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최대열 기자]서울 G20 정상회의 주 무대로 코엑스가 선정된 결정적인 이유는, 봉은사 때문이었다. 경호가 어렵다는 코엑스의 치명적인 단점에도 "외국서 온 분들이 오다가다 봉은사도 보면 좋지 않겠냐"는 이명박 대통령의 의지가 작용했다.
용이 그려진 화분을 대신해 청자나 백자를 들여놓은 것이나 경비가 삼엄한 코엑스 내부에 한국체험관이나 첨성대 형상물, 전통차 체험공간을 들인 것도 같은 이유다. 각국 정상과 전 세계 취재진에게 한국 전통의 문화를 조금이라도 널리 알리기 위한 홍보의 일환인 셈이다.
봉은사는 정상회의 장소를 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정작 최근 갖가지 설화에 둘러싸여 편치 않은 나날을 보냈다. 애초 배포된 코엑스 주변 지도에서 통째로 빠져 '현 정권의 편협한 종교관'을 상징하기도 했고, 일부 극단적인 종교관을 가진 집단이 단체로 찾아와 '예배'를 하는 진풍경이 벌어진 적도 있다. 최근 직영사찰로 바뀌면서 새 주지스님을 맞기도 했다.
지난 11일 찾은 봉은사는 G20 정상회의를 아랑곳하지 않고 한가로운듯 보였다. 단군 이래 최대라는 요란한 타이틀이 붙기도 했지만 1200여년간 한곳을 지킨 만큼 사찰은 조용한 모습이었다. 오히려 주변 교통을 통제해서인지 평소보다 한산했다.
템플스테이 업무를 관장하는 이곳 관계자는 "한달에 많게는 300명까지 다녀가는 편인데 이번주는 평소에 비해 절반 이상 줄었다"고 말했다. G20 회의로 코엑스 일대와 서울 대부분의 호텔을 정상과 그 수행원들이 차지하면서 일반 관광객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목요일 프로그램엔 사람이 많이 몰리는 편인데 이번주엔 30명 정원에 10명 남짓만 참여했다"고 말했다. 이날 봉은사를 방문한 한 외국인은 "서울에 호텔을 잡을 수 없어 지방에 머물다 어렵게 올라왔다"고 했다. 수능을 얼마 앞두지 않은 만큼 대웅전과 법왕루엔 일부 학부모들이 남아 기도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겉으론 평온해 보였지만 안은 바빴다. G20 회의에 참가한 일부 정상들과 VIP가 봉은사를 다녀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정상이 올 경우 경호업무도 만만치 않고 사전에 준비한 부분도 많다. 온다고 하곤 방문하지 않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우선 정상이 올 경우엔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실제 정상회의가 열리기 며칠 전에도 봉은사는 캐나다와 독일 등 주요 국가 대사를 직접 초청해 전통등 전시회, 다도를 대접하기도 했다. 최근 주지를 그만 둔 명진스님도 이달 초 언론인터뷰에서 "주변 사찰로서 협조하겠다"고 한 적이 있다. 자원봉사자 박효정 씨는 "사찰을 찾은 외국인이 길을 헤매거나 도움을 필요로 할 때 통역 등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정상회의가 열리는 12일에는 코엑스를 중심으로 통제가 강화된다. 봉은사까지 경호안전구역에 포함된다. 담쟁이라인으로 불리는 구조물이 조성되는 구간도 있고 봉은사를 찾기 위해선 사전에 허가를 받아야 한다. 사찰 관계자는 "이날 새벽 3시부터 하루간 통제된다"며 "미리 준비하지 못한 이들은 봉은사 관계자를 통해 직접 신원확인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최대열 기자 dy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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