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전성호 기자]24일 1집 앨범 '브레이크 더 월'(Break the Wall)을 내놓은 이선정밴드가 한국 대중음악계에 새 바람을 예고하고 있다.
이선정밴드는 블루스록에 기반을 둔 인디밴드다. 그룹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리더인 이선정을 중심으로 3년 전 결성됐다.
그는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연간 70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제약회사의 대표이자 홍대 라이브클럽 '킹오브블루스'의 경영자다. 그렇다고 아마추어나 직장인밴드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면 곤란하다.
이선정은 싱어송라이터다. 보컬과 기타를 겸하면서 작사, 작곡, 편곡을 모두 자신의 힘으로 해냈다. 프로 세션들도 감탄하는 블루스 기타 실력까지 겸비했다. 대중음악 평론가 임진모씨조차 "음악평론가로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한 음반이다"고 평할 정도.
이선정밴드의 블루스는 비비킹보다 에릭 클랩턴과 닮았다. 끈적끈적한 흑인 블루스보다 대중적이고 세련된 백인 블루스에 가깝다는 뜻이다.
대신 다양한 음악적 색채를 담아냈다. 타이틀곡 '브레이크 더 월'은 90년대 얼터너티브 록의 느낌을 준다. '로큰롤 시티'('Rock'n Roll City')는 제목 그대로 흥겨운 로큰롤 곡이다. 브라스와 코러스의 화음까지 곁들어진 '맘대로 해'와 '미스터 쇼('Mr.Show')'는 그루브감이 돋보인다. '이방인'과 '더 월드'('The World')는 몽롱하면서도 서정적인 분위기를 띈다.
이처럼 느낌은 다양하지만 그 속을 관통하는 음악적 줄기는 블루스에 있다. 듣는 이로 하여금 묘한 공감의 세계에 빠져들게 한다. 곡 중간마다 등장하는 블루스 스케일의 기타와 리듬감은 소름을 돋게 한다.
9곡의 수록곡 중 그 흔한 사랑 노래는 한 곡도 없다. 대신 자조적이고 자기성찰적인 어조가 주를 이룬다. 군중 속에서 외로운 자아와 무거운 현실의 벽, 자유에 대한 갈망은 이선정밴드의 음악이 추구하는 메시지다.
이는 이선정 본인의 인생과도 관련이 깊다. 번듯한 중견기업의 대표이자 라이브클럽을 소유한 재력가지만,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숱한 고난이 있었다. 겪어보지 않은 이는 모를 지독한 가난, 믿었던 지인들의 배신, 전신마비로 쓰러져 있던 시절… 40년 인생 속에서 철저하게 혼자였던 그의 아픔은 음악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 때문에 이선정은 '진정성'이란 말을 수차례 강조했다. 그는 "가사를 쓰면서 정말 많은 눈물을 흘렸다. 내가 간직한 아픔과 슬픔을 곡에 그대로 투영해냈다. 덕분에 많은 분이 음악에서 진정성을 느꼈다고 말해줬다"고 말했다.
그는 "나도 진정성 있는 음악을 하고 싶다. 당장 대중의 반응이 없더라도 상관없다. 음악 때문에 어려운 시절을 이겨냈고, 죽음의 문턱에서 생명을 유지했고,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며 "음악을 곁에 두고 평생 살고 싶다. 지치지 않고 한 우물 파는 사람처럼 꾸준히 하겠다"며 각오를 밝혔다.
대중을 향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그는 "마음을 비우고 들어줬으면 좋겠다. 요즘 세상은 서로가진 내면의 아픔을 피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소외되는 사람이 생기고 그 사람도 타인을 외면한다. 대신 화려함과 웃음으로 포장하고 덮어버린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아프고 상처받은 사람들, 정신적으로 빈곤한 사람이 너무 많다. 사람의 상처는 사람으로 치유해야 한다. 내 음악이 그런 태도 형성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2000년대 후반 침체돼 있던 인디씬은 장기하와 얼굴들, 국카스텐, 10cm 등을 통해 대중에게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론 '마니아적 한계'도 존재했던 것이 사실. 이선정밴드는 이를 넘어 인디음악의 대중적 소통과 공감을 이끌어낼 기대주가 될 것이 분명하다.
스포츠투데이 전성호 기자 spre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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