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폭등에 시달리며 생계를 걱정하는 서민들은 요즘 들려오는 황당한 뉴스에 허탈하다. 역외탈세로 4100억원이 넘는 사상 최고액의 세금을 추징당한 선박왕 얘기나 마늘밭에서 쏟아져 나오는 110억원의 현금다발을 보고 들으면서다. 마늘밭 돈다발은 불법 도박 사이트로 단기간에 벌어들인 돈이라고 한다. 이들이 국경을 넘나들며 불법으로 벌어들인 돈과 탈세액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다.
국세청 발표를 보면 선박임대 및 해운업을 경영하는 권 모 회장은 '유령인간'으로 불릴 만하다. 그의 해운회사는 160여척에 달하는 선박을 소유, 자산이 10조원을 넘지만 선박의 소유는 해외 조세피난처에 세운 페이퍼컴퍼니로 돌렸다. 권 회장의 1조원이 넘는 개인재산은 전부 해외 페이퍼컴퍼니로 명의가 돼 있다. 말로만 '회장님'일 뿐 회사 대표이사도 맡지 않았다. 국내에서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기 위한 전략이었고 위장술이었다는 게 국세청의 말이다.
권 회장뿐 아니다. 사지도 않은 기계장치를 수입한 것처럼 장부를 조작해 법인세를 탈루한 사람도 있고, 홍콩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고 실제 가격보다 싸게 수출한 기업인도 있었다. 이런 사례들을 포함해 국세청의 올 1분기 역외탈세 추징액은 무려 41건, 4741억원에 달한다.
또 그제까지 경찰이 전북 김제의 마늘밭에서 굴착기로 파낸 돈 110억8000만원을 보면 기가 찰 정도다. 형제와 처남 등 일당이 공모해 홍콩에 서버, 중국 칭다오에 콜센터를 각각 만들어 불법 도박 사이트를 개설한 뒤 1500여억원의 매출을 올렸다고 한다. 그중 170억원을 수익으로 챙겨 5만원권 22만여장을 마늘밭에 묻은 것이다.
경제개방 시대에 지능적으로 탈세를 하거나 국경을 넘나든 불법 인터넷 도박 사이트로 돈을 벌어들인 지하경제의 단적인 사례들이다. 그런데도 수십년 된 탈세가 이제야 드러났고, 불법 도박 사이트로 엄청난 돈을 번 사실이 마늘밭에서 돈다발이 우연하게 드러나면서 알려졌다. 범죄는 날고 당국의 추적은 긴다는 표현이 맞을 듯하다. 정부는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 탈법과 탈세로 부를 축척하는 지하경제를 발본색원해야 한다. 서민의 박탈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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