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다산초당~백련사 동랙림 숲길, 유유자적 떠나는 다산유배길
$pos="C";$title="";$txt="다산초당에서 백련사로 이어지는 다산유배길은 그의 삶을 그대로 이야기하듯 나무에서 한 번, 땅에서 또 한 번 꽃을 피운다는 동백이 붉디붉은 비단길을 펼쳐놓고 있다. 한양에서 화려한 생활의 꽃을 떨구고 유배길에 나선 다산이 목민심서 등 명작을 집필하면서 다시 한 번 꽃을 피운 것 처럼. 그래서 이 길은 슬픔 유배길이 아니라 피안에 이르는 곳인지도 모른다. ";$size="550,365,0";$no="2010040110342322913_1.jpg";@include $libDir . "/image_check.php";?>[아시아경제 조용준 기자]솔뿌리, 동백향, 목민심서를 다시 꺼내 읽는다
붉은 비단이 깔린 숲길을 걷는다. 한없이 깊고 아늑한 길을 걷는다. 동백나무와 소나무, 대나무, 두충나무가 뒤엉켜 자라 터널을 이룬 숲길을 걷는다. 봄을 시샘하던 차가운 꽃샘바람도 범접 못할 사무치게 아름다운 길이다.
지상에 드러낸 소나무의 뿌리를 무심코 힘껏 밟고 지나가다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 옛날 한양을 떠나 머나먼 남도땅으로 유배길에 나선 실학자의 애달픈 눈물이 숲을 적신 그 길임을 새삼 떠올린다. 숲길 뒤로 대쪽같은 학자의 아픔을 위로하듯 붉디 붉은 동백은 처연히 떨어져 숲길을 따라 온다.
길의 끝자락 산사로 드는 길엔 싱그럽고 달콤한 동백꽃향기가 가득하다. 헝클어진 머릿속도 맑게 헹궈줄 것 같은 상쾌함에 온몸이 찌르르 울린다. 어쩌면 이 길은 현세가 아닌 피안에 이르는 길인지도 모른다.
남도 강진땅에 있는 다산초당에서 백련사로 이어지는 숲길은 지리산 둘레길처럼 긴 길도 아니고, 올레길처럼 유명세를 치른 길도 아니다. 하지만 '한국의 아름다운 숲'에 선정될 정도로 자연과 함께 숨 쉴 수 있는 명실상부한 최고의 길이다. 풋풋한 녹차 냄새와 코끝을 간질이는 동백향기, 발바닥에 폭신하게 느껴지는 촉감까지 모두 느낄 수 있는 그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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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말의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린 뒤끝이다. 남도답사 1번지로 불리는 강진땅 다산(茶山) 유배길로 가는 발걸음은 휑하니 춥다. 하지만 문명의 이기랄까 시원스레 뚫린 고속도로는 멀게만 느껴졌던 남도의 마을들을 짧은 시간 안에 닿게 해 준다.
다산유배길은 강진 다산수련원에서 영암 구림마을까지 이어지는 61km 길이다. 구간이 길다 보니 총 4코스로 나뉜다. 1~3코스는 강진에 마지막 4코스는 영암을 지나게 된다. 하지만 이맘때 걷기에 가장 좋은 길이 1코스인 다산수련원에서 백련사숲길로 이어지는 길이다. 왕복 2시간 거리로 짧은 구간이지만 숲길이 평탄해 어린아이들도 쉬엄쉬엄 산책하듯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유배길의 시작은 다산초당 초입인 도암면 귤동마을이다. 돌담장과 커다란 나무들이 오랜된 시골 정취를 더한다.
다산수련원에서 나서 오솔길로 접어들면 '정약용 남도유배길'이라고 적힌 노란 리본이 곳곳에서 길안내에 나선다.
길을 나서 처음 만나는 것은 자작나무처럼 창백한 하얀 껍질을 지닌 두충나무 숲이다. 인위적으로 만든 산책로이지만 제법 운치가 그럴 듯 하다.
껍질을 벗겨 한약재로 쓰는 두충나무지만 최근 중국산에 밀려 그냥 방치한 게 숲을 이루게 됐다고 한다. 마치 버드나무 같이 죽죽 뻗은 나무들이 아름답게 늘어서 있다. 이 숲으로 다산 유배길은 처음부터 탐방객을 매료시킨다.
두충나무숲을 지나 한옥민박과 상가가 몰려있는 마을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다산초당으로 가는 유배길이 시작된다.
