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 창립 50돌]전기 극빈국에서 원전 수출강국..1만5000배 성장했다.
[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국내 유일의 전력사업자인 한국전력은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인 1961년 7월 1일에 설립됐다. 현재 한국전력 서울본부로 사용되고 있는 서울 중구 남대문로 2가 5번지 옛 경성전기 사옥에 한국전력주식회사라는 간판이 내걸리면서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몇 해가 지났지만 전쟁의 상흔은 여전했고 전력시설 파괴로 인해 전력난도 가중됐다. 당시 국내 송배전 손실률은 무려 29.35%에 이르렀다. 생산된 전기 가운데 70% 정도만 소비자에게 전달됐다는 뜻이다. 전력난이 지속됐고 전력이 불안정하면서 가정이나 공장에서 단전이 비일비재했다. 국민들의 삶은 불편하고 공장에서는 제대로 된 물건을 만들기가 어려웠다. 한전이 출범하면서 전력산업에는 과감한 누자와 기술개발이 이뤄져 전력품질도 좋아졌다.
◆최빈국이던 61년 설립..한강의 기적 같이 쓰다= 10년 뒤인 1971년 송배전 손실률은 3분의 1 수준인 11.4%로 대폭 줄었고 2000년대 들어서는 세계 최고 수준인 4%대에 진입했고 2007년 12월 31일에는 3.99%까지 줄였다. 미국(6.7%), 프랑스(6.7%), 영국(8.9%), 독일(5.7%), 일본(5.1%) 등 선진국이 따라오지 못하는 수준이다. 질 좋고 저렴한 전기는 국민경제와 산업활동에도 힘을 보탰다.
1960년 1인당 국민소득 70달러로 아프리카의 가나와 비슷한 수준이던 한국경제는 2010년 2만달러를 넘어섰다. 1964년에야 국가 최초로 1억달러를 기록했던 수출은 2010년 4674억달러로 사상 최대 실적을 냈고 세계 수출 순위 7위를 기록했다.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한국 경제성장의 핵심동력이 된 한국전력이 오는 7월 1일로 창립 50주년을 맞는다.
1961년 80만호에 불과했던 고객호수는 1991년 1000만호, 2001년 1560만호에 이어 현재 고객호수가 1923만호에 50년만에 고객호수가 24배가 늘어났다. 이 기간 중 발전설비는 36만7000kW에서 6556만kW로 179배, 배전선로는 3만7000km에서 지구를 30바퀴 돌고도 남는 120만km(창사당시33배)에 이른다.
총자산역시 134억원에서 129조 5178억원으로 1만배(9666배)가랑 늘어났다. 50년전 25억원이던 매출은 40조원(39조5066억원)에 근접하면서 1만5803배라는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룩했다. 한전은 한발 더 나아가 2020년에는 총 매출 85조원(해외매출 26조원 포함)을 달성해 세계 5위의 에너지·엔지니어링 회사로 도약한다는 구상이다.
◆첫 전기 1887년 들어와 =국내서 전기가 처음 들어오던 것은 120여년 전인 1887년 3월이다. 고종황제와 명성황후가 거처하던 건청궁에 설치된 16촉광의 전등 750개를 켤 수 있는 규모의 설비였다.
1898년 고종의 후원으로 설립된 최초 전기회사 한성전기는 1899년 5월 4일 최초의 전차를 운행함으로써 우리나라 대중교통사에 새로운 역사를 썼다. 1900년 4월 10일 종로에 3개의 가로등을 설치했는데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점등이었다.
1920년 3월 당시 전국의 전기보급률은 2% 미만에 불과했다. 8.15해방을 맞았지만 대부분의 전력시설이 북한에 있어 전력난에 시달려야 했다. 1948년 북한의 일방적인 5ㆍ14 단전과 6ㆍ25한국전쟁으로 인한 전력시설 파괴로 전력난은 더욱 가중됐다.
