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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 경제레터] ‘위장 전입’의 범법성

시계아이콘02분 27초 소요

우리나라 학부모들의 교육열이 유별나다는 것은 이미 정평이 나 있습니다. 오죽하면 ‘강남엄마’가 한 시대를 풍미하는 용어가 되었겠습니까. 최근 국회 교육과학기술위 소속 김춘진의원이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제출받은 ‘초·중·고교 학업중단 현황’에 따르면 각종 사유로 학업을 중단하는 학생들이 최근 3년간 28.6% 늘어 7만3000여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학업 중단 원인 중 단연 1위는 조기 유학으로 인한 학업 중단으로 전체의 60%를 차지하고 비율도 매년 증가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또 경제위기에도 교육비 지출은 꾸준히 늘고 있으나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지출격차는 갈수록 벌어진 것으로 조사되고 있습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올 2분기 도시근로자 가구의 소득 상위 20%계층과 하위 20%계층의 월평균 교육비 지출액 격차가 4.72배로 2005년 이후 최대규모로 벌어졌습니다. 저소득층은 경기 침체로 소득이 줄면서 학원을 끊는 등 지출을 줄인 반면 고소득층은 사교육비 중심으로 지출을 늘렸기 때문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습니다.

고소득층에서 과외 등 사교육비를 늘려 자녀들의 학습에 투자하는 것이나 조기 유학이 늘어나는 것은 크게 탓할 것은 아니나 과도한 교육 경쟁이 빚은 결과가 아닐까 씁쓸한 마음도 듭니다. 우리 어머니들의 유별난 교육열을 감안한다면 학력위주의 우리 사회에서 자녀들의 조금이라도 더 나은 장래를 위한 것으로 이해는 갑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법까지 무시하는 행위를 저지르면서까지 ‘자녀 사랑’을 보여주고 있어 그들의 행위를 개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보다 좋은 학군의 학교로 자녀들을 진학시키기 위한 소위 ‘위장 전입’입니다.


어제부터 민일영 대법관후보자를 시작으로 22일 정운찬 국무총리 내정자까지 잇따라 고위 공직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민일영 대법관 후보자와 이귀남 법무장관 내정자, 임태희 노동부장관 내정자, 정운찬 총리 내정자의 부인 등이 위장전입 사실이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또 올 들어 임명된 김준규 검찰총장과 현인택 통일부장관도 위장전입을 시인하고 뒤늦은 사과를 하였습니다.

이귀남 내정자와 김준규 총장, 현인택 장관은 자녀를 희망하는 학교에 진학시키기 위해 위장전입을 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민일영 후보자는 부인 회사의 사원아파트에 당첨되기 위한 것 이었습니다. 특히 임태희 내정자는 장인의 국회의원 선거에 한 표라도 도움을 주기 위해 주소를 옮긴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지역 민심을 왜곡하는 행위로 공직자로서 매우 부적절한 범법을 저지른 셈입니다.


국민의 정부 시절에도 위장전입이 불거져 청문회에서 낙마한 사례가 있습니다. 2002년 장상 당시 국무총리 내정자는 부동산 투기 목적의 위장 전입 의혹으로 인준안이 부결됐으며 새로 발탁된 장대환 당시 국무총리 후보자도 자녀 취학과 관련된 위장전입으로 곤욕을 치르고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의 혹독한 공세로 연이어 국무총리 내정자가 낙마하면서 국민의 정부는 시련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참여 정부에서도 이헌재 당시 경제부총리는 부인의 위장 전입 의혹에 대해 한나라당의 공격이 거세지자 스스로 사퇴했고 최영도 전 인권위원장도 부인이 위장 전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자진사퇴했습니다. 공직자의 위장전입은 얼마 전까지 만해도 참으로 무거운 범법행위였습니다. 굳이 당시 한나라당 의원들이 공격했던 말을 다시 들추지 않더라도 위장 전입은 주민등록법 위반으로 3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이하의 벌금을 물도록 되어 있는 실정법 위반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공직자의 위장 전입이 매우 관대해진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더 나아가 일부 인터넷 댓글을 보면 되레 사문화되어 있는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것을 보면 참으로 어의가 없습니다. 법 조항은 시대 상황에 따라 개정될 수 있지만 위장 전입은 외국에서도 문제가 많은 사회문제로 엄격한 처벌을 가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우수 학군을 찾아 위장전입을 하는 사례가 많아 골치를 앓고 있답니다. 적발되면 중절도죄와 1급 문서위조죄가 적용돼 정식 재판에 회부되며 징역형까지 선고하고 있습니다. 또 학생들의 거주지 전수조사까지 하고 있다니 그들 사회에서도 우수학교를 진학하기 위한 경쟁은 치열한 모양입니다.


사실 필자가 어렸을 때도 담임선생님이 학생들의 거주지를 확인하고 적발되면 전학 가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물론 그 때도 제법 힘깨나 쓰는 부모가 있는 학생들은 ‘무법지대’였습니다. 지금도 서울시 교육청의 ‘2010학년도 고등학교 전형요강’을 보면 ‘서울지역 일반계고에 배정된 학생이 거주지를 속인 것이 확인되면 실제 거주지 학교로 재배정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위장전입은 엄연한 범법행위임이 증명되고 있습니다.


자기 자녀들을 위한 위장전입은 좋은 이야기로 하면 ‘자식 사랑’으로 미화될 수 있으나 이는 자기 가족만을 위한 이기심과 공동체의식의 결핍에서 나오는 범법행위입니다. 그런 일을 별 의식 없이 저지른 사람들이 사회의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 사회의 모순된 모습을 보는 느낌입니다. 고위 공직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물론 모두가 뛰어난 분들이나 자녀를 위해, 장인 선거를 위해 범법행위를 한 분들이 지도자가 될 자격이 있을지 한번 깊게 고민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더불어 그 분들 스스로 거취를 표명하는 것도 사회의 법도를 세우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강현직 논설실장 jigkh@asiae.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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