유유자적. 유배길을 걷는 방법이다. 동네 뒷산을 산책하듯 슬렁슬렁 마땅히 걸음이 그래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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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계단을 오르고 무성한 대나무숲을 지나면 울퉁불퉁한 나무뿌리가 고스란히 드러나 원시적인 야성미를 느끼게 하는 길을 만난다. 대나무밭에서나 보던 땅 위로 솟은 뿌리들을 소나무 숲에서도 볼 수 있는 길이다. 나무의 힘줄이 툭툭 불거져 꿈틀꿈틀 살아 움직일 것 같은 기묘한 모습이다.
정호승 시인은 이 길을 '뿌리의 길'이라고 이름 붙였다. "지하에 있는 뿌리가 더러는 슬픔 가운데 눈물을 달고 지상으로 힘껏 뿌리를 뻗는다는 것을ㆍㆍㆍ/나뭇잎이 떨어져 뿌리로 가서 다시 잎으로 되돌아오는 동안 다산이 초당에 홀로 앉아 모든 길의 뿌리가 된다는 것을ㆍㆍㆍ"
다산초당에는 다산의 정취가 묻은 3개의 길이 있다. 그 하나가 바로 '뿌리의 길'이다. 다른 하나는 초당의 동암을 지나 천일각 왼편으로 나 있는 '백련사 가는 길' 다른 하나가 다산의 제자 윤종진의 묘 앞에 나 있는 '오솔길'이다. 오솔길과 뿌리의 길은 바로 연결된다.
뿌리의 길을 지나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강진만이 내려다보이는 만덕산 기슭에 자리한 다산초당이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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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은 그를 아끼던 정조가 세상을 떠난 후인 1801년 신유박해에 뒤이은 황사영백서사건에 연루되어 강진으로 유배된다. 사의재, 고성사 보은산방 등을 거쳐 1808년 봄 외가(해남윤씨)에서 마련해준 이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다산 일생에 가장 빛나는 10년의 시간이 시작된 바로 그곳이다.
그는 초당의 동쪽에 동암을 지어 거처했다. 물을 끌어다 인공의 폭포를 만들었고 연못도 팠다. 연못 가운데는 해변에서 주어진 돌로 탑을 세웠다. 흑산도에 있는 형에 대한 그리움의 표현이었다. 잉어와 붕어를 길렀고, 화초를 심었다. 산 중턱에 밭을 일궈 채소도 길렀다.
바위 절벽에는 징표를 새겼다. 정석(丁石), 하고 싶은 말을 모두 내면에 쌓았던 다산은 겉으로 화려하지 않았다. 바위에 새겨진 달랑 두 자가 다산의 깊이를 말해준다. 다산초당은 지금 다산을 만나는 가장 확실한 공간이다.
그는 이곳에서 당대의 명사들과 교유하고 주변의 인재들을 불러 모아 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학문연구에도 물두해 그 유명한 '목민심서','경세유표' 등 600여권의 저서를 남기기도 했다. 오히려 이곳에 오지 않았으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를 수 많은 책들이다. 현실 정치판에서의 실패가 그의 삶 자체를 온전히 망쳐 버리지는 못한 것이다.
다산초당에서 샛길로 빠지면 동암과 천일각이 나온다. 동암은 다산이 손님을 맞거나 저술 작업을 하던 곳이다. 동암 옆의 천일각 자리는 다산이 형 정약전을 그리며 강진만을 바라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지만 다산이 살았을 때는 없었던 누각이란다.
천일각에 오르면 강진만과 장흥 천관산이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전망이 좋다. 누각에서 바라본 도암면 일대는 봄기운을 잔뜩 머금고 있다. 들녘 곳곳에 푸릇푸릇 올라오는 보리와 나물을 캐는 아낙네들의 모습이 정겹다.
이제부터 백련사 가는 길이다. 천일각에서 백련사로 이어지는 숲길은 다산유배길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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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유배길에서 만날 수 있는 3가지 길 중에서 다산의 체취를 가장 짙게 느낄 수 있다. 유배생활 동안 벗이자 스승이요, 제자였던 혜장선사와 다산을 이어주던 통로였다. 1㎞가 채 안 되는 거리에 야생 녹차밭과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아름드리 동백숲을 만날 수 있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로 선정된 길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이 길을 따라 오가면서 무슨 이야기를 나눴을까. 동백과 야생녹차, 다산초당과 백련사를 오가는 길 위의 아름다운 자연에 흠뻑 젖어 분명 선문답 같은 대화를 주고받았으리라.
