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L";$title="[권대우의 경제레터] 유쾌한 점심";$txt="";$size="250,129,0";$no="2009090909561598018_1.jpg";@include $libDir . "/image_check.php";?> “왜 고시공부를 하나?”
“부모님이 원하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이 자네 인생을 살아주는 것은 아니지 않나?”
“부모님은 지금까지 오로지 판· 검사되기를 기도하면서 저를 키워왔습니다. 그런 부모님을 실망시킬 수는 없습니다.”
“한번쯤 상의해 볼 수 있는 일 아닌가?”
“물론이죠. 여러 번 상의해봤습니다. 저는 예술가의 세계에서 꿈을 펼치고 싶습니다. 그러나 부모님은 제가 판· 검사가 돼야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습니다. 대학에 진학할 때도 그래서 법대를 택했는걸요.”
“그럼, 고시에 합격하면 판· 검사를 계속할 생각인가?”
“그렇게 원하시니 살아계실 동안은 부모님 뜻을 따를 생각입니다.”
한 기업인이 들려준 얘기입니다. 요즘처럼 적성과 재능을 따지는 세상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대화였기에 “그럴 리가 있겠느냐?”고 반문했습니다. 그러나 그 기업인은 펄쩍 뛰었습니다. 한 고시촌에서 우연히 고시공부하는 학생을 만나 직접 나눈 대화라는 것이었습니다.
‘현대판 효녀 심청’같은 얘기입니다.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부모의 고집에 반항하는 듯한 대답처럼 들리기도 하는 대목입니다. 요즘 이런 자녀가 있을까요? 자녀의 진로를 자신의 생각에 끼워 맞추는 부모가 있을까요?
이런 자녀, 이런 부모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의외로 이런 일로 부모와 자녀 간에 갈등을 겪는 가정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 기업인은 이를 예로 들며 ‘탯줄의 인연’을 얘기했습니다. 부모의 의지에 자녀의 인생을 끼워 맞추는 습관, 자신이 살아온 경험에 자녀의 생각을 일치시켜야 하는 고정관념, 그래서 과보호 해 이로 인한 부작용이 발생하고, 결국은 그런 자녀가 자아를 잃은 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를 탯줄의 인연으로 표현했습니다. 이런 탯줄의 인연을 끊게 되면 한국사회의 경쟁력은 그만큼 업그레이드 될 수 있다는 논리를 폈습니다.
어제 마니프(MANIF) 서울 국제아트페어가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개막됐습니다. 마니프는 평범한 샐러리맨들의 미술품소장에 초점을 맞춘 미술장터입니다. 그래서 전시회의 주제 역시 ’김과장, 전시장 가는 날‘이었습니다. 과장 명함을 가진 개인이나 동반가족을 무료로 입장시켜 화제를 모으기도 했지요.
개막행사 후 전시장을 돌다가 시선을 멈춘 곳이 있었습니다. 하정민 작가(사단법인 세계 청소년문화교류협회 이사장, 한국국제미술협회 운영위원장)의 부스였습니다. 전시된 작품들은 정말 평범했습니다. ‘비니비니-영원한 행복’ ‘비니비니-하늘의 축복’ ‘비니비니-우리의 만남’ 등이었습니다. 작품이름에는 한결같이 ‘비니비니’가 들어 있었고 소재는 꽃이었습니다.
작가에게 그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그런데 비니는 태어난 지 1년된 딸의 이름이었고, 그 딸을 생각하며 그린 그림이었습니다.
현재 하 작가의 나이는 46세였습니다. 노총각이 뒤늦게 장가를 가 딸을 얻었으니 신기할 법도 합니다. 늦게 얻은 딸이니 얼마나 소중하고 사랑스럽겠습니까?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마지막 여인이 딸이기를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림을 그리면서, 그리고 전시하면서 그는 딸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밤하늘의 별을 헤어 보았던 일들이 그리운 시간입니다. 고개 들어 하늘을 보면 어렸을 적 보았던 별들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는데 난 뭐가 그리도 급한지 어느덧 마흔하고도 여섯이라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지나온 날들이 아름답고, 돌아보면 지나온 시간들이 꿈만 같습니다. 그 시간들 속에는 내가 꿈꾸었던 사랑도 숨어있고 내가 흘렸던 눈물도 가끔은 보입니다.
살다보면 시간의 흐름속에서 내 곁을 스치고 지나갔던 사람들, 어디에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뒤돌아보기도 합니다.
언제나 사춘기 소년같이 살고자 했던 내 마음처럼 그들도 항상 그 자리에 있기를 원했습니다. 언제나 집에 돌아오면 텅 빈집에 불을 켜고 작업하는 것이 익숙했는데 이젠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 하루 종일 날 기다렸다는 듯이 웃는 비니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그 아이가 커서 스물넷이라는 처녀가 되면 어느새 칠십이라는 노인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들속에 아이를 위해 무엇을 해줄수 있을까 생각도 해봅니다.
결혼을 하면서 가졌던 결심은 내가 가진 것의 반을 포기해야지만 내가 가질 수 있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제 내가 가질 수 있는 것을 가졌기에 거꾸로 내가 가진 것을 내놓으려고 합니다.
그래야 내가 가질수 있는 것을 온전히 가질수 있기 때문이죠. 젊은날 나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가 되려고 꿈을 꾸며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 딸에게 가장 좋은 아빠가 되고자 노력하려 합니다.
꽃을 아무리 잘 그려도 생화에서 느껴지는 꽃 향기를 맡을 수 없고 아무리 훌륭한 인체 조각도 사람의 마음을 사랑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내게는 걸어가야 할 시간들이 걸어온 시간들보다 적을 것입니다. 그러나 날 위해 살아온 시간들보다 딸을 위해 살아가야할 시간들이 더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앞을 보아도. 고개돌려 뒤를 보아도 사랑뿐인 내 삶에 딸에 대한 이 사랑이 마지막 사랑이길 기도합니다. 그것이 내가 원했던 사랑의 율법을 완성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멈추지 않는 시간의 흐름속에서 탯줄의 인연을 다시 생각해보는 아침입니다. 부모가 생각하는 자녀의 모습, 자녀가 그리는 미래의 자기모습, 부모와 자녀간 사랑의 율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랫동안 쌓여있던 눈을 걷어내면 그 속에 숨어있던 흙은 항상 그대로 있습니다. 쌀쌀하지만 차갑게 느껴지는 2009년 10월15일 아침, 10년 전, 20년 전, 30년 전부터 쌓여왔던 ‘자아(自我)를 가린 눈(雪)’을 한번 걷어내 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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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 아시아경제신문 회장 preside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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