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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경선칼럼] 시장에 나타난 호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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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경선칼럼] 시장에 나타난 호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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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비어, 의도적일 때 문제
정보 숨김없어야 자정능력 커져

[아시아경제 어경선 논설위원]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 한 사람이 말하면 믿지 않을 것이다. 두 사람이 말해도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그러나 세 사람이 연이어 같은 얘기를 한다면 그때는 '정말로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곧이듣게 된다. '삼인성시호(三人成市虎)'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위나라 혜왕의 고사에서 유래했다. '세 사람이 짜면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거짓말도 꾸며낼 수 있다'는, 유언비어의 파급력과 해악을 명료하게 짚어낸 말이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와 관련한 유언비어가 횡행한다고 한다. 폭발 사고로 유출된 방사능이 한국에 상륙한다, 비에 섞여 우리나라에 내린다 등등. 확인되지 않은 얘기들이 마치 사실인양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삽시간에 퍼져 나가고 있다. 그 여파로 다시마 등을 사재기하는 국민도 있다고 한다. 괜한 걱정을 하는 게 아닌가 싶지만 그 만큼 불안해 한다는 얘기다.

유언비어가 부정적 기능만 하는 건 아니다. 1970~80년대 군사독재 시절 '유비통신'이 막힌 언로를 대신한 것이 그 방증이다. 문제는 의도적인 악의가 보태질 경우다.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는 등 폐해가 크다. 더구나 요즘은 정보기술(IT)의 발달로 구전(口傳)과는 비교할 수 없이 빠른 시간에 널리 퍼진다. 해악은 그만큼 더 커질 수밖에 없다. 2008년 광우병 파동, 지난해 3월 천안함 폭침, 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 때가 그랬다.


우리만 그런 것도 아니다. 미국의 경우 '9ㆍ11테러'가 미국의 자작극이라는 루머에 한동안 시달렸다. 2008년 대통령 선거 때는 "오바마는 기독교도가 아니라 이슬람교도다"는 루머가 나돌았다. 하지만 자작극 음모론은 잦아들었고 오바마는 흑인 최초의 대통령에 당선됐다. 민주적 정부와 투명한 사회의 건전한 자정기능이 작동한 때문이다.

우리는 좀 다르다. 자정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특수성이 있다는 게 사회학자들의 분석이다. 군사독재 시절 정부 발표는 거짓인 경우가 많았다. 오히려 '유비통신'이 사실로 드러난 게 더 많았을 정도다. 광우병 파동도 그렇다.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 내용을 투명하게 밝히지 않아 화를 키웠다. 천안함 폭침 때도 사고 발생 시간을 여러 차례 번복하는 등 의혹을 샀다. 정부가 불신풍조를 부추겨 사회의 자정기능을 약화시킨 면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민주화가 진전되고 IT의 발달로 누구나 쉽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요즘에도 유언비어가 활개를 치는 것은 역설적이다. 만연한 불신 풍조 탓으로만 설명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다. 이념에 따라, 정파적 입장에 따라, 이익집단의 이해에 따라 또는 경제적 이득을 취하기 위해 갖가지 정보를 조작하고 왜곡하고 확대하는 세력이 존재하는 현실이다.


원천적으로 유언비어를 막을 방법은 없다. 법으로 규제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사회의 자정기능이 잘 작동하게 할 길은 없을까. 미국의 심리학자 고든 올포트와 레오 포스트먼이 만든 유언비어의 공식 'R(Rumor)=i(importance)×a(ambiguity)'에서 실마리를 찾아 보자. 유언비어는 대상의 중요성과 정보의 애매함의 곱에 비례해 커진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주목할 것은 어느 한 쪽이 '거짓'이면 결과는 제로(0)라는 사실이다.


중요성은 어찌하기 쉽지 않지만 애매함을 확실함으로 바꾸는 건 어렵지 않다. 뻔한 얘기지만 언로가 트이고 소통이 원활한 민주적이고 투명한 사회를 만드는 게 자정기능을 키우는 길인 셈이다. 정부가 가장 큰 역할을 해야 함은 물론이다. 시장에 호랑이가 없다고 말만 할 게 아니라 시장을 구석구석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게 유언비어를 줄이는 지름길이다.






어경선 논설위원 euh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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