야생녹차밭을 지나 대나무숲, 사스래나무 등이 등산로 옆을 지키고 있었다. 이 길은 녹차와 대나무 등으로 인해 사철 내내 푸를 것 같았다. 야생녹차는 이미 관목으로 자리 잡은 숲의 터줏대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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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초당을 떠난지 25분여만에 천연기념물 제151호로 지정된 백련사 동백림에 도착했다.
3㏊ 이상에 달하는 동백림의 수목들은 300~500년 이상 된 것들로, 일일이 번호를 붙여 관리하고 있다.
일설에는 꽃이 핀 채로 100일, 꽃이 떨어진 채 100일이라고 해서 동백이라 했다고도 전한다. 실제로 100일이 안 될지는 몰라도 핀 꽃이나 떨어진 꽃이 상당히 오래가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3월말 백련사의 동백들은 일부는 나무에 잔뜩 꽃을 피우고 있고 일부는 바닥에 또 꽃을 피우고 있었다. 꽃을 피우는 시기에 따라 춘백(春柏), 추백(秋柏), 동백(冬柏)으로 나누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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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여 그루에 이르는 동백나무는 갖가지 모양을 하고 있었다. 미끈하게 잘생긴 동백부터 울퉁불퉁한 동백까지 동백나무의 모든 부분을 보여주고 있었다. 큰 줄기에 울퉁불퉁한 동백은 상처 난 부위를 스스로 아물게 하기 위해 내뿜은 수액이 오랜 세월 굳어져 그렇게 되었다고 했다. 기묘한 모양이 나름대로 멋을 내고 있었다. 주변에 비자나무, 후박나무, 푸조나무 등도 함께 자라고 있어 운치를 더한다.
백련사 내려가는 길도 가로수가 동백이다. 낙화한 꽃들로 길은 완전 꽃길로 변했다. 마치 소월의 '진달래'와 마찬가지로 동백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는' 길이었다. 언제 이런 길을 다시 밟아볼 수 있겠나싶을 정도로 감동의 연속이다.
백련사를 나서는 길 마지막 동백나무 끝에 한 송이 붉은 등이 대롱 대롱 매달려 길손을 배웅하고 있다.
강진=글ㆍ사진 조용준 기자 jun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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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메모
▲가는길=서해안 고속도로로 종점인 목포 IC를 나와 2번 국도로 나와 영산강 하구둑을 지나 40여분 달리면 강진읍에 닿는다. 읍내에서 강진만 해안도로를 따라 10분 가면 백련사와 다산초당길이 나온다. 호남고속도를 이용하면 광산IC를 나와 13번 국도를 타고 나주 지나 강진읍으로 간다.
▲볼거리=소박하면서도 화려한 조선시대 목조건물 극락보전이 있는 무위사와 경포대계곡을 빼놓을 수 없다. 부근에 녹차밭도 있어 운치를 더한다. 또 병영면의 전라병영성 유적(하멜 체류지), 시인 영랑 김윤식 생가, 고려시대 청자를 생산해냈던 대구면 고려청자 도요지, 월남사터 삼층석탑과 진각국사비 등이 있다. 특히 상록수림 울창한 까막섬 등 바다경치가 수려한 마량항 등도 꼭 둘러볼 만하다.
▲먹거리=
남도의 맛은 역시 한정식.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한 상 그득 차려진 밥상을 보면 맛보지 않고도 배가 부를 정도다. 청자골 종가집(061-433-1100), 명동식당(061-434-2147), 해태식당 061-434-2486), 흥진식당(061-434-3031) 등은 푸짐하고 맛깔스런 남도 한정식의 진미를 맛볼 수 있다.
한상 기본이 6만원(4인분)부터, 1인 2만~3만원 수준. 마량항엔 직접 담가 내는 젓갈과 매운탕으로 이름난 40여년 전통의 완도횟집(061-432-2066)도 있다. 시어머니의 손맛을 이어받은 김순자(59)씨가 35년째 맛깔스런 남도 맛을 낸다.
▲머물곳=다산수련원에는 조금만 한옥민박들이 있어 숲내음 맡으면서 우아한 밤을 지낼 수 있다. 또 프린스관광모텔 (061-433-7400), 테마모텔 (061-432-2626), 부성파크모텔 (061-434-2081) 등 마량항과 강진읍에 모텔급 숙박시설들이 많다. 강진군에 문의하면 농촌체험마을 등을 안내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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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준 기자 jun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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