에 기여하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요. 그 스펙트럼을 확장하거나 다양하게 만들어주는 지점에서 내 영화가 기능하고 있다는 생각에 보람을 느껴요. 뿌듯하기도 하고.
100: 어린 남이와 자인이의 성장사에 있어서 약간 이가 빠진 느낌이 들었어요. 다윗이 연기하는 분노하는 소년에서, 세상사 등진듯한 어른 박해일로 자라기까지의 과정이 혹 시나리오에는 있었는데 빠지게 되었던 건 아닐까 하는 의문요.
김한민: 시나리오에는 없었는데, 필요한 게 아니냐는 유혹과 회유와 지적은 좀 있었죠. 투자사에서도 그걸 원했고. 그런데 그런 드라마를 넣으면 초반이 너무 장황해지는 느낌이 있어서요. 결국 균형과 집중의 문제인데 이후의 활액션, 대결, 추격에 더 집중하자고 생각했어요. 사고적으로 이해시키기보다는, 관객이 본능적으로 이해할거다라는 믿음, 그래서 좀 아쉽더라도 이해할거다는 고집을 가져갔죠. 그건 나중에 드라마로 20부작 쯤 찍을 때나 넣자고. (웃음)
“역시 두려움은 직면하는 걸로 이겨낼 수밖에 없더라고요”
100: 사실 <최종병기 활>에 특히 여성관객들이 열광하는데는 원초적인 생명력을 가진 남성성의 등장도 있다고 봅니다. 최근 대중문화의 트렌드 안에서 멸종된 남성상이기도 하구요. 대륙적인 기질을 가진 남자들보다는 섬으로 살아가는 남자들이 많다고나 할까?
김한민: 아,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군요. 확실히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사극이기 때문에 등장 할 수도 있었던 단순하지만 로망적인 부분도 있고. 하지만 진짜 세상에는 아직 그런 남자들이 많답니다. (웃음)
100: <극락도 살인 사건> 이후 박해일 씨와 두 번째 작품인데요. 단순하게 질문 드리자면 박해일이란 사람 아니 이 배우가 왜 좋으세요?
김한민: 이상하게도 시나리오를 쓰다보면 해일이가 떠올라요. 설명할 수 없이 단지 박해일이 했으면 좋겠다는 뭔가 어울리는 느낌이... 나도 다른 배우들하고 놀고 싶고 그런데.... 늘 그러네요. (웃음) 이번 작품을 하면서 놀랐던 건 생각보다 너무 잘 뛰더라고요. 산비탈을 뛰어서 내려오는 느낌은 한 마리 노루 같달까. 노루하고 좀 닮기도 했어요.
100: 박해일은 좀 오묘한 배우라는 생각을 해요. 어떻게 보면 연기를 정말 잘하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만큼 전형적인 연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인어공주>처럼 반듯하고 순수해 보이는 느낌이 있지만 <연애의 목적>처럼 정말 징그러운 아저씨나 변태 같은 느낌도 있는. 그래서 원치 않았지만 결국 영웅에 가까운 삶을 살게 되는 남이라는 캐릭터가 박해일이라는 사람과 어딘가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는 생각도 문득 들었어요.
김한민: 그런 부분이 있긴 하죠. 하지만 의외로 박해일이 아주 장르적으로 연기를 잘해요. 물론 초반부에는 약간은 삐딱하고 이상한 느낌, 말씀하신대로의 박해일스럽게 연기하지만 중, 후반부으로 달려갈수록 정말 남이처럼 장르적인 연기를 잘 해내거든요. 그 사이 박해일 군이 상복이 없었다고 하는데 이번 작품으로는 꼭 상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웃음)
100: 왕자 도르곤 역의 박기웅은 의외인 듯 너무 어울리는 캐스팅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개인적으로도 기대가 큰 배우기도 하고.
김한민: 사실 <극락도 살인사건> 개봉할 때 <동갑내기 과외하기 2>가 같이 개봉했어요. 그때 박기웅을 보고 아 좋은 배우라고 생각했었는데 <추노>를 보면서 다시 확인하게 되었어요. 이 영화에서는 정말 도르곤 같이 연기를 했는데 자기 분량에는 어쩌면 남이를 능가하는 연기를 해내는 천재적인 기운을 느꼈죠. 제가 늘 박기웅의 발견이라고 이야기해요. 앞으로는 좀 더 비중 있는 배역을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그만큼 캐릭터 연구를 집중력 있게 하고, 섬세한 연기를 할 줄 알고, 감독과의 커뮤니케이션도 잘 소화해요. 배우다운 배우 같은 느낌? 농담이 아니라 앞으로 자주 봐야겠다, 영화에서 더 많이 같이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100: 남이가 호랑이를 처음만나는 공간은 뭐랄까 멋지기도 하고 신화적인 기운이 느껴지는 곳이더군요. 어디서 촬영하셨나요?
김한민: 딱 호랑이가 서식할만한 지점이다고 생각했죠. 포천에 비둘기낭이라는 곳이 있어요. 안타깝게도 수몰지구라 내년에는 볼 수 없어지는 곳이죠. 찍으면서도 이 장소가 남는 유일한, 마지막 영화이자 기록이 될 테니 잘 찍자, 했었죠.
100: 어쩌면 <최종병기 활>은 역사적, 장르적 포장도 많지만 결국은 한 남자가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에 대한 영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김한민: 두려움이라는 건 제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부분이기도 했어요. 예전부터 몇 가지 콤플렉스로 가지고 있었던 면들을 생각해보면, 그걸 직면하고 돌파해야만 뭔가 그 두려움에서 벗어난다는 뭔가 철학적 신념, 아니 그보다는 경험치가 있었거든요. 남이에게도 그런 장치를 주고 두려움을 극복해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건 참 멋진 설정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100: 두려움을 정면 돌파 했던, 그래서 극복해냈던 감독님의 경험은 무엇인가요?
김한민: 수영? (웃음) 어릴 때 강물에서 죽을 뻔 했던 기억이 있어서 그렇게 물가를 무서워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우리 형이 나를 물에 팍 밀어 넣더니 본인도 뛰어들어 내 목을 잡고 물속으로 막 쳐넣는거예요. 그리고나서야 수영을 하게 되었어요. 물하고도 친해지고. 또 초등학교 때 마스크 없이 포수를 보다가 얼굴에 공을 세게 맞았는데 그 이후로 포수를 못 보겠더라고요. 너무 두려운 나머지 계속 눈을 감게 되었거든요. 그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극복이 되었구요. 역시 두려움은 직면하는 걸로 이겨낼 수밖에 없더라고요. 그게 타의든 자의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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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시아 글, 사진. 백은하 기자 one@
10 아시아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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