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효진 기자] 한명숙 전 국무총리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가 핵심 증인 한만호씨의 진술 번복으로 궁지에 몰린 검찰이 '장외 진실공방'에 휘말리며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조서에서 중요한 오류까지 지적돼 검찰 입장은 더욱 난처해졌다. 한씨가 진술을 뒤집은 뒤 한 전 총리 측이 공격하고 검찰이 방어하는 식으로 재판이 흐르면서 '검찰 프레임'에 검찰이 갇혀버렸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민주당 '한명숙 검찰탄압 진상조사위원회'는 10일 기자회견을 열어 "검사가 와병 중인 한씨 노부모를 찾아가 겁박했다"고 주장했다. 한씨는 이런 상황에서 재판에 임할 수 없다며 11일로 예정된 4차 공판에 출석하지 않겠다는 뜻을 담당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김우진 부장판사)에 밝혔다. 한 전 총리 측 조광희 변호사는 트위터로 검찰의 재판 중 수사행위가 사법방해행위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한씨 부모 겁박'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의혹이 사실인지 여부를 떠나 이런 공방에 휘말린 것 자체가 검찰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 뇌물수수 사건 1심에서 한 전 총리가 무죄를 선고받은 뒤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며 호기롭게 공소를 제기하던 모습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오후에 시작돼 자정이 지나서 끝난 지난 4일 3차공판 때 조서에서 중대한 오류가 지적된 점도 검찰 발목을 잡는다. 당시 검찰은 조사 때 만든 조서를 근거로 "한씨가 2007년 3월 한 전 총리가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로 나선다는 소식을 듣고 한 총리 전화번호를 휴대전화에 입력한 뒤 그 전화로 직접 한 총리에게 정치자금을 주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이후 그 전화로 계속 돈을 줄 날짜와 방법을 상의했다"고 밝혔다.
그러자 한 전 총리 변호인은 "지금의 민주당은 2007년 6월 창당된 중도통합민주당과 8월 창당된 대통합민주신당 등을 통합해 2008년 2월 창당됐는데, 한 전 총리가 민주당 자체가 겨우 소수 정당으로 존재하던 2007년 3월 민주당 대선 경선 출마 결심을 했다는 건 말이 안된다"고 맞받았다. 또 "검찰이 증거로 제출한 한씨 휴대전화에 저장된 전화번호들을 분석한 결과 그의 휴대전화에는 2007년 8월21일까지 한 전 총리 전화번호가 입력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입증됐다"고 설명했다.
한씨가 "검찰 조사 때 진술은 회사를 살려보려 한 거짓말이고 실제로는 돈을 안 줬다"고 법정에서 증언해 검찰 공소사실 자체가 흔들리는 마당에 조사 때 한 진술마저 신빙성에 금이 가버린 셈이다.
금품수수 사건 재판에선 돈을 건넸다는 사람의 진술이 사실상 유일한 직접증거이고 법원도 공여자 진술의 신빙성을 유무죄 판단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검찰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워낙 민감하고 복잡한 사건인 데다 아직 공판이 진행 중이니 더 지켜봐야 하지 않겠느냐"면서도 "혐의의 일부 내용과 관련해 검찰이 자칫 스스로 짠 프레임에 갇혀버릴 가능성도 없진 않아 보인다"고 했다.
11일에는 한 전 총리 4차 공판이 열린다.
김효진 기자 hjn2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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