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광고를 하시고자 하시렵니까?”
이 어설픈 문구가 광고업자의 스타일이 아님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막 개통된 한 전철에서 본 이 문구. 읽고 나면 광고를 의뢰하고 싶은 마음이 쏙 들어가는 참 희한한 높임말입니다. 나름대로 고객을 존중한답시고 창작한 문장이지만, 소리 내어 읽어볼수록 어색하죠.
차라리 “니가 게 맛을 알아?”처럼 “당신 여기 광고 할껴?”로 하든지. 아니면 신세대들 휴대폰 문자 보내듯이 아예 줄여서 “여기 광고 하셈”이라고 했다면 광고가 붙기 전에 입꼬리라도 올라가게 만들 수 있었을 겁니다.
서울거리를 지나다보면, 유사한 오류가 공무원들에 의해 버젓이 저질러진 사례를 쉬 발견할 수 있습니다. 숲에 ‘숲 해설가’란 직업이 있듯이 도로에 ‘한글 사랑이’란 직종을 만들어서 이런 오류들을 일일이 색출해 바로잡는 것도 괜찮은 공무가 아닐까요.
거리 간판을 둘러보면 가히 억지조어(造語)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각 지자체마다 특산물을 브랜드화 해보겠다고 개발한 조어들이 그야말로 가관인 게 많습니다. 참신해서 기억되는 게 아니라, 대놓고 어이없게 만들어서 기억시키려는 횡포에 주민세금이 아깝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지요.
그런 거 하나 개발에도 ‘네이밍 작업’이라고 해서 적어도 1억원대 이상의 기업이미지통합(CI) 비용이 들어갑니다. 마치 멀쩡한 보도블록을 교체하듯이 단체장이 바뀌면 또 돈 들여서 바꾸는 곳이 부지기수고, 브랜드효과가 없으면 다른 브랜드를 추가로 만들기까지 합니다.
특히 최근 들어서 영어로 간판을 교체하는 기업들이 늘어나면서 누가 들어도 뭐 하는 곳인지 짐작이 안 가는 알쏭달쏭한 이름이 많습니다. 반면에 서울 중구 주자동에는 노랑색바탕에 검은색 코끼리가 돋보이는 ‘KISWEL’이란 대형 옥상간판이 보입니다. 뭘 파는 회사일까요?
발음대로 키스가 잘 되는 제품을 파는 회사겠지요. KISS와 WELL에서 각각 중복된 스펠링을 하나씩 떼어 내서 조합한 기발한 KISWEL상표. 전자랜드 등 계열사가 7개나 되는 40년 넘은 ‘고려용접봉주식회사’가 어떻게 영문을 KISWEL로 채택할 수 있었을까. 그 CEO의 상상력이 궁금해집니다.
키스와 용접은 오래 붙어 있을수록 좋다는 단순한 접합기능에 착안하여, 용접을 키스처럼 뜨겁게 할 수 있다고 회사명을 짓다니··· 생각하면 슬며시 미소가 번지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키스를 해 본지 오래되었거나 오늘 아침 미수에 그친 분일 확률이 높습니다.
새벽에 종로를 지나다가 ‘열공제자’란 네 글자가 눈에 띄었습니다. 전통 있는 외국어학원 창문에 붙인 단어라 무슨 소린가 싶었는데, 바로 밑에 외국어학원답게 “열심히 공부할 ‘열공제자’ 모집합니다”라고 주해(註解)를 달아놓았더군요.
혹시 ‘꽃거지’란 단어, 들어보셨습니까? 어느 지하철역에서 몇 년째 방황하고 있는 괜찮게 생긴 30대 초반의 노숙자를 네티즌들이 그렇게 애칭으로 불러준답니다. ‘꽃미남 거지’의 준말이겠죠. 아마도 그 단어를 꽃이 듣는다면 기분이 정말 거지같을 겁니다.
이렇듯 우리는 해석해주지 않으면 잘 모르는 단어를 자주 만납니다. 플래닛에서 블로그로, 유튜브에서 트위터로 진화하는 디지털시대에 모른 척 지나치면 궁금해지고 물어보자니 왠지 혼자만 모를 거 같은 찜찜함. ‘사용하는 언어차이’에서, 또는 ‘생소하게 다가오는 단어차이’에서 세대차이를 실감하는 2009년 가을입니다.
가을은 줄임말로 ‘갈’이 됩니다. 가을은 찌는 여름과 살 애는 겨울을 화해시키려고 잠시 머무는 어차피 갈 세월입니다. 그 계절을 닮은 색이 갈색이고 초록이 증발되어 바스라지려는 잎이 갈잎입니다. 갈바람 부는 계절에 그러잖아도 어디론가 가고 싶은 마음에다 누군가 매정하게 ‘그래, 갈 테면 가라’고 했답니다.
매미소린 점점 높아져서 애절하기만 한데, 이삿짐 챙겨들고 막 사라지려는 여름의 귓전에는 그 말이 자기더러 가라는 소리로 서운하게 들렸나 봅니다. 엊그제 뿌린 그 비가 다름 아닌 여름의 눈물자국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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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평론가 김대우 pdik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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