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능 공포가 침착한 일본인마저 패닉에 빠뜨렸어. 동경에 내린 빗물에서는 기준치 일흔 두 배나 되는 방사성 물질이 검출되고 동북부 연안에 오염이 확산 일로야. 심지어 편지, 소포에서도 방사능이 검출되고 있어. 미국, 유럽 등도 방사능 공포에 휩싸였어. 일본산 농산물 반입을 차단하기 시작했어. 식품 공포만 아니야. 이미 태평양과 미국 본토, 대서양 건너 북유럽의 아이슬란드 등에서도 후쿠시마에서 유출된 방사능이 미량 검출되고 있어.
지금 세계가 방사능 공포로 떨고 있다면 우리는 괴담 공포에 떨고 있어.
독도 괴담, 광우병괴담, 천안함 괴담, 방사능 괴담까지... 대한민국 괴담시리즈의 생산, 유통과정은 아마도 세계적인 연구대상일거야. 몇 년전 '빨간 마스크' 괴담이 원조격이지. 초등학교 여자애들이 '학교가기 싫다'고 뻗댈 정도였지. 그 애들은 지금쯤 고등학생이 됐을거야. 당시 언론은 심리학자ㆍ사회학자들까지 동원해 빨간마스크 현상을 진단하느라 법석을 떨었지만 명쾌한 해답을 내지는 못 했어.
빨간 마스크 괴담은 이런 내용이야.
마스크를 쓴 젊은 여자가 방과 후 귀가하는 아이를 붙잡고 "나, 예쁘니?" 라고 물어. 아이가 '예쁘다'고 대답하면 여자는 마스크를 벗고 "…… 이래도 예뻐……?"라고 또 물어. 여자의 입은 흉칙하게 찢어져 있어. 아이가 '예쁘지 않다'고 할 경우 그 자리에서 낫(혹은 가위)으로 베어 죽이고, '예쁘다'할 경우 아이의 입을 찢어.
괴담의 희생자는 낫이나 날선 가위로 죽임을 당해.
독도괴담부터 방사능괴담까지 지금까지 나온 괴담을 정리해보면 괴담의 진원지는 문명의 이기인 인터넷ㆍ휴대전화야. 괴담의 첫번째 생산, 유통자는 대개 중고생들로 알려져 있어. 첫번째 희생자들이기도 하지. 괴담은 불안 심리를 숙주로 해. 괴담은 익명과 현실을 결합하며 광속으로 퍼져. 또한 확대·재생산돼.
방사능 괴담은 "한반도에 방사능이 덮친다"는 게 핵심이야. 더불어 공포를 조장하는 말들도 '괴담'에 속해. 일단 괴담은 공권력과의 한판 대결에 돌입한 상황이야. 방사능공포는 우리들에게 금지된 영역이지. 두려움을 갖는 순간 '날'선 가위나 낫이 날아오게 돼 있어.
빨간마스크괴담과 각종 괴담은 동일한 서사구조를 가졌어. 인격이 성숙하지 않은 아이와 불안에 떠는 군중, 정체 불명의 마스크 여인과 불확실한 주장 혹은 불확실한 주장을 공격하는 논리, 낫(날선 가위)과 공권력, 3초에 100m를 달리는 빨간 마스크 여자와 광속의 인터넷 등으로 짜여져 있어.
방사능괴담이 생산된 과정 또한 같은 구조야. 처음 일본 원전이 위험하다는 경고가 발생하자 대한민국의 핵관련 학자들은 한결같이 "우리나라는 편서풍 때문에 안전하다"고 말했어. 반면 미국은 방사능 공포에 사로잡혀 태평양을 건너 방사능이 날아올 것이라며 곧바로 전문가들을 급파했어. 그러자 "바람과 관계 없이 방사능이 한반도에도 상륙한다"는 소문이 퍼졌어. 경찰은 인터넷 등에서 한반도 방사능 오염 운위하는 등의 유언비어 유포자를 색출, 처벌하겠다고 나섰어.
우리가 편서풍을 믿어야하는지 갈등에 빠져 있는 동안 서방은 다양한 경고장을 날려 보냈어. "한반도와 중국 등 일본 반경 1500km가 위험 지역에 들어간다"는 영국 예보센터의 경고 등이 그것이야. 그러자 우리 학자들은 다시 "미세한 량은 인체에 해가 없고, 1945년 나가사키 원폭 영향으로 지금도 제주도에서는 세슘이 검출되기도 한다"고 답변했어.
