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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 경제레터] 존경의 남발

시계아이콘읽는 시간1분 13초

국제 금값이 연일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지만 국내의 금배지 값은 몇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떨어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이 논리적인 모순을 대체 어디서부터 설명할 수 있을까요?


공직후보자들이 국회 청문회장에서 심한 추궁을 받을 경우에 상투적으로 쓰는 말이 ‘존경하는 OOO의원님’입니다. 그렇게 몸을 낮추면 공격수위가 좀 낮아지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내키지 않지만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다고 칩시다.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국정감사장의 모습을 봐도 국회 의원들이 본의 아니게 예외 없이 피감 기관장들로부터 형식적인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상대로부터 ‘존경한다’는 말을 들으면 아무래도 날카로운 추궁이 무뎌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노린 것이죠.


그런데 사회를 보는 상임위원장들도 발언이 끝난 의원에게 역시 ‘존경하는 OOO의원님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합니다. 몇 번이나 질문 제한시간을 초과하여 제지를 받고, 또 질문의 알맹이도 없는 꼴불견인 일방적 자기과시성 발언이었지만 주의를 주기는커녕 버젓이 존경한다는 말을 해줍니다.

위원장은 속이 부글부글 끓는 것을 참고 다음 발언 때는 좀 자제해주기를 바라는 뜻에서 그렇게 했으나 해당 의원의 표정을 보면 그게 아닙니다. 전혀 부끄러운 기색 하나 없이 당당하기만 하니 원맨쇼 같은 질의장면이 매년 똑같이 연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식으로 스스로 존경받는 발언과 행동을 보여주지 않으면서 말로만 자기네끼리 억지로 존경을 주고받는 유치한 국감장이야말로 정치인들이 불신을 자초하고 있는 현장입니다.


한발 더 나가서 첨예한 주제로 대담을 하는 TV토론회는 더 가관입니다. 여야의원들이 공방 중에 서로 면전에서 ‘평소에도 제가 존경해마지않는 우리 OOO의원님!’이란 의례적인 말을 주고받을 때는, 어떻게 저렇게 뻔뻔스레 말을 할 수 있을까 하여 역겨움을 느낄 정도입니다.


정치토론이 시청자들로부터 외면을 받게 되는 이유 중 하나는 정치인들의 말에서 진솔함이 묻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제와 관계없이 시청자들 앞에서 상호 존경받는 인물로 치켜 세우다보니 나이와 상관없이 TV채널에서 정치토론이 천덕꾸러기 프로그램으로 전락한 것입니다. 국민들의 정치적 무관심과 감동이 없는 정치는 전적으로 그런 정치인의 책임이지요.


이제 2주간의 10.28일 재·보궐선거가 시작되면 해당 지역구민들은 출마자들로부터 밤낮으로 때 아닌 존경을 받게 되어있습니다. 후보자에게 대놓고 말은 못하지만 ‘제발 존경까지는 하지 않아도 되니 정치나 똑바로 하라’고 말하고 싶은 주민들이 더 많을 것입니다.


선거기간에 유권자들을 상대로 거리연설을 하는 경우나 미디어를 활용한 대중 연설문의 경우 달리 약속한 마땅한 서두가 없으니 ‘존경하는 유권자 여러분!’으로 시작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적인 자리에서 정치인들끼리 빈말로 존경을 남발하는 행위는 진정으로 상대방에게 존경심을 표현하고 싶은 사람으로부터 중요한 단어 하나를 박탈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사랑의 감정이 없으면서 사랑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경우와 다를 바 없겠죠.


존경하지 않는 정치인 여러분! 제발 자기들끼리 입에 발린 ‘존경’은 이제 그만하시죠.



시사평론가 김대우(pdik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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