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전성호 기자]4년 전 이맘때도 그랬다. 월드컵과 아시안컵에서 연이어 고배를 마신 뒤, 한국은 강팀의 이미지를 잃어버렸다. 2002년 4강 신화는 말 그대로 '신화'였다. 1년이 멀다 하고 대표팀 감독이 경질되거나 사임했다. 이대로는 남아공행조차 힘들어 보였다. 대표팀 감독직은 말 그대로 '독이 든 성배'였다.
허정무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것은 그때였다. 지도자 인생을 건 도전이었다. 처음엔 시행착오를 겪었다. 비난과 경질론이 줄을 이었다. 위기를 극복하게 해준 건 신념이었다. 주변의 반응에 흔들리지 않고 오롯이 목표를 향해 정진했다.
이청용, 기성용 등 신예를 중용하며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이어 중심을 잡아줄 주장으로 박지성을 선택했다. 1년여 만에 환골탈태한 대표팀은 가시적 성과를 만들어냈다. 예선에서의 승승장구가 이어지며 월드컵 본선행 티켓을 일찌감치 따냈다. 결국 사상 첫 원정 16강이란 금자탑도 수립했다.
그 후 허 감독은 인천의 사령탑에 올랐다. 상황은 4년 전과 다른 듯 흡사했다. 시민구단의 열악한 재정. 스타 플레이어는 팔려나갔고 성적은 보잘것없었다. 유병수만의 '원맨팀'이란 인상도 강했다. 자연스레 서포터즈의 규모도 줄어들었고, 선수단 사이엔 패배주의마저 흘렀다. 2005시즌 준우승의 영광도 먼 얘기였다. 허 감독으로선 또 한 번 쉽지 않은 도전을 선택한 셈이었다.
부임 후 그는 기초공사에 몰두했다. 지난 1년간 키워드는 '흙 속의 진주 찾기'였다. 잠자던 재능을 하나 둘씩 깨워냈다. 스승의 신뢰와 배려 속에 어린 선수들은 자신감을 되찾았다. 김재웅, 박준태, 한교원 등이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들의 활약 속에 성적도 몰라보게 달라졌다.
최근 정규리그 10경기 5승 4무 1패. 시즌 초반 부진을 딛고 어느덧 리그 5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상승세는 징크스마저 무너뜨렸다. 창단 이래 단 한 번도 홈에서 이겨보지 못했던 수원에 승리를 거둔 것. 도약을 얘기하기에 충분한 성과였다.
그럼에도 허 감독의 자가 진단은 냉정했다. 그는 인천을 "만만히 볼 수 없는 팀은 된 것 같다. 특히 어린 선수들이 커 나가고 있다는 점은 만족스럽다"고 얘기했다. 그러면서도 "하지만 여전히 강력한 맛은 떨어진다. 잘한 경기도 있지만 잡을 경기를 못 잡아서 아쉬움도 많이 남는다. 굳이 점수로 평가하면 아주 높은 점수는 못 줄 것 같다"고 지적했다.
'강팀'이 되기 위한 다음 단계는 빼어난 기량을 갖춘 베테랑의 영입이다. 특히 A대표팀 시절 박지성같이 중원에서 팀의 중심을 잡아줄 대들보가 필요하다. 주장 배효성이나 전재호, 곧 부상에서 돌아올 정혁 등이 있지만 "이들보다는 한 단계 위의 선수가 필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급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재정이 여유롭지 않은 상황에서 무작정 거금을 풀기도 어렵다. 빼어난 기량의 외국인 선수가 대안이겠지만 100% 성공 가능성도 없다. 그렇기에 그는 "내년 시즌쯤 대표급에 해당하는 국내선수를 데려올 수 있었으면 한다"고 얘기했다.
특히 그는 연고지 출신의 프랜차이즈 스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허 감독이 개막 미디어데이 당시 이천수, 김남일 등 인천 출신 선수들의 영입을 꿈꿨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소속팀과 계약이 남아있고, 이천수의 경우엔 임의탈퇴 문제도 있어 아직은 '희망사항' 수준이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란 입장이다.
꿈을 향한 믿음은 주위의 차가운 시선과 조소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는 인천이 수비 위주의 재미없는 플레이를 한다는 지적에 대해 의연함을 유지했다.
"상대의 그날 전술과 기량에 따라 대처가 달라질 뿐이다. 경기 흐름이 상대에 있을 때도 무턱대고 공격을 펼칠 수는 없다. 반대로 우리 기세가 올랐을 때는 적극적으로 공격에 임한다. 더불어 우리 팀의 현재 사정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대표팀에서 포백을 구사하던 그가 인천에서 스리백을 채택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부족한 선수 자원과 구성에 맞춘 최적의 선택이란 게 그의 주장. 무작정 걸어잠그는 수비 일변도의 플레이도 아니다. 공격수는 예리한 역습으로 득점을 노렸고, 양쪽 윙백은 적극적인 오버래핑으로 이를 지원했다. 그만큼 효율적인 경기를 펼친 셈이다.
25일 서울과의 원정경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수중전 속에서도 인천은 밀리지 않는 경기력을 과시했다. 미드필드에서부터 빈틈없는 압박으로 상대 공격 루트를 차단했다. 더불어 전방의 루이지뉴와 한교원의 스피드를 앞세운 공간 침투를 활용해 꾸준히 서울을 압박했다. 결과는 1-1 무승부였지만 인천이 재미없는 축구를 했다는 평가를 내리기는 힘들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날 수 없는 거위 같은 모습. 모두가 힘들 거라 했지만 허 감독의 꿈을 향한 믿음은 인천을 변모시키고 있다. 그리고 그 꿈은 현재진행형이다. '비상'은 더 이상 과거의 영광이나 공상이 아닌,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스포츠투데이 전성호 기자 spre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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