1961년 설립된 한전은 발전회사인 조선전업과 배전회사인 경성전기 및 남선전기의 전기3사를 통합한 단일 전력회사다.7월 18일 본사 강당에서 열린 회사 창립 기념식에는 윤보선 대통령을 비롯해 송요찬 내각수반, 버거 주한미국대사 등 많은 내외귀빈이 참석해 한전의 발족을 축하했다.
◆220v시대 개막=우리나라는 전력공급을 개시한 이래 오랜 기간 동안 저압수용에 대해서는 100V를 표준전압으로 삼아 왔다.1970년 1월 26일 상공부가 승압시행방침을 공표했고, 1972년부터는 신규 고객을 220V로 공급하도록 했고 1973년부터는 강원도 명주와 삼척지역 3000호를 시발점으로 계획승압을 실시함으로써 대역사의 첫발을 내딛었다.
1995년부터는 380V 동력승압을 추진했고 2005년에는 2차 배전전압을 220/380V로 단일화해 승압사업을 성공적으로 완료했다.1조4000억원의 투자비와 연인원 757만 명이 동원된 대규모 프로젝트인 승압사업은 국가 경제발전을 견인하고 국민생활의 편의성을 높였다. 또 전국의 모든 가정이 양질의 전기를 풍부하게 공급받을 수 있게 됐다.
◆고리1호기 원전 시대 개막= 1972년 9월 착공해 1978년 준공한 고리원전 1호기는 건설 기간 도중에 불어닥친 제1차 오일쇼크로 인한 공사 중단 사태 등 여러 난관을 차례로 극복했다. 가압경수로인 고리원자력 1호기는 설비용량 58만 7000㎾로서 외자 1억 7390만 달러, 내자 717억 4200만 원 등 총 1560억 7300만 원이 투입된 당시 국내 최대 규모의 단위사업이었다.
한전은 1970년대 두 차례의 석유파동을 겪으며 부채가 급증하고 발전연료비의 폭등으로 경영수지가 나빠졌다. 재무구조개선을 위해서는 민간주식을 정부가 매입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정부는 1980년 12월 31일 한국전력공사법을 공포하면서 한전은 공기업으로 탈바꿈했다.
◆국민주 2호로 증시상장..그리고 뉴욕에도 상장=1984년 6월 8일에는 경남 고성군 하이면 바닷가에서 국내 최초 유연탄 발전소인 삼천포화력 1ㆍ2호기 준공식이 열렸다.이어 보령화력 1ㆍ2호기가 준공됐다.
이들 대용량 유연탄화력은 1990년대 초ㆍ중반까지 18기에 이르는 대형화 표준 석탄발전소를 건설하는 길잡이가 됐다. 1987년의 한전 발전량은 1982년 대비 175%로 증가했으나, 연료비는 오히려 52%로 감소함으로써 1982년부터 1987년까지 모두 5차례에 걸쳐 전기요금을 크게 인하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한전은 1989년 6월 국민주 방식으로 정부 보유 한전주식의 21%를 매각해 이를 1989년 8월 10일에 한국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이때 발행된 주식은 기명식 보통주식 6억 833만 4637주로 액면가는 5000원이었다. 1994년 4월에는 정부의 해외증권거래소 상장 허용조치에 따라 같은 해 10월 해외주식 예탁증서(DR) 공모발행을 통해 상장시켰다.
◆필리핀 찍고 해외로 눈길= 1993년부터 시작한 한전의 해외사업은 1995년 1월에 필리핀 말라야화력발전소 성능복구 및 운영사업을 수주하면서 본격화됐다. 1995년 9월 발전소를 인수해 3년간 성능복구공사를 벌인 끝에 1998년 6월 1호기를, 10월에 2호기를 성공적으로 준공했다.
사업기간은 1995년 9월부터 2010년 9월까지 15년이고, 총 투자비는 미화 2억 6250만 달러, 사업기간 총수입은 약 7억 8000만 달러로 예상됐다. 한전은 이어 1996년 12월 120만㎾급 세계 최대의 복합화력 BOT사업인 필리핀 일리한가스복합화력 발전사업을 수주했다.