지금 우리에겐 두개의 논점, "우리는 편서풍 때문에 안전하다" VS "방사능이 한반도에 도달한다" 등이 선택을 강요하는 형국이야.
두개의 논점 모두 "믿을래 ? 안 믿을래?"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지. 일단 학자와 공권력은 방사능 공포를 괴담으로 규정했으며, 어떤 이들은 오히려 학자님들이 믿는 편서풍이야말로 괴담이라고 주장했어. 어떤 선택을 하든 우리에겐 낫이나 날선 가위가 날아들 처지야. 안전의식이 결여된 신념, 근거없는 공포가 다 괴담처럼 보일 지경이야. 일단 괴담이 횡행하는 것은 권위의 상실, 해체를 의미하지. 전문가들이 명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방사능의 위험성, 안심할만한 위기 대응 방법, 안전의식을 제대로 보여줬더라면 발생하지 않을 괴담이야. 괴담을 에스컬레이터화 시키는데는 전문가들의 활약도 한몫 단단히 한 셈이지.
정 불안해 못 견딜 사람이라면 다시마를 사재기하든지 미역줄기나 씹든지…
퀴리부인 시대의 '무지'가 오늘날 '괴담'으로 변질되기까지 일백년이라는 간극이 있어. '무지+100년=괴담'이라는 등식을 만들어낸 한국적 공포시리즈에 웃을까 ! 울까 ! 백년 전의 시간을 더듬어보기가 너무도 힘겨워.
20세기 초 퀴리 부부는 우라늄에서 초기 방사능인 라듐과 플로늄이라는 방사성 물질을 발견했어. 방사능 연구에 평생을 바친 퀴리부인은 1934년 백혈병과 빈혈, 백내장 악화, 합병증 등으로 사망하기까지 한마디로 그야말로 방사능에 피폭된 인생을 살았어. 그와 관련된 물건에서는 지금도 방사능이 나와. 퀴리박물관, 실험실, 심지어는 책이며 의자 등 모든 물건이 오염돼 있어. 박물관에 들어가려면 우주인 복장같은 방재복을 입어야해. 헌데 이같은 결과는 경악스럽게도 단 1g의 라듐이 만들어낸 것들이야.
그녀는 평생 가난해서 라듐을 소유할 수 없었어. 1g의 라듐은 이를 안타까워한 지인이 선물한 것이지. 퀴리부인은 라듐이 담긴 병을 죽을 때까지 몸에 지니고 살았어. 그녀 또한 방사능의 위험을 정확히 몰랐어. 따라서 퀴리의 제자와 조수들도 피폭에 시달렸어. 그러나 그것이 방사능 때문일거라고 생각지 못했어.
당시 우라늄은 가구의 광택제로 사용됐고, 그 가구를 사용하는 가문들은 대를 이어 방사능에 피폭당했어. 그런데 우라늄에서 퀴리가 추출한 라듐은 녹색과 푸른색이 뒤섞이고 빛을 흡수하지 않아도 자연광을 내 처음엔 신비로운 물질로 여겨졌어. 온갖 물건에 라듐을 발랐고, 심지어는 화장품, 음료, 강장제에도 라듐을 섞었어.
실제로 1906년 US 아마추어 챔피언십을 거머쥐고, 철강 분야에서 큰 성공을 이뤄 한때 미국의 우상으로 불렸던 바이어스는 주치의가 처방해준 라디토어(radithor)라는 라듐 자양강장제를 상시 복용하다가 방사능에 오염됐어. 바이어스는 라디토어에 중독, 하루에 열댓병까지 마시기도 했어. 그는 젊은 나이에 뼈와 관절이 분해되면서 죽어갔어. 두개골은 여러 군데 구멍 났으며 뼈와 관절은 모두 벌어지고, 아래턱이 허물어졌어.
당시 화장품이나 식, 음료, 의류와 장식품, 생활용품 할 것 없이 라듐을 함유한 제품이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갔어. 화장품을 쓴 여인들의 얼굴이 망가졌으며, 음료를 마신 이들이 병에 시달렸으니 무지가 낳은 공포라기엔 너무도 가혹한거지.
하여간 빨리 무지에서 벗어나야 할텐데....
이규성 부동산 부장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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