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스패로우가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옆엔 더 이상 엘리자베스(키이라 나이클리)도 윌(올랜도 블룸)도 그리고 해적선 ‘블랙펄’도 없다. 대신 옛 연인이었던 안젤리카(페넬로페 크루즈)가 그녀의 아버지 ‘검은 수염’(이안 맥셰인)의 배를 끌고 나타난다. 1편에서 영원히 죽지 못하는 것이 ‘저주’였던데 반해 4편에서는 영원한 젊음을 획득하려고 모두 애쓴다. 영국왕의 충실한 부하가 된 바르보사(제프리 러쉬)와 스페인 함대가 앞 다투어 영생을 준다는 ‘젊음의 샘’을 향하는 가운데 “바다와 하늘에 운명을 맡기는 것이 해적의 인생!”이라 자신만만하게 외치던 잭 스패로우까지 검은 수염에게 발목이 잡힌 상태로 이 레이스에 합류하게 된다. <#10_LINE#>
캡틴 잭만으로는 더 이상 힘들다
<캐리비안의 해적: 낯선 조류>는 감정의 동요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오랫동안 줄을 서서 3, 4분의 짜릿한 쾌감을 즐기는 놀이동산의 어트랙션처럼 즉각적이고 아찔한 재미를 만끽하는 것으로 족한 영화다. 지난 4년간 새롭게 착장한 3D 선글라스는 관객들의 심장을 향해 순간순간 거대한 칼을 실감나게 휘두르고 런던 시내를 가로지르는 마차 추격신이나, 절벽 끝에 매달린 해적선 안에서 바르보사와 잭이 시소 타듯 벌이는 액션 신은 21세기 대표 프랜차이즈 블록버스터다운 여전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특히 선원들을 유혹하다가 굶주린 늑대들처럼 달려드는 인어 떼의 습격은 강렬하다. 그중 맨 먼저 얼굴을 보여주는 인어, 모델로 유명한 젬마 워드의 아기 같은 얼굴은 “인간의 고기를 탐하는 바다의 마녀”라는 경고를 망각하게 만들만큼 홀리게 아름답다.
8년 동안 4편의 시리즈가 제작되면서 해적 왕 잭 스패로우는 이제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다. 두건에 스모키 화장, ‘소’자 수염, 치렁치렁 온 몸을 감싼 장신구, 독특한 말투와 흐느적거리는 걸음걸이 등 캡틴 잭의 스타일은 이제 누구나 따라할 수 있을 상징으로 굳어졌다. <캐리비안의 해적: 낯선 조류>에서 런던 사람들이 잭 스패로우를 사칭한 누군가를 진짜 잭이라고 굳게 믿는 것처럼. 이렇듯 2003년, 잭 스패로우라는 희대의 캐릭터를 앞세워 등장한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는 2편까지의 안정적인 항해와는 달리, 동시에 촬영되어 이듬해 개봉한 3편에서부터 성긴 시나리오의 한계를 드러내며 아슬아슬하게 요동쳤다. 전편들을 연출한 고어 버번스키로 부터 키를 물려받은 <시카고>, <나인>의 감독 롭 마셜의 해적선 역시 ‘낯선 조류’ 앞에서 조금은 걱정스런 항해를 이어간다. 끊임없이 제기되던 ‘게이설’을 잠재우려는 잭의 옆에는 보이쉬한 영국 미녀 대신 풍만한 스페인 미녀를 세웠지만 두 사람의 로맨스는 좀처럼 댄스 파트너 이상의 끈적함을 만들어 내진 못한다. 물론 선과 악, 영웅과 반영웅 사이, 그 모호함의 바다에서 즐겁게 헤엄치는 잭 스패로우의 매력은 어제도 오늘도 아마 미래에도 영원할 것이다. 그러나 제 아무리 잭 스페로우라고 해도 홀로 2시간이 넘는 블록버스터를 끌고 가는 것은 무리다. 지금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에 필요한 건 잭 스패로우에게 ‘젊음의 샘’을 수혈하는 것이 아니라 잭과 함께 뛰어놀 새로운 캐릭터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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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시아 글. 백은하 기자 one@
10 아시아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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