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상미 기자]"잠깐 외출할 때도 얼마나 마음이 쓰이는지 몰라요."
한명자(38)씨는 집에 돌아와서 외동딸 지은(7)이가 보이지 않을 때마다 속이 까맣게 타들어간다. 아무리 혼자 나가면 안 된다고 말해도 소용없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는 아동성폭력사건에 마음 졸이던 한씨는 8일 딸과 함께 '빨간모자야, 노래를 부르렴'이라는 뮤지컬을 보고 한시름 놨다. 아이에게 무조건 '안돼! 하지마!'라고 말하는 것보다 '왜 안 되는지' 이해시키는 게 중요하다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8일 오후 2시 서울 금천구 금나래아트홀. 뮤지컬의 주인공 빨간모자 체리가 숲속에서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나무꾼 아저씨를 만났다. "아저씨한테 뽀뽀해줘" "그건 좋아하는 사람한테만 해주는 거예요""그럼 아저씨 안 좋아해?" "그런건 아닌데…" 체리가 아저씨에게 뽀뽀하자 객석에 자리 잡은 500여명의 6~7세 아이들이 "그러면 안돼!"하며 소리를 지른다. 아저씨는 체리에게 "뽀뽀한 건 절대로 비밀"이라고 다짐받는다.
다음 장면에서는 또 다시 할머니 댁에 가려고 숲길을 걷는 빨간모자 체리에게 아저씨가 다가온다. 이번에는 "엉덩이가 포동포동해졌구나. 좀 만져볼까?"하는 아저씨의 말에 체리가 "싫어요"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아저씨의 태도가 돌변하면서 "혼나야겠다"며 체리를 위협한다.
이은희 여성가족부 권익지원과장은 "이런 상황이야말로 아동 성폭력 사건의 전형적인 패턴"이라며 "가해자들은 친분을 이용해 피해 아동에게 쉽게 접근한 다음 성폭력을 저지르고 비밀을 지켜야 한다는 약속을 하거나 아이가 반항하면 협박하는 양상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그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서 아이들이 잘못됐다고 이해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잘못이라고 인식해야 "만지지 마세요! 싫어요! 도와주세요!"와 같이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부모가 아이에게 이러한 상황을 들려주고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함께 얘기해보는 연습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김두나(33) 기획조직국장은 "실제로 아이들에게 모르는 사람을 따라가지 말라고 말하는 건 아동성폭력을 예방하는 데 큰 의미가 없다"며 "아동성폭력의 80%는 아는 사람을 통해서 벌어진다"고 말했다. 따라서 아이에게는 "가족이외에는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따라가서는 안된다"고 정확하게 범위를 정해주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김 국장은 "부모가 아이의 성폭력 피해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무리 화가 나고 답답해도 '왜 거기 갔느냐','너 때문에 못살겠다'와 같이 아이를 다그치는 방식으로 얘기해선 안 된다. 부모의 말 한마디 때문에 아이는 피해사실을 자신의 잘못으로 받아들이고 죄책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피해사실을 알게 되면 우선 아이에게 '너의 잘못이 아니야','이제 너는 안전해','엄마가 혼내줄게' 등과 같은 말로 안심시키고, ONE-STOP지원센터나 해바라기아동센터, 여성긴급전화1366, 성폭력 상담소 등에 연락해 필요한 지원을 받는다.
여성가족부(장관 백희영)는 한국교육방송공사(EBS)와 공동으로 이번 달 23일까지 총 10회에 걸쳐 아동 성폭력 예방을 위한 어린이 뮤지컬 '빨간 모자야, 노래를 부르렴'공연을 할 계획이다.
13세 미만 아동의 성폭력 피해신고 건수는 지난 2005년 738건에서 2010년 1012건으로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여가부는 아동대상 성범죄의 지속적인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이번 공연과 같은 스토리텔링 중심의 성폭력 피해대응 매뉴얼을 마련해 지속적인 교육에 나서기로 했다.
이상미 기자 ysm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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