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강욱 기자] #. 직장인 권혜진 씨(26)는 요즘 웃음꽃이 활짝 폈다. 만나는 사람마다 무슨 좋은 일이 있냐고 묻는다. 그녀가 이렇게 기분이 좋은 이유는 밸런타인데이가 코앞에 다가왔기 때문이다.
권 씨는 이날 지난 3년간 사귀어온 남자친구에게 프러포즈를 할 생각으로 특급호텔 패키지 상품을 예약했다. 흔히 프러포즈는 남자가 먼저 해야 한다고 하지만 권 씨의 생각은 다르다. 누가 먼저 하든 마음 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다음 달 있을 화이트데이에는 남자친구에게서 더욱 근사한 프러포즈를 다시 받을 계획이다. 그녀는 낭만 가득한 추억을 만들 생각에 가슴이 설레기만 하다.
최근 밸런타인데이를 앞두고 프러포즈를 돕기 위한 각종 상품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프러포즈를 여성이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모습이 나타나 주목되고 있다.
실제 국내 특급호텔 등에서 선보인 패키지 상품의 경우 여성들이 먼저 문의를 하거나 예약을 하는 일이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여성의 학력이 높아지고 사회진출이 늘면서 남녀간 성역할 규범이 바뀌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서울 광장동에 위치한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은 최근 선보인 밸런타인데이를 위한 스페셜 디너 및 프러포즈 패키지에 20~30대 여성들의 예약 문의가 쇄도해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특히 호텔 내 유러피언 레스토랑 & 바 클락식스틴에서 제공하는 최고급 코스요리 디너의 가격은 30만~40만원대에서 최고 100만원을 호가하는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인기가 높아 소위 명당 자리는 이미 예약이 찬 상태다. 또한 객실 패키지 상품의 경우에도 문의자의 40% 정도가 여성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실제로 한 여성 고객의 프러포즈를 도와준 이 호텔 직원은 "용감하게 고백해 당당하게 성공한 여성 고객분의 모습이 더욱 로맨틱해 보였다"면서 "최근 밸런타인데이를 위한 패키지 상품에 대해 여성들의 문의가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팔래스호텔의 경우에는 꽃과 풍선으로 장식된 이그제큐티브 더블룸을 이용할 수 있는 상품 예약자 4명 중 1명이 여성인 것으로 파악됐다. 경남 남해의 힐튼 남해 골프 & 스파 리조트도 여성의 문의가 예년에 비해 늘어났다고 밝혔다.
호텔업계에선 모든 프러포즈 이벤트 과정을 원스톱으로 한 자리에서 해결할 수 있는 올인원 상품을 선보인 것 또한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워커힐에서 선보인 상품의 경우 식사 뿐 아니라 와인, 초콜릿 또는 케이크, 꽃다발, 기념촬영은 물론, 하이라이트로 티파니 쥬얼리와 재즈 가수의 세레나데까지 제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이 사회의 중심세력으로 자리 잡아감에 따라 남성의 구원을 기다리는 여성상이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하는 트렌트로 자리 잡게 된 것이 가장 주요한 원인으로 풀이된다.
실제 결혼정보회사 레드힐스가 지난해 조사한 설문 조사에서도 여성 응답자 10명 중 3명이 여성이 먼저 프러포즈하거나 누가 해도 상관없다고 답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소셜 데이팅 서비스 '이음'이 현재 카페베네와 함께 진행하는 싱글 여성들을 위한 소개팅 프로모션의 경우 지난 1일 오픈 첫날 가입자는 100명 이상이었다. 이는 오프라인 프로모션을 통해 실질적인 회원 가입으로 유도되는 것이 어려운 업계 상황으로 봤을 때 매우 폭발적인 반응이라는 게 이음 측의 설명이다.
호텔업계 관계자는 "여성이 프러포즈를 먼저 하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니라 상대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는 자신감의 표현으로 변하는 모습"이라며 "요즘 여성들은 연인과의 로맨틱한 추억을 만들기 위해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특급 호텔을 찾는 것 같다"고 말했다.
조강욱 기자 jomar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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