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아침에 '사람을 죽인 죄인'이 됐다. 서남표 카이스트(KAIST) 총장 얘기다. KAIST 학생들의 잇단 자살이 서 총장 때문이라며 너도나도 돌을 던진다. 서 총장이 도입한 성적에 따른 등록금 차등제와 100% 영어수업 등 지나친 경쟁 시스템이 학생들을 자살로 내몰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일부 학생들은 "우리를 컨베이어벨트 위에 줄 세워 놓고 틀에 억지로 몸을 끼워 맞추도록 강요한다"고 서 총장을 비난했다. 무한경쟁에 내몰려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 학생들 의견에 동조하는 학내 교수들도 있고 몇몇 나서기 좋아하는 외부 인사들도 가세하고 있다. "학생 자살에 책임을 지라"며 서 총장 퇴진을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경쟁구도' 잇단 자살 원인 공방
늘 앞자리에만 서던 수재들이 경쟁에 뒤졌을 때 느끼는 열패감이란 보통의 학생들이 느끼는 그 이상일 것이다. 등록금 차등 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이 학습 동기 부여에 그치지 않고 학생들이 스스로를 '패배자'로 생각하는 좌절감에 빠지게 한다는 데 있다는 어느 학생의 얘기는 일리가 있다.
그러나 그게 전부일까. 서 총장 이전에도 KAIST에서 10여명이, 서울대에서도 해마다 1~5명의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또 올해 숨진 네 명 중 두 명은 평점이 3.0 이상이라고 한다. 일류만을 지향하는 사회적 분위기, 자식들의 능력과는 별개로 그저 앞서가야 한다고 채근하는 부모들, 한두 번의 실수에도 쉽게 좌절하는 학생들의 나약함 등 사회적 요인과 개인 심리를 복합적으로 두루 살펴봐야 할 일이지 어느 누구 하나에게 돌을 던질 일은 아닌 것이다.
경쟁 시스템의 긍정적 측면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서 총장 부임 이후 KAIST의 글로벌 경쟁력이 크게 뛰었다는 외형적 성과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한 학생은 KAIST 학내 커뮤니티에 올린 글에서 자신이 좋은 학점을 유지하는 이유 중 하나로 등록금 제도를 꼽았다. 열심히 공부하는 자극제가 됐다는 것이다. 전공 하나도 벅차다고 하지만 복수전공과 부전공을 하는 학생도 많다고 한다. 특히 전과가 비교적 자유로워 하고 싶은 공부를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학생들도 있었다. 자살의 원인을 서 총장의 개혁조치 때문으로 몰아가는 것은 옳지 않다는 반론인 셈이다.
등록금 차등제도 그렇다. KAIST 학생들은 서 총장의 개혁 조치 이전인 2007년까지는 등록금을 내지 않았다. 연간 1000만원이 넘는 등록금을 내야 하는 다른 보통의 학생들과 달리 전액 국민 세금으로 공짜 교육을 받았다. 국가가 과학입국의 영재를 키운다는 명분으로 특혜를 줘온 것이다. 특혜에는 상응한 값을 하는 게 타당하지 않은가. 잘하든 못하든 똑같은 특혜를 준다면 오히려 그게 불합리한 것 아닌가. 없앨 게 아니라 기준을 완화하더라도 존치시키는 게 바람직하다.
자극제 등 긍정적 측면도 있어
학생들이 경쟁력을 갖도록 공부를 시키는 것은 대학의 당연한 책무다. 입학만 하면 졸업은 쉽다는 말이 나오게 하는 건 잘못된 일이다. 경쟁이 불가피한 현실에서 '평준화 사고'에만 젖어 있는 건 편협한 시각이다. 교수와 학생과의 소통이 미흡해 개혁에 따르는 부작용을 미리 막지 못한 점은 아쉽다. 하지만 KAIST를 세계 유수의 대학으로 키우겠다는 목표의 '서남표식 개혁', 경쟁 시스템 자체를 매도할 건 아니다.
그리스 신화의 고전으로 꼽히는 신통기(神統記ㆍTeogonia)를 지은 BC 8세기 말 그리스의 시인 헤시오도스. 그는 장시 '노동과 나날(Erga Kai Hemerai)'에서 일찌기 인간 사회의 경쟁을 두 가지로 꿰뚫어 봤다. 전쟁과 폭력 등 적을 만드는 나쁜 경쟁과 '게으름뱅이도 일하게 만드는' 좋은 경쟁이다. 선의의 경쟁은 장려할 일이다.
어경선 논설위원 euh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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