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성정은 기자]"아니, 한국사람들도 한복을 잘 안 입으면서 명절만 되면 외국에서 시집 온 여성들에게 전통의상을 입으라고 강요하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그것이 그들의 문화를 존중해주는 것처럼 생각하는 태도가 문제입니다."
연단에 선 그의 목소리는 힘찼다. 그는 "외국에서 시집 온 여성들이 한복을 입고 한국 음식을 먹고 한국말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다문화 가족을 받아들이는 법이 돼서는 안된다"며 "그들이 평범한 한국 시민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즉 '한국사람 만들기'가 아니라 '한국사람 되기'를 도와주는 게 진정한 다문화 사회를 만드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서울대학교에서 인류학을 전공하고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사회인류학 석박사 학위를 받은 김광억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다. 한국문화인류학회장,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장 등을 지내기도 한 김 교수는 10일 서울 중구 한국 프레스센터에서 여성가족부(장관 백희영) 주최로 열린 제2회 다문화 가족포럼 '다문화 시대, 도전과 기회'에 연사로 나서 '다문화 사회의 문화인식과 실천 방안의 모색'을 주제로 한 시간에 걸친 강연을 했다.
김 교수는 "행정안전부가 2008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거주 외국인 주민은 89만여명으로 전체 인구의 1.8%를 차지하며, 이 가운데 국제결혼이주자와 혼인귀화자는 14만여명으로 외국인 주민의 16.2%에 해당한다"며 "국제결혼으로 이뤄지는 다문화 가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때"라고 운을 뗐다.
다문화 가족이라는 용어가 생겨난 배경을 설명하면서 김 교수는 "17대 국회 여성가족소위 다문화가족법안 심사과정에서 '사회적으로 낙인찍지 말자는 의미에서 이민자 가족 대신 다문화 가족이라고 표현하자'는 합의가 처음 있었다"며 "사회적 낙인을 피하려 고안된 다문화 가족이라는 말이 오히려 이들을 특수한 범주로 집어넣어 낙인찍기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한국 사회가 다문화 가족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그 현황을 짚어가며 강연을 계속했다. 그는 "외국 이주 여성들이 한국 국민이 되는 과정은 본인이 주체적으로 만들어가야 하는 것인데 우리 사회는 이들을 돌봄의 대상, 특수한 존재로 보고 감독 관리의 대상으로 취급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또 "우리 사회는 이주 여성 당사자들에 대한 복지혜택은 물론 그 자녀들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으며, 역사지식 등을 비롯한 까다로운 귀화조건만을 내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제한적으로 적용되는 다문화 지원법과 각 부처에서 따로 노는 정책도 큰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다문화 지원법은 다문화 가족 전체가 아니라 날 때부터 한국인인 사람과 결혼한 이민자 또는 혼인 귀화자만 지원하는 법으로 그 적용 범위에 한계가 있다는 것, 통일부와 노동부 등에서 따로 노는 다문화 가족 관련 정책이 체계적으로 세워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이다.
강연의 끝에서 김 교수는 건전한 다문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네 가지 실천방안을 제시했다. 하나는 이주 여성들이 일방적인 수혜자가 아니라 평범한 한국 시민으로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주자는 것이고, 둘째는 여러 부처를 아울러 여성가족부가 일관 있는 정책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또 다른 두 가지 다문화 사회 실천 방안을 이야기 하며 생각의 틀을 바꿔 비교학적 연구를 하려는 움직임과 법제도의 보완이 필요하다고도 말했다. 이주 여성 당사자가 속한 문화의 틀 안에서 문화인류학적ㆍ비교학적 연구가 계속돼야 한다는 것이 셋째, 제한적으로 적용되는 다문화 지원법 등 법제도의 보완을 해야 한다는 것이 김 교수가 말한 넷째 실천 방안이다.
성정은 기자 j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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