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 3대 지표 7년 만에 모두 中에 뒤져
중소조선인력 유출도 문제···기술도 함께 넘어가
[아시아경제 채명석 기자] 지난해까지 전라도의 한 중소조선소에서 근무하던 기술자 K씨(44세)는 올해부터 중국 조선업체에서 일하며 한 달에 두어 번 한국을 방문하고 있다.
10년 넘게 기술을 익히며 현장에서 인정을 받았지만 지난해 수주 부진으로 급여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동료들이 하나 둘 직장을 떠나는 모습을 보던 K씨는 중국 한 지인으로부터 중국 조선업체 관계자를 소개를 받았고, 그는 K씨에게 현재 받고 있는 연봉의 수배를 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자국 조선소에서 일해 달라고 요청했다. 소위 스카웃 제의였던 것이다.
대형 조선소조차 구조조정 소문이 파다한 상황에서 새 직장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였고, 배운게 도둑질이라는 식으로 배 만드는 일을 천직으로 삼아왔기에 전직도 어려운 상황. 이런 가운데 중국업체측의 제안은 거절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잠시 동안 고민한 후 K씨는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그는 현재 중국 조선소 현장에서 중국인 직원들에게 기술도 가르치고 선박의 품질을 관리하는 책임자 역할을 맡고 있다.
K씨는 “혼자서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도 많이 했는데 의외로 한국인들의 모습이 많이 보였다”면서 “이들은 모두 한국내 상황이 좋지 않자 새로운 생활을 위해 중국으로 넘어왔다”고 말했다.
수주 부진과 폐업으로 직장을 떠난 조선업계 기술인력들이 중국으로 넘어가고 있다.
정확한 통계는 알 수 없으나 조선업계에서는 기술인들의 중국행이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과거에는 중소 조선소 직원들이 주를 이뤘지만 최근에는 대형 조선소에석 퇴직한 사람들까지 대상이 넓어지고 있다.
조선업계 고위 관계자는 “일부 고급 인력의 경우에는 한국에서 받는 연봉의 10배 이상을 제시했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있다”면서 “이들이 설계도를 들고 나가는 것은 아니지만 머릿속에 있는 지식과 노하우를 그대로 중국 기술진들에게 전수가되고 있다는 점에서 사실상 기술 유출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조선업계는 여전히 세계 최고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으나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STX조선해양·성동조선해양·한진중공업 등 세계 10위권내의 상위 대형 조선업체들의 의존도가 너무 크다는 게 문제다. 10년 가까운 호황기를 틈타 설립된 중소 조선소들중 상당수가 본격 가동에 들어간 지난 2008년 글로벌 경영위기가 터져 업황이 급격히 악화 되는 등 사실상 와해 분위기로 휘몰리면서 조선산업은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중앙정부의 대대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중국 조선업체들은 빠르게 약진하고 있다. 저가를 무기로 벌커 등 범용 선박 시장을 휩쓸고 있는 중국은 최근 들어 약점으로 지적되던 품질 면에서 상당한 수준으로 개선됐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심지어는 한국이 주도하던 액화천연가스(LNG)선, 초대형 유조선을 비롯해 부유식 원유생산 하역설비(FPSO) 등 고부가가치 선박을 건조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추고 있다. 이는 바로 중국으로 넘어간 한국 기술진들이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됐다.
중국발 위기는 현실화 돼 한국은 세계 1위 조선산업의 아성을 7년 만에 중국에 내줬다.
18일 조선·해운 분석기관인 클락슨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내 조선업계의 상반기 건조량은 747만889CGT(표준화물선 환산톤수)로 801만4148CGT를 기록한 중국에 뒤졌다.
국내 선박 건조량이 반기 기준으로 중국에 뒤진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국내 조선산업은 올해 상반기에 사상 처음으로 수주량, 수주잔량, 건조량에서 모두 중국에 1위 자리를 내줬다. 지난 2003년 국내 조선업계가 일본을 앞지르고 세계 1위에 올라선 지 7년 만이다.
국내 조선업계는 이미 지난해 수주량과 수주잔량 부문에서 중국에 추월당한 바 있어 조선업 경쟁력을 나타내는 3대 지표에서 모두 1위 자리를 넘겨주게 됐다.
우리나라는 상반기 신규 수주량도 462만CGT(점유율 38.0%)로 중국(502만CGT, 41.2%)에 뒤졌다. 올 4월까지 하더라도 신규 수주량에서 중국에 앞섰으나 5월과 6월에 뒤지며 상반기 전체 수주에서 1위를 내줬다. 6월말 기준 수주잔량 역시 4925만1753CGT로 5330만7252CGT의 중국에 이어 2위에 머물렀다.
중국은 올 들어 해외 신조시장에서 한국에 밀리자 자국 해운사를 중심으로 자국 조선소에 대량의 선박을 발주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해운사의 발주 물량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상황이라 향후에도 중국과의 경쟁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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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명석 기자 oric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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