◆한국형 표준원전 탄생=영광 3ㆍ4호기의 건설을 통해 경수로 원전 국산화율 95%를 달성한 한전은 이어 추진한 울진 3ㆍ4호기를 통해 우리 고유의 원전인 한국표준형 원전 건설에 성공했다. 한국표준형 원전이란 우리 자체 기술로 개발한 100만㎾급 가압경수로형 원전을 말한다.
한전은 1996년 3월 20일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로부터 일괄도급방식으로 북한 경수로 건설사업을 책임지고 수행해 나갈 주계약자로 공식 지정됐다.
북한의 흑연감속로를 폐지하는 대신 경수로 원전을 건설해주는 KEDO 원전 건설공사를 수주했다. 한전은 KEDO와 수차례 협상을 거쳐 1999년 12월 15일 건설사업의 주계약을 체결하고 부지 정지공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2003년 1월 북한의 NPT 탈퇴를 계기로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KEDO 원전 공사는 중단됐고, 결국 2006년 6월 사업종료와 청산 결정이 내려졌다.
◆전력산업구조개편, 발전자회사 설립= 정부는 세계 각국의 전력산업 구조개편 모형을 참고해 우리 실정에 맞게 기본방향을 설정했다. 발전사업을 분할해 경쟁체제를 통한 경영효율을 높이고, 이어 분할된 발전자회사를 단계적으로 민영화하는 것이었다.
2000년 12월 23일 마침내 '전력산업 구조개편 촉진에 관한 법률'이 공포됐고 한전은 한국수력원자력과 5개 발전자회사(남동,중부,서부,남부,동서)로 분할됐으며 전력거래소가 설립됐다.
◆초초고압, 최초 해상송전선로 시대 개막=한전은 장거리 대전력 수송에 적합하고 345㎸ 송전선로 5개에 해당하는 대용량 전력을 수송할 수 있는 765㎸ 송전전압의 도입을 추진했다. 2002년 5월 신안성ㆍ신서산 변전소를 2002년 5월 준공해 역사적인 765㎸ 송전시대를 열었다.
2004년 4월 준공한 345㎸ 영흥화력 송전선로는 세계 최초 초대형 해상송전선로라는 점에서 우리나라 전력사에 한 획을 그었다. 한전은 2005년 3월 16일, 북한의 개성공단에 전기를 성공적으로 공급하기 시작했다. 1948년 5월 14일 북한의 일방적인 단전으로 끊어졌던 남북의 전력 혈맥이 57년 만에 연결되는 감격의 순간이었다. 당시 개성공단에 공급됐던 전력은 22.9㎸ 배전선로 2회선의 1만 5000㎾이었다.
◆UAE원전 수주, 해외 첫 원전수출=한전은 최초의 원전수출이란 부푼 꿈을 안고 2008년 UAE 원전 수출을 추진했다.
한수원 등 전력그룹사와 두산중공업으로 구성된 수주전담반을 가동했고 국내외 11개사의 원자력 전문가 80여 명으로 환상의 드림팀을 구성했다. 이들은 한전 본사 지하 2층에 마련된 워룸(War Room)에서 UAE원전 수주 직전까지 함께 일했다. 2009년 12월 27일 UAE원전 최종사업자로 선정됐다. 초기 5%에 불과했던 가능성을 뒤바꾼 것이다.
UAE 원전사업은 1,400MW급 한국형 원전 APR1400 4기를 건설하는 사업으로, 총 계약금액 약 200억 달러에 달하는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플랜트 수출사업. UAE 원전수출로 한국은 미국, 프랑스, 러시아, 캐나다에 이에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원전 수출국의 반열에 올랐다. 2011년 3월 14일에는 원전건설 현장인 UAE 브라카에서 역사적인 UAE 원전사업 기공식을 갖고 본격적인 건설에 돌입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한전은 2009년도 정부경영평가에서 96개 평가기관 중 유일하게 S등급을 달성한바 있다.
이경호 기자 gung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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